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 비자금을 10년 전 특검 수사과정에서 발견하고도 은폐했다는 혐의로 고발된 정호영 전 비비케이(BBK) 특별검사가 지난 3일 오후 ‘다스 횡령 등 의혹 고발사건 수사팀’이 차려진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지검 청사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검찰 ‘다스 고발사건 수사팀’의 수사가 지난 19일 일단락됐다.
검찰 내부의 평가는 대체로 융숭하다. 무엇보다 10년 전에 봉인된 사건을 다시 수사해 다스 비자금의 공소시효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여는 기자 간담회에서 상황 설명마저 유난히 인색했던 문찬석 수사팀장(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이 여러 번 “공소시효를 극복했다”고 말한 것을 지나친 자화자찬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10년이면 강산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범죄의 공소시효도 끝난다. 다스 비자금도 그럴 뻔했다.
비자금의 원래 이름은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돈 즉 ‘부외 자금’인데, 조성 과정에서 그만큼의 회삿돈을 빼돌리게 돼 형법의 횡령죄를 범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배임도 따라붙는다. 비자금의 규모가 커지면 형법을 넘어 가중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럴 때 적용하는 특별한 법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특경법)인데, 횡령이나 배임을 통해 취한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제3조)에 처하게 돼 있다.
이 조항의 적용 여부가 이번 수사의 최대 관심사였다.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는 범죄의 공소시효가 2007년 12월21일에 기존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형사소송법 개정으로-됐기 때문에, 그 이전에 다스의 비자금 조성 행위가 완료됐다면 이번 수사는 실패로 끝났을 수 있다. 어떤 범죄든 행위 시의 법률로만 처벌이 가능하니까. 그런데 다스 수사팀이 문제의 2007년 12월21일 이후에도 비자금 조성이 계속됐다는 증거를 찾아내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공소시효가 15년으로 늘어 처벌 범위가 확장되자 수사 협조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다스의 김성우 전 대표가 왜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자수했겠나. 120억을 빼돌린 말단 경리직원 조아무개씨가 어떻게 지금까지 잘리지 않고 그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겠나. (검찰에) 들어온 사람들이 왜 거의 다 시원하게 불었겠나. 그 이유는 한 지점으로 수렴된다.” (검찰 관계자)
10년 전 특검 수사 때 했던 진술이 번복되고, 전혀 다른 진술이 나오기 시작했다. “은행에서 어렵게 찾아낸 옛날 자료들과 관련자들의 진술을 퍼즐 맞추듯”(검찰 관계자)하면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다스에서 조성한 비자금이 120억짜리 하나가 아니라 두 덩어리나 더 있었고, 그 두 개 중에서 “특검 때 나온 것(120억) 못지않게 큰 덩어리를 ‘오너 일가’가 해먹은 사실”(검찰 핵심 관계자)이 드러난 것이다.
기자: “자꾸 ‘오너 일가’라고 하는데, 그 ‘오너’가 엠비인 거죠?”
검찰 관계자: “전 국민이 아는 그분이라고 해둡시다.”
공소시효, 실질적인 소유주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면서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엠비) 수사에서 ‘안전판’을 확보했다. 엠비는 다스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의 규모가 100억원을 훌쩍 넘겨 특경법 적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그에 따른 조세포탈 혐의(특가법 위반)도 수반될 것이다. 다스 수사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특수2부)의 공조를 통해 다스의 ‘오너’가 엠비인 사실이 확인되면서 삼성의 다스 소송비용 400만 달러 대납 혐의도 뇌물죄로 처벌할 길이 열렸다.
그러나 동전도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는 법. 검찰 다수 수사팀은 이번 수사의 시발점이 됐던 정호영 전 비비케이(BBK) 특검의 특수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지난 19일 ‘혐의없음’ 처분했다. “면죄부를 줬다”는 일부 비판에도 이렇게 한 것은 애초 은폐 의혹이 제기됐던 120억원을 다스 경리직원 조아무개씨의 개인 횡령으로 판단하면서다. 수사팀은 2008년 비비케이특검에서 다스를 수사했던 박정식 부산고검장 등 파견검사들은 조사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 전 특검과 당시 파견 검사들 모두 이번 수사의 ‘수혜자’가 됐다.
