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담화 및 서명식을 마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부터),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명을 마친 뒤 서명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경찰은 권한과 함께 책임이 크게 늘어난 반면 검찰은 기존에 갖고 있던 권한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것 같다.’
21일 공개된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본 법조계 인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이 가능하다. 앞으로 입법 과정이 남아 있어 국회에서 가감·첨삭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지만, 합의문의 내용만 놓고 보면 경찰에는 명분과 권한을, 검찰에는 실리를 안겨줬다는 것이 중론이다.
검사장을 지낸 변호사는 “합의문을 뜯어본 일선 경찰은 씩씩대고 있거나 울상일 것 같고, 총장의 거취가 걱정된다던 검찰은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외형상 정부안의 가장 큰 수혜자는 경찰인 것처럼 보인다. “검찰로부터의 독립”을 부르짖어온 경찰은 우선 ‘숙원’을 풀었다.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지 않고 1차 수사를 자체 종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기소와 불기소 여부도 사법경찰관이 판단해 정하게 된다. 또 모든 고소·고발 사건의 접수와 처리는 경찰이 전담하게 된다. 검찰로 가던 고소·고발 사건도 앞으로는 경찰이 처리해야 할 업무로 바뀐다.
그에 따라 전체 경찰관의 15~20%에 해당하는 사법경찰관의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모든 고소·고발 사건의 조사는 물론 1차 수사 뒤 불기소 처분한 사건의 결정문과 수사기록을 검사에게 보내야 한다. 또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 만큼 책임도 커졌다. 부실수사나 봐주기 수사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덩달아 커진 것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기존에는 사건이 말이 되든 안 되든 검사한테 송치해버리면 그만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검사가 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사 결과에 따른 책임을 경찰이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에 대한 ‘예외조항’인 당사자의 이의신청권과 검사의 재수사 요청권에 주목하고 있다. 이것이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을 사실상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합의문을 보면 고소인과 고발인, 피해자 등은 불기소에 따른 불송치 통보를 받은 뒤 해당 경찰관서의 장에게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의신청을 받은 경찰관서의 장은 수사기록과 함께 사건을 관할 검찰청에 송치하도록 돼 있다. 다시 말해 당사자가 불복하면 사건은 경찰의 손을 떠나 검찰이 재검토하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지금도 고소·고발 사건은 평균 50% 정도, 횡령·배임과 같은 재산범죄는 70% 정도가 불기소 처분된다. 당사자들이 수사기관의 결론에 쉽게 승복하는 않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상당수 사건이 또다시 검찰로 가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이번 제도 변화의 효과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찰의 1사 수사종결권이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검사의 재수사 요청권도 경찰로서는 만만찮은 부담이다. 합의문은, 경찰의 불송치 사건을 검토한 검사가 위법·부당한 결정이라고 판단하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재수사 요청을 받은 경찰이 해당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결과를 검찰에 다시 통지해야 하는지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검찰이 경찰에 ‘사후 통제권’을 행사할 여지는 남겨둔 셈이다.
반면 검찰은 ‘송치 전 수사지휘권’을 내려놓는 만큼 그에 따른 과중한 업무 부담도 덜게 됐다. 그러면서도 합의문에서 ‘특수 사건’으로 분류한 부패·경제·금융 및 증권·선거 범죄 등은 계속해서 수사권을 갖게 된다. 검찰이 기존에 해오던 ‘인지’ 분야에 해당하는 사건은 아무런 제약 없이 계속 수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송치전 수사지휘가 사라지면 검사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부패, 비리는 검찰이 자체 판단해서 수사하면 그만이다. 그런 점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셈”이라고 했다.
바로 이 대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이 범죄를 인지해 대상을 정하고 수사한 뒤 기소와 공소유지까지 담당하도록 하는 것은 정권의 성격에 따라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무엇이 부패이고 비리인지는 검찰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운영하기에 따라서 정권의 입맛대로 움직였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합의문에 미진한 대목이 의외로 많다는 지적도 있다. 합의문은 경찰에 국가수사본부 직속 수사심의위원회를 두어 이곳에서 1년에 두 차례 불송치 결정 사건의 적법·타당 여부를 심의하도록 했는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찰 출신인 또 다른 변호사는 “수사심의위가 제 역할을 하려면 수백명이 상근을 해야 할 것이다. 기존에 검사들이 매일 하던 일을 1년에 두 차례 한다는 것부터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논의”라고 했다.
검경의 중복수사 문제에 대한 처방도 또 다른 분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의문은 검경이 중복 수사하는 경우 검사가 경찰에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 “경찰이 영장에 의한 강제처분에 착수한 경우”는 계속 수사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이 ‘영장에 의한 강제처분’에 대한 해석을 놓고 검경이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합의문에 들어 있는 ‘영장에 의한 강제처분’을 경찰이 검찰에 신청한 시점으로 볼 것인지, 법원에서 영장이 발부된 이후로 볼 것인지를 놓고 또 다른 분란의 소지가 있다. 앞으로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손질돼야 할 대목”이라고 했다.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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