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태풍 ‘곤파스’가 할퀴고 간 경기 구리시 강변북로 토평 IC 부근에 강풍으로 인해 전봇대와 신호등이 넘어져 전선들이 어지럽게 도로 위에 널렸있다. 북상하고 있는 태풍 ‘솔릭’은 곤파스보다 위력이 강할 것으로 추정된다. 구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두문불출.”
서울 종로구에서 자취를 하는 진아무개(29)씨는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지날 때까지 ‘생존’을 위한 방침을 정했다. 진씨는 “유리에 실금이 있었지만 교체 비용이 겁나 그냥 두고 있었는데 큰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테이프를 엑스(X)자로 붙여놨고 이후 젖은 신문지를 붙일 예정”이라며 “통풍이 잘 되는 집이라 태풍에 유리가 깨질까 봐 걱정이다. 주말 동안 계속 두문불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시민들은 ‘각자도생’을 위한 방도를 찾아 나섰다. 서울 번화가에 사는 직장인 신아무개(28)씨는 “번화가에 살아서 입간판 날아가거나 가로수가 넘어져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이 된다. 어제 퇴근길에 집으로 오면서 미리 위험한 물건이 없나 주위를 살펴뒀다”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태풍 대비 용품 판매가 크게 늘었다. 지(G) 마켓에서는 지난주(9일~15일)에 견줘 누전 차단기는 84%, 비닐하우스 자재는 41%, 장우산은 5% 판매가 늘었다. 지 마켓 관계자는 “우산, 장화, 사이드미러 방수필름 등이 판매량에서 전체 베스트 순위에 올랐다”며 “특히 누전차단기와 강한 바람에도 휘어지지 않는 튼튼한 장우산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높다”라고 말했다.
자녀를 어린이집을 보내는 부모들의 걱정도 깊다. 서울 사당동에 사는 직장인 한아무개(40)씨는 “6살, 4살 딸을 오늘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처가에 맡겼다”라고 말했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한씨는 “아이들이 태풍에 놀라거나 다칠 것이 걱정돼 당분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다행히 처가가 가까워서 아이들을 부탁할 수 있었지만, 안 그랬다면 걱정을 하면서도 애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영유아 안전을 위해 어린이집 등원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맞벌이 가정의 경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인천시에 사는 직장인 신아무개(38)씨는 “오늘은 어린이집이 쉬지 않아서 맡기고 직장에 왔다. 내일이라도 휴원을 하면 갑자기 연차를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걱정이다. 오늘도 어린이집에서 일찍 아이를 귀가시켜야 한다는 문자가 왔고 내일은 최소한의 선생님들로 운영한다고 하는데 아이 안전도 걱정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12년 동안 서울 서대문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한 한 원장은 “오늘은 60명의 아이들이 다 등원했다. 내일이 더 걱정이다. 맞벌이 하는 부모들이 갑자기 연차를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을 보내지 말라고 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별 대책없이 등원을 자제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무책임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윤의철 국가위기관리센터장(오른쪽)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태풍 ‘솔릭’ 대책 점검 영상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노인 복지 시설들도 운영을 중단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양천구에 있는 한 문화센터 관계자는 “태풍을 대비해 만전을 기해달라는 공문을 받아 내일은 평생교육 프로그램 등을 휴강하기로 했다”며 “원래 금요일마다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주말 동안 끼니를 때우실 대체식을 제공해 왔는데, 대체식 제공도 금토일 3일치를 오늘 모두 나눠 드리고 있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눈·귀가 어두운 홀몸 노인들에게 태풍은 더 큰 공포다. 강원 춘천시에 사는 이아무개(86)씨는 “혼자 사는 처지에 몸에 힘은 없고 테이프를 붙이는 일도 어렵다”며 “태풍이 강원도를 관통한다는데, 사고가 나거나 해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더 겁이 난다”고 말했다.
상인들도 태풍 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태풍이 소멸될 때까지 비상연락체계를 가동하고 피해상황 발생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각 시장 상인회에도 취약시설물 및 안전시설을 점검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실시간으로 피해상황을 모니터링하며 태풍이 소멸될때까지 비상체계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동대문구 풍물시장 관리사무소는 태풍에 대비해 각 가게의 간판과 천막을 점검하도록 점검했다.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관계자는 “통인시장은 천장에 유리돔이 있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지붕에 비가 새는지 확인하고 있다. 점포마다 각별히 태풍에 대비해서 주의조치를 해달라는 안내방송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환봉 신민정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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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태풍 ‘솔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