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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론이 사형제 폐지 머뭇거려도 정부·의회가 결단 내려야”

등록 2018-10-16 05:01수정 2018-10-16 08:12

사형제, 폐지할 때 됐다 ②
라이터러 주한EU대사 인터뷰

1981년 프랑스 사형제 폐지 입법
국민 3명중 2명 반대 여론에도
미테랑 대통령-프 의회 통과시켜

EU 가입하려면 사형제 폐지 필수
2차 세계대전 ‘야만’ 남긴 교훈
“국가는 인간을 대표하는 단체일 뿐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믿는다”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유럽연합(EU) 대사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유럽연합 서울사무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유럽연합(EU) 대사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유럽연합 서울사무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유럽연합(EU)대표부 대사가 빙그레 웃으며 기자의 노트북이 놓인 무릎 높이의 ‘티테이블’ 상판을 허리 높이까지 올려줬다. 엄지를 척 올리며 그가 말했다. “하이테크(첨단기술)!” 이어진 너스레. “메이드 인 코리아~” 그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호쾌하게 웃었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유럽연합대표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라이터러 대사는 유머와 위트가 넘쳤다. 격식을 중시할 듯한 외교관의 인터뷰는 시작부터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사형제와 관련한 질문이 본격적으로 나오자 그의 표정은 진지하게 변했다. 그의 표정만큼이나 유럽은 ‘사형 폐지’에 대해서만큼은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유럽연합(EU·28개국)에 가입하려는 나라는 반드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 이들 나라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으려면 인도받은 범죄인을 사형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그는 유럽연합이 사형제 폐지와 관련해 이렇게 분명한 신념을 가지게 된 뿌리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찾았다. 유럽에서 시작된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2차 세계대전으로 적어도 6천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야만’의 시대를 견뎌낸 유럽인들에게 ‘인권’이란 개인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절대적인 가치로 떠올랐다고 한다.

물론 사형제 폐지의 길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사형제 폐지 법안을 냈을 당시, 프랑스 국민 3명 가운데 2명은 사형제를 지지하고 있었다. 여론의 반대에도 당시 프랑스 의회는 “올바른 입법을 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며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말과 함께 사형제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테랑 대통령과 프랑스 의회의 정치적 결단에 여론이 따라왔다. 이제 사형제 폐지는 유럽인들의 상식이 됐다.

“정부는 좋은 사회를 위해 여론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옳은 것이 무엇이고 사회에 좋은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정치인입니다. 사형제 폐지에도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라이터러 대사가 말했다.

잔혹한 범죄를 통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범죄 피해자들도 같은 심정일지 궁금했다. “범죄 피해자 가족들 역시 사형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사형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생명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죠.” 다만 전제가 있다고 했다. “범죄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심리적이고 재정적인 지원들이 충분히 이뤄질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자동차 사고 등 갑작스러운 죽음부터 범죄 피해까지 유가족들을 제대로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유럽은 그들을 홀로 두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홀로 두지 않는 공동체의 배려가 범죄자의 목숨조차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된 셈이다.

한국에서는 사형제가 폐지되면 강력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공포가 크다. 하지만 미하엘 라이터러 대사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유럽에서도 많은 언론이 범죄 보도를 합니다. 하지만 실제 통계를 보면 살인과 같은 중범죄는 (사형제 폐지 이후)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그는 재범이 우려된다면 종신형 등의 방식으로 사회와 격리할 수 있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화’하는 것이 ‘징벌’의 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유럽연합 대사가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형제에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는 인간을 대표하는 단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국가도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사형제 폐지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결론은 ‘리더십’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랫동안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인권을 위해 얼마나 싸워야 하는지 잘 아는 분입니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리더십을 잘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인권위는 오는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의 ‘사형제 모라토리엄(집행 중단) 선언’을 추진하고 있다. 라이터러 대사는 “한국 정부의 리더십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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