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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야근 뒤 한잔’ 사라져… 포장마차·유흥주점 ‘52시간제 직격탄’

등록 2018-08-02 05:00수정 2018-08-02 14:14

‘주 52시간제 한달’
②소상공인, 노동시간 단축의 명암

야식 찾는 직장인들로 붐비던 포차
이제 겨우 1~2명만 자리 지켜
폭염에 휴가에 노동시간 단축 겹쳐
“15년 장사 이젠 접어야 하나”

‘칼퇴근’ 직장인은 어디로 갔을까
요가·헬스장 퇴근 직장인 문전성시
“7월부터 문의 및 회원가입 러시”
지난달 26일 오후 6시10분께 퇴근길에 나선 직장인들이 서울 여의도역 3번 출구 앞에 길게 줄 서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지난달 26일 오후 6시10분께 퇴근길에 나선 직장인들이 서울 여의도역 3번 출구 앞에 길게 줄 서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던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된 지 한 달이 흘렀다. 제도 시행에 잘 적응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가족·동료와 함께 여가를 즐기며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됐다는 환호성이 나온다. 반면 ‘야근 체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이 무너지며 생계유지도 어렵게 됐다는 소상공인들의 아우성도 함께 들린다. 한 직장에서도 퇴근 시간 차별이 나타나거나, ‘무늬만 노동시간 단축’으로 무마하려는 꼼수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에서 여전히 소외돼 있는 이들도 많다.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 한 달,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세 차례로 나눠 짚어본다.

지난 26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 거리로 일제히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3~4명씩 무리 지어 건물을 빠져나온 이들은 따가운 햇볕을 피해 서둘러 여의도역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일시에 많은 이가 몰려들다 보니, 전철역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 곧 길게 이어졌다. 이날은 직장인들의 회식이 잦은 목요일이었지만, 어둠이 짙어져도 어울려 술을 마시는 직장인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늦은 시각 일을 마친 뒤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시원한 맥주를 찾는 이들마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어. 다들 일찍 퇴근해 집에 가니까…. 이것 봐. 길이 한산하잖아.”

여의도에서 3년간 포장마차 장사를 했다는 장아무개(55)씨는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7월부터 밤 시간에 직장인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했다. 초저녁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장사 준비를 시작했지만, 이날 밤 11시께까지 장씨의 포장마차에는 손님이 단 한명도 들지 않았다. 장씨는 타는 목을 축이려 연신 물만 들이켰다. 인근에서 15년간 포장마차를 해온 김아무개(60)씨도 “날씨 탓도 있지만, 밤늦게는 포장마차 쪽으로 줄이 늘어설 정도였는데 지금은 아예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 길 포장마차엔 밤늦게까지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 길 포장마차엔 밤늦게까지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주 52시간 상한제 등으로 노동시간 패턴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서, 일터가 밀집한 지역의 소상공인들의 명암도 갈리고 있다. 특히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였거나 야근을 마친 직장인들을 상대하던 술집과 식당 등은 주 52시간제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금융회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의 한 상가에서 유흥주점을 하는 한 업주는 “저녁 시간에 상가 자체에 손님이 없다. 상가 전체가 적막하니까 사람들이 더 안 들어오게 된다”고 말했다. 인근 회사원들의 단골 회식집으로 이름을 날렸던 서울 신사동의 ㅂ음식점 관계자도 “요즘엔 10명 안팎의 단체손님이 거의 없다. 팔아도 2~3인분씩이고, 마진이 많이 남는 술이 많이 안 나간다. 이런 상태가 계속될지 좀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일찍 퇴근하니 늦은 시각에 택시를 타는 손님도 줄었다. 택시운전사 정아무개(55)씨는 “예전엔 하루에 20만원은 찍었는데, 요샌 하루 매출이 반도 안 돼 사납금도 내기가 버겁다”고 했다. 택시운전사 이아무개(50)씨도 “요즘은 밤거리에 사람이 없다. 예전엔 손님을 좀 가려 받기도 했는데, 요즘은 카카오택시 콜이 오면 목적지도 보지 않고 콜 받기에 바쁘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이른 퇴근에 반색하며 이들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요가, 필라테스, 헬스장 등은 오후 6시부터 직장인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여의도 한 피트니스센터 관계자는 “6시부터 9시까지 직장인 회원이 크게 늘었고, 7월 이후 전화 문의도 많다”고 말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회사 근처에서 운동을 하고 여유 있게 퇴근하는 게 낫다는 직장인이 늘어난 탓이다. 여의도 한 요가학원 관계자도 “퇴근하고 6시40분 수업에 오는 직장인이 20~30% 늘었다”고 전했다.

