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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스타강사 ‘이중생활’ 적발 한 달…‘대치동 1등’ 학원은 여전히 성업 중

등록 2018-11-07 11:09수정 2022-08-18 16:20

[뉴스AS]
‘겸직금지’ 어긴 금감원 직원·교수 활동한 유명학원
벌점·과태료 처분받았지만 입시철 앞두고 성업 중
복잡한 입시제도 속 고3에게 논·구술은 “생명줄”
6일 낮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ㄹ논술구술 학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6일 낮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ㄹ논술구술 학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ㄹ학원이요? 논·구술로 이 동네에서 손꼽히는 학원 중 하나요.”

“아, 그 ‘서울대 구술반’ 선생님! 원래 공무원이었다던데… 잘 가르친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2019학년도 수능을 열흘 앞둔 5일 오후,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습니다. 학원들이 밀집한 은마아파트 네거리에서 고3 수험생들을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혹시 ‘ㄹ학원’과 ‘그 선생님’을 아시냐고.

네이버에서 ‘대치동 논·구술 학원’을 검색하면 쉽게 이름을 찾을 수 있는 이 ‘ㄹ학원’은 한 달 전 있었던 어떤 ‘사건’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금융감독원 직원과 수도권 소재 대학의 한 교수가 신분을 속인 채 10년 가까이 입시 강사로 활동해온 사실이 서울방송(SBS) 탐사 보도 프로그램인 ‘SBS 뉴스토리’ 보도로 밝혀진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배우자의 이름으로 구술고사 강의를 해오면서 서울시교육청에 강사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배우자의 계좌로 급여를 받으면서 은밀히 ‘이중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각각 공공기관운영법 제37조와 교육공무원법이 정한 ‘영리 목적의 겸직금지 조항’을 어긴 불법 행위였습니다. 학원 역시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습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됐음에도 대치동 현장에서 ㄹ학원은 온라인 입시정보 커뮤니티에서 ‘논·구술 1등 학원’으로 불리는 명성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 보였습니다. 스스로 “공부를 포기했다”고 답한 학생이 아닌 이상 대치동에서 ㄹ학원을 모르는 수험생은 거의 없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해당 학원은 본격적인 입시철을 앞두고 여전히 성업 중이었습니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ㄹ학원은 다음 주 수능이 끝난 뒤 치러지는 대학별 논·구술고사 대비반에 대한 학부모들의 문의가 줄을 이었습니다. “불법적으로 강사를 채용했던 학원이 왜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거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선 이번 일로 ㄹ학원이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과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학원은 지난달 8일 지도점검 결과 ‘강사 미신고’에 따른 벌점 5점, ‘거짓광고’(교육청에 신고하지 않은 강사를 누리집 등에 광고) 벌점 10점, 두 강사를 채용할 때 아동학대·성범죄 등 범죄경력 조회 의무를 어긴 과태료 550만원의 행정 처분을 받았습니다. 자원봉사도 아니고, 고급 정보를 다뤘던 금감원 직원들과 대학교수의 지식을 특정 입시학원에서 불법적으로 ‘판매’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ㄹ학원에 대해 영업 정지 조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에게 묻자 “(영업정지는) 누적 벌점이 31점을 넘어야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겸직금지 규정을 어긴 금감원 직원과 대학교수는 어떻게 됐을까요? 금감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재 내부 감찰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이달 안에 감찰이 마무리되면 그 결과에 따라 징계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대학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징계 여부와 관련해 확인해줄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대치동 학원업계의 시선은 복잡 미묘합니다. 한 대치동 학원 관계자는 “ㄹ학원은 3~4년 전 탈세 문제로 수억원의 추징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았다”면서도 “강사 불법채용 이슈로 학원 이미지 타격이 꽤 클 텐데, 1년 매출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입시철을 잘 넘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귀띔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ㄹ학원의 성장은 최근 입시 트렌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ㄹ학원이 바로 대치동 ‘돼지엄마’ 학원의 효시이자, 학부모 원장의 성공모델로 주목받는 학원이기 때문입니다. ‘돼지엄마’는 엄마 돼지가 새끼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듯 대치동 등에서 또래 학부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엄마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이 학원의 대표는 2004년 딸을 서울대 법대에 합격시킨 뒤 이듬해인 2005년 딸을 가르쳤던 유명 강사들을 불러 모아 직접 학원을 차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ㄹ학원과 더불어 대치동 인문계 논·구술 학원 ‘빅3’로 꼽히는 ㅇ학원과, ㅍ학원의 원장 역시 이 학원에서 강의를 하다 독립한 경우입니다. 소규모 학원까지 포함하면 “대치동 인문계 논술 강사의 80%가 ㄹ학원 출신일 것”이라는 ‘설’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 관계자는 “논술시험이 대입에 도입된 1994년부터 약 10년가량 이른바 ‘서울대 운동권’ 출신 강사들이 꾸린 1세대 논술학원들이 대치동을 접수했다면, 2005년 ㄹ학원의 개원을 기점으로 ‘학부모 학원’(학원 강사 출신이 아닌 학부모가 자녀를 특목고-명문대에 진학시킨 경험을 살려 차린 학원)이 등장하면서 대치동 논·구술 학원 시장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한겨레 자료사진

