22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 2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층 여성사우나.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시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옛 두손스포리움) 화재 당시 소방당국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유족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2층 사우나 유리를 깨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통유리를 깼을 경우 이른바 ‘백드래프트’ 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두고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유족들은 20명이 숨진 2층 여성용 사우나의 통유리 외벽을 출동 직후 곧바로 깼으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조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대표단은 23일 합동 현장감식을 참관한 뒤 “2층 여성 사우나에 들어가보니 바닥에 그을음이 가라앉았을 뿐 불에 탄 흔적이 없고 깨끗했다”며 화재가 없었던 만큼 유리창을 깨더라도 백드래프트를 우려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리창부터 깨고 구조작업을 했다면 환기가 돼 유독가스에 이렇게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천소방서는 21일 오후 3시53분에 최초로 화재 신고를 받고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소방대가 2층 여성 사우나의 통유리 외벽을 깬 시점은 오후 4시38분께였다. 그 뒤에야 소방대는 구조를 위한 2층 진입에 나섰다. 유족들은 2층 사망자와의 전화 통화가 4시21분께도 이뤄졌고 소방관들에게 사람이 살아있으니 빨리 유리부터 깨달라고 호소했지만 들은 척도 않았다며 소방당국의 판단착오와 늑장대응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소방당국은 대형 폭발을 막기 위해 엘피지(LPG) 가스탱크 주변의 화재를 진압하는 게 우선이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화재 건물 옆에 2t 용량의 가스탱크가 있었다”며 “불길이 닿아 가스탱크가 폭발하면 반경 3㎞까지 피해가 번질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주차장에 있던 차량 15대에 잇따라 불이 붙으면서 가스탱크 인접 지역까지 불길이 번진 상황이었다. 더구나 건물 외벽을 중심으로 불길이 크게 번져 통유리 창문을 깨더라도 즉각 진입이 곤란한 상황이었다고도 항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백드래프트’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창문을 무조건 깨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백드래프트는 화재가 난 건물 안에 갑자기 산소가 유입됐을 때 불이 붙거나 폭발이 일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백드래프트 발생 가능성은 화염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며 “2층 강화유리가 상당히 짙어서 외부에서 안이 잘 안 보였다고 하는 만큼 소방대원으로선 화염이 있는지 없는지 외부에서 판단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엽래 경민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도 “건물 안에 불이 있을 때 유리창을 깨면 위험하고, 불이 없으면 유리창을 깨야 한다”며 “밖에서 안을 볼 수 없었던 상황이라 구조하는 사람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윤명오 서울시립대 재난과학과 교수는 “백드래프트 현상을 우려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확실한 정황이 있으면 일단 깼어야 하는데, 유족들이 그렇게 요청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제천/신지민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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