유연근무제 등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점심시간에 2시간가량 충분히 운동하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고 한다.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피트니스센터 관계자는 “그동안은 6시 이전엔 직장인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최근 들어 점심시간을 활용하거나 오후 시간에 찾아오는 회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꽃집이나 플로럴 카페 등도 호황을 맞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꽃집에선 “사내 동아리나 동호회 수업에 출강을 갈 정도로 직장인 관련 매출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악기와 공예 등 취미용품 관련 매출도 크게 늘었다. 지마켓은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뒤인 7월 클래식기타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74%, 만화·캘리그래피 용품이 55%, 프라모델은 44% 증가했다고 밝혔다.

영화관도 수혜업종 가운데 하나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보면, 지난 7월 전체 영화 관객수는 1977만6159명으로 전달보다 467만여명 늘었다. 시지브이(CGV)는 7월2일부터 평일 영화 관람료를 할인하는 ‘칼퇴 적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김영란법·미투·52시간…‘노래 끊긴’ 노래방

직장인들 퇴근시간까지 빨라져

가게 ‘저녁 손님 없는 삶’에 울상

“포장마차는 월세라도 안 들지, 우린 매달 보증금만 깎아 먹고 있어요.”

지난달 26일 밤 10시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노래방에선 노랫소리 대신 한숨 소리가 텅 빈 노래방을 채웠다. 이날 이 노래방을 찾은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노래방 주인 채아무개(50)씨는 “지난달 매출이 평소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7월을 ‘최악의 달’로 꼽았다. 전기요금과 시설투자비,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임대료를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채 씨는 “10년 전 노래방을 개업하면서 수억원의 보증금과 권리금을 냈지만, 권리금은 고사하고 매달 400~500만원씩 보증금을 깎아 먹고 있는 상황”이라며 “언제 빈털터리가 돼 쫓겨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여의도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또 다른 업주는 7월 이후 매출 변화를 묻는 기자에게 “보면 모르겠냐”며 짜증을 냈다.

노래방과 노래주점 등 유흥업소 업주들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미투 운동’으로 이미 급격히 매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주 52시간제’로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6년 9월 김영란법 시행으로 접대문화가 바뀐 데다, 지난 3월께 불어닥친 ‘미투 운동’으로 2·3차로 이어지는 회식을 꺼리는 직장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채씨는 “김영란법, 미투 운동으로 이미 손님 발길이 뚝 끊겼는데, 퇴근 시간마저 빨라지면 전국의 노래방은 다 문 닫으란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의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래방을 운영하는 김아무개(53)씨도 “여기가 이 정도 수준이면 다른 곳은 아예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더운데 에어컨을 안 틀어놓을 수도 없고, 400만원이 넘는 관리비도 부담하기 힘들다”고 했다. 김씨는 “김영란법 당시 타격이 20일 이상 갔고, 미투 운동으로 바뀐 직장 문화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직장인들 퇴근 시간까지 빨라졌으니, 이제 출구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여의도에 있는 한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아무개씨(34)는 “주 52시간제 시행 뒤 거하게 먹고 마시는 회식은 거의 사라지는 분위기”라며 “어쩌다 회식을 해도 1차로 끝나기 때문에 9시 이전에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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