이런 ‘1세대’와 ‘2세대’의 교체가 입시제도 변화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한 유명 입시전문가에게 이 ‘변화의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ㄹ학원은) 대학들의 논술 출제경향이 달라지면서 생긴 학원들 중 하나죠. 2000년대 중반 무렵까지 출제됐던 논술 유형은 주어진 제시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2000자 내외로 전개하는 ‘글쓰기 시험’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최근 대학 논술고사에서 나오는 문제유형은 요구사항에 맞춰 400자 또는 800자 내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답이 있는 논술’인 거죠. 한때 1세대 논술학원들이 프랜차이즈화에 성공했던 것도 ‘글쓰기’를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그런데 대학들이 학생 선발의 변별력을 높이겠다고, 문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줄이기 위해 ‘답이 있는 논술’을 출제하기 시작하면서 이젠 각 대학별로 출제경향을 분석해 관련 지식을 가르쳐야 하거든요.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됐던 1세대 논술학원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사이 ㄹ학원처럼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한 같은 2세대 학원이 성장하게 된 거죠.”

-유성룡 입시분석가-

결국 글쓰기를 통해 수험생의 통찰력과 사유의 깊이를 살펴보려 했던 애초 논술 시험의 취지를 사라지고, 지식을 조합해 정답을 제시하는 논술 아닌 논술이 대세가 되어 버렸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사교육을 통해 ‘논고급 지식’을 배울 수 있는 학생들이 입시에서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대치동에서 만난 ‘강남 8학군’ 고3 학생들에게 ‘입시에서 논·구술고사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물었습니다. 이들의 하소연을 직접 들어보실까요?

“논술은 ‘생명줄’이에요. 구술은 내신 1등급 애들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서울대 갈 때 보는 거고. 학종으로 대학 가는 애들은 정말 극소수잖아요. 특히 이 동네에서는. 그렇다고 (수시가 아닌) 정시만 파기에는 (모집 인원이 적어) 문이 너무 좁고. 그래서 본인 논술(실력)이 안 된다고 생각해도 내신 1~2등급 아니면 다 (수시) 논술전형으로 가는 분위기에요.” -이아무개(18)양-

“수시 논술전형은 경쟁률만 놓고 보면 학종보다 훨씬 더 심해요.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그거(논술)밖에 없는 거예요. 학종은 내신 커트라인 자체가 너무 높으니까 고2 말부터 1년 잡고 논술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요.” -장아무개(18)양-

“논술은 생명줄이다”라는 대치동 수험생들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습니다. 2015학년도 전체 대학 선발 인원 가운데 수능 전형의 비율은 34.8%였지만, 이번 2019학년도 입시에선 23.8%로 4년 전보다 10%포인트 이상 줄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학생부 중심 전형은 55%에서 65.7%로 늘어났습니다.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술 뿐만 아니라 최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구술도 대치동 수험생들에게 ‘생명줄’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금감원 직원과 사립대 교수도 수능 전형 비율이 줄어든 대신 자기소개서 등 학생부 중심의 수시모집 비중이 높아지면서 대치동에서 이름을 알린 구술 전문강사들로 전해집니다. 2010년대 들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서 실시하기 시작한 구술고사는 주어진 제시문에 대해 면접관이 추가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푸는 형식의 면접으로, 생활기록부 등을 토대로 질문을 받는 서류기반 면접과 비교해 사교육 없이는 대비가 어렵다는 게 수험생들과 입시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대학입시 전형은 날로 복잡해지고, 그 결과 사교육의 도움 없이는 원하는 대학에 원서 한 번 내기조차 힘든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대치동 ㄹ학원은 어쩌면 ‘오아시스’처럼 간절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나마 대치동 ㄹ학원에 다닐 수 있는 소수의 ‘강남’ 수험생들이 입시에서 상대적인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심지어 불법적인 일까지 저지른 ㄹ학원이 입시철 ‘대목’을 누리며 성업 중인 상황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과거 대치동 일타 강사가 모의고사 문제를 유출해 구속됐다가 출소 한 달 만에 강의를 시작해 문제가 된 적이 있었죠. 사교육 기관을 관리 감독해야 할 교육 당국의 처벌조항이 너무 가볍기 때문에 이번 일과 같은 불법이 반복되는 거예요. 월 매출이 억 단위가 넘어가는 학원들인데, 고작 몇백만원의 벌금이 두려워 자정 노력을 하려고 할까요? 아니죠. ㄹ학원도 벌금 얼마 물어내고 계속 영업을 하잖아요. 학원들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을 저질렀을 때 강력한 제재를 해야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선 영업 정지 일주일도 가벼운 처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학원업으로 등록하지 못하게 한다든가 처벌을 강화해야죠.”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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