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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국서 태어났지만 무국적 민준이…“피를 멈추려면 골수이식뿐”

등록 2018-10-30 10:27수정 2021-07-06 15:43

알립니다.

지난달 30일 <한겨레> 20면에 소개됐던 골수이식이 수술이 필요한 민준(가명)이가 지난 18일 밤 사망했습니다. 민준이는 13일 갑자기 열이 올라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도중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금에 동참해주신 덕에 골수이식 수술을 받기 전 이식적합성검사를 진행하던 중이었으나 결국 의식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한겨레> 기사에서 소개된 계좌로 민준이의 치료비와 수술비에 사용해달라고 모인 후원금은 2138만 5980원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를 포함한 후원금 총 8762만 5880원을 민준이가 13일에 입원한 뒤 발생한 치료비 3100만 5890원을 지불하는 데 사용할 예정입니다. 남은 후원금은 민준이와 유사한 처지에 놓인, 치료가 시급하지만 병원비가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아동 등 의료비와 생계비가 급히 필요한 국내 아동을 돕는 데 소중히 사용하겠습니다. 후원금 반환을 원하시는 분께서는 세이브더칠드런 대표번호(02-6900-4400)로 연락을 주시면 반환 절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민준이 사연에 함께 가슴 아파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빠가 휴대전화 속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마스크 밖으로 눈만 드러낸, 아이 티를 벗지 못한 민준(가명·9)이가 눈으로 반달을 그렸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아빠 하용기(가명·48)씨는 “저랑 안 닮았죠? 엄마 닮았어요”라며 슬며시 웃었다. 휴대전화 사진첩엔 축구 하는 걸 좋아했던 아들은 간데없고 마스크를 쓰고 환자복을 입은 모습만 늘었다. 서울 강서구의 집에서 인터뷰하기로 한 민준이는 인터뷰 이틀 전 열이 오르고 코피를 쏟아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이렇게 응급실에 실려 온 것만 10번이 넘었다.

지금 민준이는 피를 만들어내지도, 피를 흘리면 멈추지도 못한다. 입안과 코에서 피를 흘리거나 온몸에 피멍이 든다. 대변을 보다가 피를 쏟기도 한다. 두달 전 민준이는 거의 한 양동이를 다 채울 정도로 코피를 쏟았다. 하씨는 “처음엔 아이가 피 흘릴 때 무서웠는데 이제 많이 단련됐다. 근데 민준이는 무서운지 피를 그냥 삼킨다”며 한숨을 쉬었다. 민준이의 병명은 이름도 낯선 호중구감소증. 골수에서 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합병증이었다. 간이식 환자 10명 가운데 2명이 걸린다고 했다. 민준이는 지난해 간이식을 받았다.

무엇보다 아이 몸에 피가 부족하니 혈관 찾기가 고역이다. 수혈을 받으려고 3시간 동안 민준이의 팔에 바늘이 꽂혔다 빠졌다 한 적도 있다. 병실에서 축 늘어진 민준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눈물이 쏟아진다. “민준이가 그래요. 아빠 울지 말라고,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부모가 대신 아파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더 속상하죠.” 하씨의 눈이 젖었다. 5살에 두발자전거를 탔을 정도로 민준이는 운동신경이 좋았다. 하씨는 “민준이가 5살 됐을 때 자전거 안장을 두번 정도 잡아줬더니 바로 타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학교에서도 친구들이랑 공 차고 노는 걸 좋아했어요. 제가 쉬는 토요일이면 축구 하러 가자고 조르기도 하고요.” 인터뷰 내내 얼굴이 어두웠던 하씨의 얼굴이 이때만 유독 밝아졌다.

호중구감소증으로 골수이식이 필요한 한 무국적 아동의 아버지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호중구감소증으로 골수이식이 필요한 한 무국적 아동의 아버지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던 민준이가 병원을 제집처럼 삼은 건 지난해 2월 초부터다. 설날을 막 지낸 다음 주였다. 갑자기 몸에서 열이 40도 넘게 오르고, 얼굴이 노래졌다. 집 근처 소아과에선 감기라며 약을 3일치 처방해줬다. 약을 다 먹은 뒤에도 열은 내려가지 않았고 얼굴색은 돌아오지 않았다. “얼굴이 노랗게 된 게 간이 안 좋다는 증상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감기약을 먹였으니….” 하씨가 자책했다.

하씨는 ‘그날’을 불안으로 기억했다. “낮에 신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병원에 간다던 아내와 민준이가 없었어요. 저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집에서 아내를 기다렸는데 밤이 되도록 오지 않더라고요.” 하씨는 10여년 동안 서울 마포구 망원동 인근 종이공장 등에서 일을 하다가 몇년 전 목사 안수를 받고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감기약을 먹고도 낫지 않아 다시 병원을 찾은 아내와 민준이를 기다리던 하씨는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하는 농수산물 상하차 일을 나갔다. 걱정이 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밤 12시께, 함께 일하는 동료의 휴대전화를 빌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그제야 말하더라고요. 민준이 간이 망가져서 간이식을 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민준이의 병명은 갑작스럽게 간세포가 파괴돼 제 기능을 못하는 급성 간부전증이었다.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당시 8살이던 민준이는 피검사를 하는 도중 쇼크가 왔다. 하씨는 “지금 민준이가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방법은 간이식뿐인데 비용이 만만찮았다. 전세금 3500만원짜리 반지하에 사는 하씨에게 1억5천만원은 가늠되지 않는 돈이었다. 다행히 병원과 교회·단체 도움으로 이식 수술 비용을 마련했다. 이식 수술만 하면 다시 건강한 민준이로 돌아오는 줄 알았다. 남들은 수술 뒤에 죽도 잘 못 먹는다던데 민준이는 바로 밥을 먹었다. 다시 민준이와 함께 자전거 탈 날만 꿈꿨다. 그러나 그 꿈은 단 3개월도 가지 못했다.

