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건설현장 폭염 안전규칙 이행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건설노동자들이 기자회견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울산광역시에 있는 한 조선회사에서 하청 노동자로 일하는 ㄱ씨는 지난 7월 중순 폭염 속에서 분통 터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ㄱ씨는 그동안 바깥 온도가 32도가 넘으면 점심식사 뒤 1시간 동안 ‘더위 휴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난달 17일부터 협력사 노동자는 30분만 쉬라는 통보를 받았다. 오후 1시30분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작업개시 알림 방송이 나오면 하청업체 직원들은 일을 시작한다. 원청 노동자들은 그 30분 뒤에 휴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방송을 듣고 일을 시작한다. ㄱ씨는 “갑판 위에서 일하면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용노동부의 폭염 가이드도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폭염에 ‘휴식 차별’까지 두니 정말 화가 났다”고 말했다. 휴게 장소가 마땅치 않은 노동자들은 식당에서 박스를 빌려와 바닥에 깔고 누워 잔다고 했다. ㄱ씨는 “조선업 경기가 좋지 않아서 해고 등의 위험 때문에 나서서 항의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ㄱ씨의 동료인 ㄴ씨는 “다른 조선소에서 20년 가까이 일했지만 쉬는 거로 차별받기는 처음”이라며 “원청 직원들만 더위를 타는 것도 아닌데 임금 차별도 아니고 쉬는 거로 차별한다니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온다”고 말했다. ㄴ씨는 또 “30분 휴식도 원청 직원들이 근무할 때나 가능하다”면서 “공휴일처럼 원청 직원이 일하지 않는 날은 이마저도 없다”고 전했다. 반면 이 회사 관계자는 “휴식시간 결정은 협력사들이 알아서 결정한 일”이라며 “경영간섭이기 때문에 아무리 원청이라도 하청업체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폭염에 휴식 차별을 받는 노동자들은 이 회사뿐이 아니었다. 인근의 또 다른 중공업 회사인 ㅎ사 사내하청 관계자도 폭염 휴식 때 원청 눈치를 본다고 털어놨다. 그는 “원청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쉴 수 있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쉬다가도 일하라고 시키면 일할 수밖에 없다”며 “전에는 실외 온도 28도가 넘으면 점심시간이 자동으로 30분 연장됐다. 하지만 요즘엔 원청 노동자들이 쉬어야만 하청 노동자들도 같이 쉰다”고 말했다.
해마다 폭염이 극성을 부릴 것으로 전망되면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떠안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재난에 가까운 폭염 상황에서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고관홍 노무사는 “하청 노동자에 대한 업무지휘를 하청업체가 하더라도 원청의 노동 안전에 대한 책임을 아예 배제할 순 없다”며 “폭염이 원·하청 노동자에게 다르게 다가오는 것도 아닌데 차별적 처우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분석한 ‘제조업 51곳 원·하청 산재통계’ 결과를 보면, 하청 노동자의 사망 산업재해 비율은 원청의 8배로 나타난 바 있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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