문찬석 수사팀장은 그 이유를 기자 간담회에서 설명했다.
“(정 전 특검이 고발된) 특가법의 특수직무유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비자금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조성한 것이고, 특가법에 해당하는 연간 5억원 이상의 조세포탈 범행을 (2008년 당시에) 인지하고 있었어야 한다. 당시 (특검 수사) 기록 전체를 살펴봤는데, 개인 횡령 (120억원) 이외에 경영진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자료를 확인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특가법 조세포탈에 해당하는 세금탈루 부분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는 흔적을 일체 발견할 수 없었다. 법리적으로는 명백하게 혐의없음이 맞다.”
한마디로, 전제 불성립. 정 전 특검이 문제의 120억원을 특가법 조세포탈로 인지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특가법의 특수직무유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이런 내용이 여러 언론에 보도된 지난 20일, 한 법조인이 연락을 해왔다. 2012년 10월께 <한겨레>에 당시 아무도 모르던 ‘120억’의 존재를 처음 제보한 그 사람이다. 그 덕분에 <한겨레>는 2012년 11월9일치 1면 머리기사로
‘4년 전 BBK 특검, 다스 100억대 비자금 알고도 덮었다’는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다.(이 기사가 나가기까지 저간의 사정은 기자가 작년에 쓴
‘법조외전⑧-다스 비자금 단서, 검찰 캐비닛에 있다’에 상세히 나와 있다)
그는 “수사팀의 노고는 알겠는데, 결과는 납득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검찰에서 수사에 일가견이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어떤 점에서 그러냐?”고 물었다. “당시에 내가 들은 얘기는 ‘다스 비자금이 더 있다’는 것이었다. 알려진 120억 말고 더 있다는 취지로. 그리고 그 경리직원이 비자금 관리를 하면서 꽤 빼먹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면서 “당시에 특검이나 파견검사들이 그걸 전혀 몰랐을까?”라고 반문했다.
최근에 만난 한 검찰 간부도, 일반론이지만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사주나 경영진이 비자금 1억을 만들어오라고 지시하면 담당 직원들도 그 못지 않은 액수를 해먹는다. 그게 기업 비자금 세계의 불문율이다. ‘네가 빼먹는데 나라고 못하냐’는 심리에다, 비밀을 공유했으니까 문제가 생겨도 못 자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검찰 다스 수사팀이 이번에 확인한 다스 비자금은 크게 세 덩어리. 이 세 덩어리는 모두 경리직원 조아무개씨의 손을 거쳤다. 검찰은 조씨가 이 세 덩어리에 모두 관여돼 있다고 밝혔다. “(조씨의) 개인 횡령과 (나머지 두 덩어리) 비자금 조성 기간이 상당 부분 겹친다.” (문찬석 팀장) 그런 조씨를 특검도 조사했다. 물론 계좌추적도 했었다. 이번에 검찰이 밝힌 것을 보면, “비자금 조성은 2008년 2~3월까지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문 팀장)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인 때에도, 심지어 엠비가 대통령에 취임(2월25일)한 전후에도 비자금 조성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같은 사람의 손을 거쳐 비자금 세 덩어리가 동시에 굴러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덩어리만 봤다, 나머지 두 개는 본 적이 없다’는 게 정 전 특검의 변명이다. 이걸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까?
