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1주기였던 지난해 5월28일 오후 사고 현장인 서울 광진구 구의역 9-4 승강장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케이크와 추모의 꽃 등이 놓여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대 때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잘못된 문제를 바꾸려면 법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국회의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정당에 가입했는데, 제가 30년 넘게 살아온 관악구에서 이정희 대표가 출마를 준비한다는 거예요. 마침 저는 군대를 전역한 직후라 백수였고, 이정희 후보 사무실 사무장이 아는 분이었어요. 입대 전 홍보, 디자인 쪽 일을 했던지라 ‘잠깐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들어갔는데, 후보가 출마를 접으면서 실직자가 됐죠. 2014년 때도 주변에서 하도 부탁을 해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만 했는데, 실제 출마는 안 해서 명함 한 번 안 찍어보고 그냥 끝났어요.”
“선거 사무실을 나온 뒤 다시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는데 컴퓨터 앞에서 하는 일이 잘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공사현장 일을 시작했어요. 제가 교통공사 입사 전 동종 업무 경력이 없다고들 하는데, 이화여대 신축 기숙사를 제가 지었거든요? (웃음) 기숙사 공사장에서 전기 관련 일을 하다가 교통공사 채용공고를 보고 2016년 9월 입사하게 된 거예요.”
지하철 정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이 작업을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한다. 비정규직이라고 단순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정치인들이 저희에 대해 ‘귀족’ 운운하는데, 그런 말하는 국회의원들이 우리 식당에서 하루만 일해 본 다음 그런 소릴 하면 억울하지나 않겠어요. 기사에 달린 댓글에 ‘일반식당에서 일하면 한 달에 150만원 받는데 당신은 연봉 7000만원 받지 않냐’라는 글이 올라와요. 진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21년 동안 내 식구 밥은 못 챙겼어도 서울교통공사 직원들 밥은 꼭 챙겨줬거든요. 근데 식당조리원이 정규직이 됐다고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아야 하나요? 젊은 친구들이 온다고 하면 저는 대환영이에요. 몇 년 전에 들어왔던 20대 직원도 1년을 버티다 나갔거든요. 일이 너무 힘드니까 식당에서 일하다 오신 분들도 금방 일을 그만둬요. 최악의 노동환경에서 최악의 힘든 일을 하며 버틴 21년인데, 정규직이 되려면 꼭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식당에서 일하는 내 노동의 가치가 그렇게 값어치 없는 거였나?’ 비참하단 생각이 들어요.” -지축차량기지 식당조리원 최명임씨-
“인사처장이 실제로 알았던 몰랐던 결과적으로 부인이 명단에서 누락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처음 의혹이 제기됐을 때 있는 사실 그대로 밝히고, 인사처장이 책임을 지면 됐던 거예요. 그때 제대로 답변을 했으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커지지 않았겠죠. 그런데 우물쭈물하며 의혹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니까 마치 진짜로 뭔가 숨기는 집단처럼 비친 거죠. <조선일보>가 10월19일치 신문에 ‘노조 전 간부 아들이 세습 고용됐다’고 보도했는데, 오보였잖아요. 사과 기사도 내고. 1만7000명 직원 전체를 비리 집단으로 만든 데는 서울교통공사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유성권 서울교통공사 노조 쟁의국장-
