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1심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자신의 정무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는 여성계 반발이 나온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는 14일 오전 10시30분부터 진행된 안 전 지사의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의 내심이나 심리상태를 떠나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만한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업무상 위력’ 행사 여부에 재판 결과가 갈렸다. 위력은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형·무형적 힘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심리상태와 관련해서 이른바 ‘그루밍’ 상태인지 아닌지, 학습된 무기력 상태는 아닌지 등을 신중히 살펴봤으나, 제반 증거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상황에 빠져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안 전 지사 쪽과 검찰은 위력 행사 여부를 놓고 지난 재판 진행 과정 내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안 전 지사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및 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는데 주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선 업무상 위력이 있었단 사실이 입증돼야 했기 때문이다.
앞서 피해자 김지은씨는 지난 3월5일
뉴스룸에 출연해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 당시 안 전 지사의 비서실에서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해명을 내놨으나, 안 전 지사는 다음날 새벽 1시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며 성범죄를 시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안 전 지사는 재판 과정에 태도를 바꿔 피해자 김씨와 합의에 의한 관계였음을 입증하는데 주력했다.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의 무죄판결을 놓고 규탄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여성계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여성계는 그동안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법원이 너무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우려해 왔다. 이날 재판 결과에도 이러한 사법부의 시각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날 무죄 판결로 안 전 지사는 일단 ‘성범죄자’라는 낙인에서는 벗어나게 됐다. 그러나 일그러진 여성관이 낱낱이 공개돼 정치권으로의 복귀는 꿈꾸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날 감색 정장을 입고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 출석한 안 전 지사는 취재진에 “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한 뒤 법정으로 향했다.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