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에 배심원으로 선정된 사람들이 2008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에서 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선서를 하고 있다. 대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국참) 시행률이 10년째 제자리 걸음이지만, 대법원이 사실상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에 ‘올인’한 2015년부터 홍보·연구 목적의 외부참여기구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고, 홍보 예산도 줄곧 내리막길이었다.
9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국참 시행률은 10년째 평균 1%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국참 대상사건(1만9615건) 가운데 실제 국참이 열린 사건(295건) 비율은 1.5%에 그쳤다. 2008년(1.5%)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이다. 국참 대상 사건이 2012년 7월 유기징역 1년 이상 형사사건으로 확대되면서 접수 건수가 조금 늘었지만, 선정 비율은 그대로인 것이다.
그간 대법원도 국참 홍보나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대법원이 국참 교육·홍보를 위해 확보한 예산은 2013년 5억4100만원에서 2014년 6억100만원으로 늘었다가 2015년에는 4억4200만원, 2016년 2억2100만원, 2017년 2억1000만원으로 줄곧 줄어들었다.
국참 홍보와 연구 목적으로 만들어진 각종 기구 역시 ‘개점휴업’ 상태다. 대법원은 ‘국참에 대한 조사·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사법참여기획단(기획단·2008년~)을, ‘국참제도의 최종 형태를 결정하기 위해’ 국민사법참여위원회(위원회·2012년~)을 두고 있다. 각 법관, 검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기획단은 2014년 4월 이후로, 위원회는 2013년 3월 이후 활동이 없다. 구성원도 다시 위촉하지 않았다.
국참 홍보와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 역시 사실상 전무했다. 대법원 규칙에는 “필요한 경우 관계전문가나 단체에 조사·연구를 의뢰하거나, 공청회, 토론회, 여론조사를 통해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기획단은 2012~13년 ‘그림자 배심을 통한 평의 개선방안’ 등 4건의 연구용역을 심의했을 뿐이다. 위원회는 2013년 2월 ‘국참제도의 최종형태 결정을 위한 공청회’를 1차례 열었다.
대법원이 위원회 활동 등을 ‘중단’한 시점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거래’의 최종 목표였던 상고법원 입법에 총력전을 벌인 시기와 일치한다. 대법원이 상고법원 로비를 위해 사활을 걸던 2015년 ‘사법부 공보·활동 비용’으로 2억 6207만원이 집행됐다. 전해 8932만원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당시 대법원에서 근무했던 한 판사는 “상고법원 도입에 인력과 예산을 집중시키면서, 참여재판 등 개선 노력은 등한시한다는 불만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대법원은 국참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만큼 추가 홍보·연구에 대한 필요가 줄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위원회는 국민참여재판 최종 형태를 의결하고 개정 법률안을 성안한뒤 활동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후 위원 임기도 마무리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국참 정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민과 함께 하는 사법발전위원회’는 지난 6월 “국참을 민사재판으로도 확대하고, 중범죄에는 필수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시민의 법의식이 성숙한 만큼,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창구를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다. 백 의원은 “국민참여재판은 사법개혁의 방안이다. ‘무늬만 개혁’이 아닌,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 법원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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