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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초열대야’ 잠 못드는 밤…“만사 다 귀찮아” 좀비 코리아

등록 2018-08-03 05:01수정 2018-08-03 15:07

12일째 열대야 ‘풍속도’
밤잠 설쳐 머리 띵 기운 쭉
상사 앞 보고하다 횡설수설
토익 매진 계획도 아예 접어
학원가 20%는 엎드려 자
서울 한 분수대에서 더위를 식히던 한 어린이가 숫제 드러누워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한 분수대에서 더위를 식히던 한 어린이가 숫제 드러누워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에서 사상 처음으로 초열대야(밤새 최저기온이 30도 이상을 유지하는 현상)가 나타나는 등 역대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111년 만의 폭염으로 각종 온열질환 관련 기록도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여름철 건강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일과 2일 밤사이 서울의 최저기온은 30.3도로, 서울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래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이들은 다음날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무기력 또는 어지럼증을 호소하는가 하면, 무더위를 참다못해 병원에 가거나 카페나 영화관, 심지어 국외로 떠나기도 한다. 폭염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늦은 밤 음식이나 술로 풀다가 몸이 망가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는 호소도 나온다.

체력 좋은 2030도 무기력증…“응급실 열사병 환자 천지”

폭염 스트레스 야식으로 풀어
건강 해치는 악순환 반복
정말 위험한 분들은 노인들
“외출 말고 에어컨 앞에 계셔야”

서울의 열대야가 12일째 이어지면서 신체 건강한 청년층에서도 “매사가 무기력하고 힘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직장인 신아무개(28)씨는 최근 상사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횡설수설했다가 “더위 먹었냐”는 면박을 들었다고 했다. 열대야 때문에 2주 가까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이었다. 신씨는 “자다가도 더워서 새벽에 한두 차례 깨는 등 깊이 잠들지 못한다”며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고, 이런 상태로 만원 버스를 타고 출근하니 늘 기운이 없고 속이 메스껍다.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병원에 가봐야 하나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대학교 4학년 강아무개(23)씨는 방학 전 세웠던 계획이 폭염 때문에 물거품이 될 처지에 몰렸다. 졸업을 앞두고 막판 토익 공부에 매진할 계획이었으나, 기록적인 폭염으로 두통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강씨는 “무더위를 뚫고 학원까지 가도 집중이 안된다. 수업 시간에 보면 100명 중에 15~20명은 엎드려 있는 것 같다”며 “너무 더워서 친구 만나러 나가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야식과 맥주로 버티다 몸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공무원 김아무개(29)씨는 요즘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찬물로 샤워하고 에어컨을 튼 상태에서 맥주를 마시는 게 일상이 됐다. 안주는 치킨이나 족발 등 기름진 배달 음식이다. 김씨는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잠들 수 없어 늘 편의점에 들렀다가 귀가한다”며 “낮에는 입맛이 없어 잘 먹지 못하다가 집에 오면 고칼로리 음식을 시켜 먹게 된다. 점점 뱃살이 나오고 아침마다 얼굴이 붓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예 휴가를 앞당겨 한국을 떠나는 이도 있다. 직장인 임아무개(34)씨는 오는 10월께 뉴질랜드 여행을 계획했지만, 너무 더워서 여름휴가를 8월 둘째 주로 앞당겨 덜 더운 삿포로로 떠나기로 했다. 임씨는 “열대야 때문에 밤에 잠을 잘 못 잔다. 회사에서 일해도 능률이 오르지 않고 어떤 날은 출근하기도 싫어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역대급 폭염’에 병원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직장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의 한 내과 관계자는 “탈수 등 일사병 증상으로 오는 직장인 환자들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입맛이 없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다 보니 비타민 수액을 맞고 싶다며 오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강남구 청담동의 한 내과 관계자도 “온열질환으로 병원을 찾아와 주사 처방을 받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면서, 결국 날씨에 가장 취약한 ‘노인’들을 잘 살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의사인 남궁인씨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현재 응급실은 열사병 환자 천지”라고 전하며 “지금 노약자에게 실외는 무작위로 사람을 학살하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남궁씨는 이어 “정말 위험한 분들은 여러분 주변의 할머니, 할아버지나 이웃 노인분들”이라며 “주변 어르신들에게 외출을 자제하고 에어컨 있는 공간에서 가만히 누워 계시라고 해주셔야 한다. 노약자를 건강한 사람들이 챙겨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2일 현재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온열질환 감시체계’에 신고된 환자 수는 2549명이다. 지난 5월20일부터 8월1일까지 전국 응급의료기관 517곳이 보고한 수치다. 이 가운데 30명이 숨졌다. ‘온열질환 감시체계’가 운영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최고치다.

‘온열질환 감시체계’로 집계되지 않고 있는 폭염 피해 환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감시체계는 응급실을 찾은 ‘중증 온열질환 환자’만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통계를 보면,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하는 온열질환자 규모에는 실제 병원 진료를 받은 ‘폭염 피해 환자’의 10%가량만 집계된다.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2016년에 온열질환 감시체계에 잡힌 온열질환은 2125건이었지만, 건강보험 데이터를 분석해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를 따져보니 총 2만964명에 이르렀다. 올해 폭염 환자는 이 수치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한진 을지대학교병원 교수(가정의학)는 “입맛이 떨어지거나 기력이 없는 것도 온열질환의 일종으로 이는 젊은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나 맥주의 알코올은 이뇨작용을 일으켜 수분 손실을 촉진해 탈수나 일사병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 교수는 “평상시 물을 많이 마시고 차가운 채소와 과일, 약간의 당분과 염분을 섭취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신민정 장수경 황금비 황예랑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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