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정보시스템 첫 접속부터 47만건 다운로드까지
검찰 ‘미인가 정보 접속경위 재구성’에 수사력 집중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26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의원실 보좌진 고발과 압수수색 등 야당탄압과 국정감사 무력화 시도 중단과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검찰이 정부의 비공개·미인가 예산정보를 연일 폭로하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진수)는 우선 심 의원 쪽이 국가재정정보시스템에 접속한 경로, 이를 알아낸 경위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재정정보시스템에 처음 접속한 9월3일부터 자료 47만건을 내려받은 9월12일까지 열흘 간 국회의원회관 714호 심재철 의원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구성하는 것이 수사의 관건인 셈이다.
30일 <한겨레> 취재결과, 심 의원 쪽이 예산정보에 처음 접속한 시점은 9월3일이다. 황아무개 비서관이 2012년 발급받은 아이디(ID)를 사용한 사실이 재정정보시스템 접속기록에 남아있다. 의원실에선 다음날까지 이틀에 걸쳐 황 비서관의 아이디를 통해 서로 다른 아이피(IP)를 사용하는 3대의 컴퓨터가 돌아가며 재정정보시스템에 접속해 자료를 ‘서칭’했다. 이후 심 의원실은 4일에 김아무개 보좌관, 5일에 정아무개 보좌관의 재정정보시스템 아이디를 각각 새로 발급받았다. 그리고 이 때부터 미인가 예산정보 다운로드가 시작됐다.
심 의원실은 6일에 “재정정보시스템 교육을 해달라”며 이 시스템을 관리하는 한국재정정보원 관계자를 호출했다. 애초 1시간 정도 교육을 하려고 했지만 심 의원실은 자료를 내려받는 방법만 집중적으로 물어본 뒤 10분만에 관계자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후 심 의원실은 12일까지 190여차례 내려받기를 통해 47만여건의 미인가 정부예산 자료를 확보했다. 이런 내려받기는 심 의원 쪽의 접속기록을 확인한 재정정보원의 확인 전화(12일)가 걸려온 뒤에야 멈췄다. 의원실에선 보통 국정감사 자료를 정부에 요청할 때 이전 정부 등과 비교하기 위해 ‘최근 5년’ 등 기간을 둔다. 반면 심 의원실이 내려받은 자료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올해 9월까지였다. 심 의원실 보좌진 3명은 중복되는 내용 없이 서로 다른 정부기관의 자료를 각각 내려받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심 의원 쪽은 “재정정보시스템에 백스페이스 키를 누르다가 우연히 접속하게 됐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내려받은 미인가 예산정보에 접근하려면 크게 9단계를 거쳐야 한다. ①재정정보시스템 ‘예산배정결과’ 메뉴 이동 ②검색결과가 안 나오는 ‘잘못된’ 키워드와 검색시기 입력 ③이 상태에서 백스페이스키 2차례 누름 ④‘뉴루트’라는 관리자 화면이 뜬 뒤 특정 메뉴를 5단계 통과해야 접근할 수 있는 자료라고 한다. 12년 간 재정정보시스템 운용되면서 이런 방식으로 뚫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③단계까지 ‘우연히’ 갔다는 것 자체가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확률로 따지면 무한대에 가깝다”고 했다. 특히 관리자 화면 접속 이후에는 ‘통계청용’이라는 식으로 미인가 예산정보임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는 문구를 클릭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홍길동 집에는 ‘홍길동’ 문패를 달면 된다. ‘심재철 의원실 접근 금지’라는 문패를 안 달았다고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검찰은 접속 방법 외에 심 의원이 내려받은 자료의 ‘중대성’에 대한 법리검토도 하고 있다. 자료 중에는 청와대 건물의 정보통신 설비 관련 설치·유지·보수업체 자료, 청와대 식자재 납품업체 명단 등 ‘안보’ 차원의 자료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 내부에선 해당 업체들의 변경·교체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심 의원실 압수물 분석작업을 마친 뒤 정부로부터 고발된 심 의원 보좌관 3명을 불러 자료 확보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내부에선 ‘해킹’에 준해 처벌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반면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부가 밝히길 꺼리는 자료를 국민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했다면 죄를 묻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정치 논평 프로그램 | 더정치 136회 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