“검사 일곱 명이 50일 동안 수사해서 이번 결과가 나왔다. 10년 전 일인데도 결국은 찾아냈다. 2008년 당시에는 더 많은 자료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관련자들의 진술을 깨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검사가 진술만으로 수사하나. 말을 바로 못 깨면 돈을 찾아서 깨야 한다. 그걸 못 찾았다면 무능한 거고, 알고도 덮었다면 직무유기인 거고.” (검찰 관계자)
최초 제보자는 또 물었다. “백보 양보해서 특검이 그 120억만 봤다고 칩시다. 시한에 쫓겨서 더는 수사를 할 수 없었다는 말도 사실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그럴수록 검찰에 넘겼어야죠.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특검법에 서울중앙지검으로 넘기라고 돼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특검이 왜 이 사건을 권한에도 없는 내사종결로 끝내 버리고 쉬쉬했을까. 나는 당시 특검이나 파견검사들이 이번에 드러난 ‘오너’ 비자금의 더듬이든 꼬리든 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에 넘기면 나머지 비자금이 속속들이 드러날까 봐 기록만 트럭에 실어 보낸 것은 아닐까? 정 전 특검은 한술 더 떠 특검 수사보고서에도 이 비자금 120억을 넣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알리는 수사 결과 발표 때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파견검사들은 특검의 지휘를 받는 존재였으니, 이 모든 일에 어떤 책임도 없는 것일까. 정 전 특검은 서울고등법원장까지 지낸 정통 판사 출신이었다. 평생 수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반면 특검에서 다스 수사 실무를 지휘했던 박정식 검사(현 부산고검장)는 그 당시에도 이미 베테랑 특수통이었다. 계좌추적 실무를 총괄했던 조재빈 검사(현 대검 검찰연구관)도 선배 검사들 사이에서 ‘차세대 특수통’으로 이름을 얻어가고 있었다.
박 검사는 특검 수사가 끝난 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으로 부임한다. 법무부 기획검사로 ‘영전’한 조 검사는 수사 실무에서 떠나 있었지만, 박 검사는 이 사건 수사를 계속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 자신이 누구보다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이 사건 수사기록도 검찰로 넘어와 있었다. 이 티케(TK) 출신 ‘중수 2과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을 겨눴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물정 모르는 허언이거나 실현 불가능한 주문일까? 그는 이 사건이 아니라 엠비 정부가 기획 중이던 ‘박연차 사건’을 맡아 박 회장을 구속(2008.12.12)함으로써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기초를 닦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도중 기침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검찰로 넘겨진 특검 수사기록의 ‘소재’도 의문이 남는다. 문찬석 팀장은 19일 기자 간담회에서 “2008년 2월22일 서울중앙지검 기록보존창고에 접수된 거로 나온다. 2월25일에는 사건번호와 이름, 죄명, 기록 권수 43권이 대검에 인계됐다는 내용이 작성돼서 대검 수사기획관실 수사관으로부터 서명을 받은 거로 돼 있다”고 밝혔다. 수사기록이 서울중앙지검에 인계된 지 사흘 만에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실로 옮겨진 것이다.
“그건 틀림없이 ‘보안’ 때문일 거다. 수사가 종결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기록이 아직도 대검 반부패부(옛 중수부) 캐비닛에 보관돼 있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보면 된다. 서울중앙지검 기록보존창고는 일반 직원들이 열람이나 대여, 복사 등 업무를 처리하느라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관리가 허술해서 그 기록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면 수시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걸 막고자 했을 것이다. 당시 검찰 지휘부가 그 기록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검찰 간부)
특검은 보통 검찰이 수사에 실패한 경우 도입되곤 했다. 이 사건도 그랬다. 그럴수록 검찰 수뇌부는 특검 상황을 파악하고자 애쓴다. 어디까지 파고 있는지, 무엇이 나왔는지 알고 싶어 한다. 자신들의 실패 또는 부실과 비교될 특검의 수사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고받는다. 바로 파견검사들을 통해서다.
“당시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임채진 검찰총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았다. 그런데 정권 교체로 자신이 지휘했던 수사(비비케이 사건)의 대상자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 당선자를 겨냥한 특검 수사가 개시됐다. 총장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부터 불투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총장과 지휘부가 특검 수사에 촉각을 안 세웠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닐까.” (검찰 간부)
법리적으로 정 전 특검은 혐의를 벗었다. 21일, 어제로 특수직무유기죄의 공소시효(10년)가 완성됐다. 앞으로 혹시 새로운 증거나 이번 결론을 뒤집을 증언이 나온다 해도 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럴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특검이 그러하니 파견검사들이나 당시 검찰 지휘부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엠비만 빼곤 그야말로 모두가 해피한 결말이다.
“법적 책임을 벗었다고 해서 양심도 자유를 얻었을까. 그분들이 부디 부끄러움을 알았으면 좋겠다.” 최초 제보자가 전화를 끊기 전에 한 말이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