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난민이 고향 사나에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의 폭격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박승화 기자
열흘간의 제주도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을 때다. 제주에서 전화가 한 통 왔다. 자신을 “제주의 양식장 사업주로 예멘인을 고용 중인 고아무개(29)”라고 소개했다.
고씨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양식장으로 온 예멘인들은 한국 문화, 한국어, 하다못해 한국의 식사법도 전혀 모르는 상황입니다. 교육받고 시험 치고 들어온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달라요.” 고씨의 양식장에서 일하는 예멘인 역시 한국어 인사는커녕 ‘기역, 니은’도 모른다고 했다. “문자를 알면 단어나 기본적인 문장이라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기역, 니은을 모르니 방법이 없죠.”
고씨를 비롯한 제주의 사업주들은 예멘인들의 ‘얼굴과 인상’만 보고 고용했다. “출입국·외국인청이 마련한 취업설명회는 ‘무작위 매칭’이었어요. 예멘인마다 1번, 2번 이렇게 번호를 매겨 사업주와 연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멘인을 대상으로 한 출입국 당국의 사전교육은 두 시간 정도 영상을 보여주는 게 끝이었다. 고씨는 “현장에선 정부 당국이 뭘 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예멘인들을 떠넘겼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며 “최소한 아랍어로 된 한국어, 한국문화 강의라도 유튜브에 올려주면 좋을텐데 그 마저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민들은 얼떨결에 ‘난민 문제’의 최전선에 섰다. 여기엔 정부의 ‘방치’도 큰 역할을 했다. 갑자기 몰려든 ‘난민 신청자’에 당황한 출입국 당국은 ‘출도 제한’으로 이들을 제주에 가둬둔 것 말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이뤄진 ‘취업알선’도 사후관리와 거리가 멀었다. ‘한국을 전혀 모르는 예멘인’과 ‘이슬람 문화가 낯선 사업주’가 완충지대 없이 맞부딪힌 것이다.
현장에 적응하지 못한 예멘인은 사업장에서 이탈했고 사업주들은 불만이 쌓였다. 이 모습만 부각하는 미디어들에 의해 ‘갈등과 불화’가 모락모락 퍼지고 있다. 제주에서 만난 도민들은 저마다 마음에 생채기를 갖고 있었다. 예멘인에게 선의를 보인 시민사회는 거센 비난에 직면했고, 예멘인을 고용한 사업주는 괜한 짐을 떠맡았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됐다. 근거를 찾기 힘든 소문에 두려워하는 제주도민도 많다. 정작 정부는 이들 누구에게도 별다른 역할을 해주지 않고 있다.
좋든 싫든 한국은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2013년 난민법을 제정한 것도 우리 국회다. ‘549명의 예멘인’은 골치 아프다고 치워둘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늦었지만, 갈등의 현장이 된 제주엔 시민의 ‘선의’가 아닌 정부의 ‘행정력’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섬 제주가 예멘인들을 가둬두기 위한 감옥은 아니지 않은가.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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