“그분(인사처장 부인)은 2001년에 기간제로 입사해 (식당에서) 17년을 일했어요. 그런데 정규직이 되겠다고 17년을 기다리는 일이 세상에 있을까요? 영양사, 조리사로 대접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저처럼 한여름에 불가마 같은 솥 앞에서 곰국 끓이면서요? 그냥 17년 전에 남편이 ‘월급은 적어도 그냥 집에 있는 것보다 낫지 않아?’라고 하니까 식당에서 반찬 만드는 일 하다 올해 3월 자연스럽게 정규직이 된 거예요.” -지축차량기지 식당조리원 최명임씨-
일의 경중으로 직군을 구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제공
“민규는 저랑 같이 일했던 친구 거든요. 그 전부터도 무기계약직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글이 게시판에 많이 올라온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거나 좌절하는 동료들이 많았어요. 민규가 죽고 난 직후에도 게시판이 폐쇄되기 직전까지 ‘무기계약직들이 시체팔이 한다’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어요. 그때 가장 충격이 컸죠.” -15년 경력 전동차 정비사 ㄱ(42)씨-
“작년에 소통게시판 문제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올해도 서울시 인권담당관에 찾아가 또 진정서를 접수했어요. 게시판의 글들을 보면 무기계약직 출신인 저희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도 있지만, 특성화고를 졸업해 기능 인재로 입사한 사원들에 대해선 ‘고졸’이라고, 역내 사무실에 여성 침실이 없어 교대근무에서 배제된 여자 사원들에겐 ‘역차별’이라며 여성혐오를 드러내죠. 사내 익명 게시판이 정보공유라는 취지에 맞게 쓰이는 것보다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인격모독이 많아요.” -임선재 서울교통공사 승강장안전문(PSD) 지회장 -
“저는 가끔 지나가는 개를 보면서 너도 우리 회사 오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단다 우쭈주라고 합니다~”
-2018년 10월29일 오전 9시37분 ‘의견2’ 이름으로 작성된 댓글-
“정문으로 제대로 해서 들어와 찌질아. 누가 찌질이인데, 비정규직 주제에 무기계약직만 해줘도 절하고 감사해야지 어디서”
-2018년 10월23일 오후 5시48분 ‘의견5’ 이름으로 작성된 댓글-
“음식 잘못돼서 탈 나면 책임집니까? 책임이라곤 1도 없는 직무가 정규직 노래를 불러싸 토론회 때 바락바락 소리 지를 땐 언제고 ㅋㅋㅋ”
-2018년 10월23일 저녁 7시20분 ‘의견37’ 이름으로 작성된 댓글-
“기능 인재랑 대졸자랑 같이 취급한다는 건 능력이 비슷하다는 건데, 그럼 본사에서도 기능 인재 친구들 데려다가 써라 하면 안 그럴걸? 말 안 해도 이유는 뻔하다. 대졸자들이 일을 더 잘하니까 그렇다. 근데 월급은 기능인재가 오히려 더 높다. (현장이니까) 기능 인재도 시대 잘 타서 그런 거라 얘들을 뭐라 하고 싶은 생각 전혀 없다. 다만 회사에서는 대졸자들에 대한 차이를 분명 둬야 한다는 거다.”
-2018년 4월27일 오전 10시53분 ‘무명’ 이름으로 작성된 게시글-
“토익 만점. 플랙스(FLEX) 러시아어 850, 독일어 780. 태셋(TESAT) S급. 과거 사기업에서 외국인 바이어 상대해 봐서 영작 실력도 수준급이고 군 생활도 미군 부대에서 해서 회화 실력도 좋은 편이데… 다녔던 회사가 IT 쪽이라 컴퓨터도 좀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지금 고등학교 졸업한 기능 인재들과 똑같은 역무 일하고 있고, 얼마 전까지 업무직이었던 분들과 똑같이 7급 달고 있음. 기능 인재들이나 업무직 출신들을 무시하자는 게 결코 아닙니다. 단지 제가 이 나이 먹도록 공부를 하기 위해 쏟아부었던 시간들과 돈, 그리고 사기업에서의 여러 가지 경험들이 이렇게도 의미가 없구나… 그런 생각에 회의감이 계속 드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렇죠. 공채시험 봐서 제가 이 회사 들어왔으니 제가 책임져야죠. 정 싫으면 지금이라도 틈틈이 공부를 해서 이직을 하든가요. 그래도 뭔가가 조금은 공평하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기왕 욕먹을 거 유치한 자랑 더 하자면 국어능력검정시험도 2급이고 한국사능력시험도 1급임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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