간이식을 한 뒤 민준이는 하루에 10번 이상 약을 먹었다. 약이 독한지 아이 얼굴이 퉁퉁 부었다. 간이 좋아지는 과정이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소아당뇨가 왔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15일 만이었다. 엄마가 놓아주는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당뇨는 잡혔지만 뒤이어 호중구감소증이 찾아왔다.

새 피가 만들어지지 못하면서 피를 흘리니 지난해 7월부터 받고 있는 수혈이 점점 잦아졌다. 20일에 한번에서, 10일에 한번, 1주일에 한번, 지금은 1주일에 두번 수혈을 받는다. 열이 오르면 응급실로 와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일주일에 세번 발생할 때도 있다. 수혈 비용은 평균 주당 150만원. 목회 활동으로 70만원과 농수산물 상하차 일을 해서 80만원 더해 한달을 벌면, 민준이 1주일 수혈비로 몽땅 나가는 셈이다. “이틀 사이 응급실 비용으로 300만원이 넘게 나왔어요. 작년부터 응급실에 실려 온 게 10번이 넘어요.” 하씨가 한숨을 지었다.

민준이가 마스크를 벗으려면 골수이식을 해야 한다. 민준이보다 5살 많은 중학생 누나가 자신의 골수를 검사하겠다고 나섰지만 검사 비용만 500만원, 이식하는 데는 1억5천만원이 필요하다. 최소 1억원 이상은 모여야 이식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민준이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조선족(재중동포)인 하씨가 1992년에 친인척 방문 비자로 한국을 찾았다가 무등록 체류자가 된 탓이다. 민준이와 민준이 누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현재 국적이 없는 상태다. 하씨는 “중국에 돌아가려고 여권을 만들려고 했지만 중국 호적이 말소됐더라고요. 호적을 살리려고 중국에 돌아가면 5년 동안은 중국 밖으로 나올 수가 없어요. 이미 한국에서 치료를 받아왔는데 그렇다고 아픈 아이를 중국에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아이들도 한국이 자기 나라인데 왜 중국으로 돌아가냐고 하고요.” 한국어가 서툰 중국인 아내와 아픈 아이를 두고 혼자 중국에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아픈 아이를 데리고 중국에 갈 수도 없다.

급성간부전증으로 간 이식을 받은 뒤 호중구감소증을 앓고 있는 민준이는 몸에 피가 부족해 혈관을 찾기가 어렵다. 3시간 동안 혈관을 못 찾아 바늘이 수차례 민준이의 팔을 찌른다. 사진 하용기(가명)씨 제공
급성간부전증으로 간 이식을 받은 뒤 호중구감소증을 앓고 있는 민준이는 몸에 피가 부족해 혈관을 찾기가 어렵다. 3시간 동안 혈관을 못 찾아 바늘이 수차례 민준이의 팔을 찌른다. 사진 하용기(가명)씨 제공

하씨는 일을 마치고 새벽에 집에 돌아가면 놀아달라고 간지럼 태우던 개구쟁이 민준이가 그립다. “교회에서 제가 연습할 때면 민준이가 옆에 앉아서 드럼을 뚱땅거렸어요. 민준이가 얼른 건강해져서 저는 기타 치고 민준이는 드럼, 누나는 피아노 함께 치면서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

한달 전 하씨는 옆집에서 버린 자전거를 2만원 주고 고쳤다. 민준이가 밖에 나가고 싶어 해서였다. 5살에 자전거를 뗀 민준이는 9살인 지금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1년10개월째 학교도 못 가고 집과 병원만 오가고 있다. 민준이가 답답하다고 하면 하씨는 민준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 공원에서 민준이를 자전거에 태워 두서너 바퀴 돌고 온다.

“애들한테 미안한데 가족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요. 민준이가 6살에 바다에 처음 가봤는데 가족끼리 바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요. 언젠가 다시 함께 갈 수 있겠죠?” 민준이의 꿈은 아빠의 꿈이 됐다.

보도 이후…메릴린씨 사연에 3439만원 정성

<한겨레>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한 ‘2018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남편과 사별하고 세 아이와 고군분투하는 필리핀 이주여성 메릴린(가명)의 사연(▶기사 바로 가기)이 소개된 뒤, 목표액인 1천만원을 훌쩍 넘긴 총 3439만670원(10월29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다.

대한적십자사는 “기사가 나간 2일 적십자 희망풍차 콜센터(1577-8179)를 통해서 후원 문의가 쇄도했다”며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서도 ‘희망을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등 따뜻한 응원 메시지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대한적십자사는 “후원해준 정성은 메릴린 가족의 생활안정자금과 아이들 교육비로 사용되며, 목표액을 넘어선 후원금은 메릴린과 같은 어려운 상황의 다른 위기가정에 지원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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