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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밀어버린 달동네, 밀려나 20년째 ‘비닐집’ 사는 할머니

등록 2018-11-20 05:00수정 2018-11-20 14:05

[긴급 점검 -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 ②]
비닐하우스촌 과천 꿀벌마을


수도권 개발정책에 밀린 달동네 사람들, 비닐하우스촌 정착 뒤 장기거주
“상수도·전기시설 등 기본 권리 보장 못받아…화재위험도 상존
불법 건축물 꼬리표 뒤에 정부의 ‘저소득층 주거정책 실패’ 있어”
지난달 4일 배광자(78)씨가 경기도 과천 꿀벌마을에 있는 비닐하우스 문 앞에 써둔 안내문을 설명하고 있다. 하루에 한번 지역 복지관에서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는데, 담당자가 혹시나 집 문이 닫혀 있어 그냥 지나칠까 싶어 붙인 글이다. 과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달 4일 배광자(78)씨가 경기도 과천 꿀벌마을에 있는 비닐하우스 문 앞에 써둔 안내문을 설명하고 있다. 하루에 한번 지역 복지관에서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는데, 담당자가 혹시나 집 문이 닫혀 있어 그냥 지나칠까 싶어 붙인 글이다. 과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은 적게는 40만, 많게는 228만가구로 추정된다. 불이 나서 여러 명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시선에 들어온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지난여름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집 아닌 집’에 사는 203가구를 면접조사했다. <한겨레>는 이 가운데 16명을 추려 심층 인터뷰를 했다. 이들의 삶과 구조적 문제점을 추적해 3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추워서 큰 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노크하고 사람이 없을 경우 옆에 작은 문으로 오셔서 인기척을 하시고 밥 가방을 놓고 가시면 매우 감사히 먹겠습니다. 추운 날씨 감기 조심하세요.’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꿀벌마을. 낡은 합판으로 만들어진 대문에 집주인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쓰인 안내문이 붙어 있다. 78살 배광자는 지난겨울 안내문의 글씨를 직접 써넣었다. 지역 복지관에서 하루에 한번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는데, 담당자가 혹시나 집 문이 닫혀 있어 그냥 지나칠까 싶어 붙인 안내문이었다. “겨울에 너무 추워서 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어. 복지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면 안 되니까 써 붙여놨어.”

배광자가 거주하는 비닐하우스는 곳곳에 물웅덩이가 팬 골목길보다 한 계단 정도 낮다. 혹시 몰라 대문 옆으로 모래주머니 10여개를 차곡차곡 쌓아놨다. “비가 오면 매일 물이 방으로 들어차. 골목길보다 집 바닥이 더 낮으니까. 빗물 막으려고 문 옆에 모래주머니를 갖다 놓은 거거든.”

혹시나 비에 젖을까 안내문 종이 위를 투명한 비닐로 덮었지만 글씨는 이미 빗물에 번진 지 오래다. 배광자가 거주하는 비닐하우스는 대표적인 ‘비주택’이다. 비닐하우스가 밀집한 과천 꿀벌마을은 경마공원역 6번 출구 주변에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인구수는 700여명, 가구수는 388가구에 이른다.

■ “20년 살았어도 집처럼 느껴지지 않아”

집을 안내하는 배광자의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다. “(허리가) 아프기 전에는 밭일도 다니고 봉사활동도 다녔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못해. 몸이 아프니까.” 배광자의 집은 작은 비닐하우스 한 동의 5분의 1 크기다. 여름철 뜨거운 햇볕을 막기 위해 비닐 위를 검은 천으로 덮었다. 비닐하우스 내부는 판자로 둘러쌌다. 부엌 한켠에는 복지관에서 제공한 2ℓ짜리 생수 너덧 상자가 쌓여 있다. “집에 상수도가 없어. 모터를 돌려서 지하수를 퍼야 하는데 겨울이면 모터가 얼어서 물을 못 퍼. 변기도 없어. 변기 물을 내려야 하는데 상수도가 없으니까.” 16㎡(5평) 남짓한 주방, 29㎡(9평) 남짓한 침실, 19㎡(6평) 남짓한 다용도실을 합하면 말 그대로 배광자가 거주하는 비닐하우스 크기가 된다. 대문으로 창을 하나 만들어놨지만 때 이른 추위 탓에 열지 못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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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광자는 1940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한국인이었던 어머니는 일본의 우산공장에서 일하다 1945년 다섯살 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 고향은 충남 아산군 둔포면 둔포리. 일본 이름이 ‘기어코’야. 일본에서 엄마가 나한테 ‘기어코’라고 불렀어.” 가난했던 탓에 ‘국민’학교를 마친 뒤엔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고 도배 장사, 화장품 장사 등 ‘안 해본 장사가 없었다’. 23살이 되던 해에 결혼을 해 경기도 파주시(당시 파주군)로 이사했지만 결혼도 가난의 도피처를 만들어주진 못했다. “남편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못살았어, 아주. 1980년도에는 사글세 2만원짜리 쪽방에서 네 가족이 같이 살기도 했고. 그때만 해도 2만원이 큰돈이었거든.”

평생 벗어나본 적 없는 가난은 언제나 집을 통해 가장 먼저 드러났다. 배광자는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글셋방을 전전하다 경기도 평택시 송탄(당시 평택군 송탄읍)의 한 고등학교 급식소에서 일할 때는 학교 숙직실 한구석을 빌려서 살았다. 1991년 교통사고를 당한 남편의 수술비 때문에 살길이 막막해지자 평소 알고 지내던 교회 목사가 의왕시의 비닐하우스를 소개해줬다. “의왕 비닐하우스에서 한 3년 정도 살다가 1994년에 여기(과천 꿀벌마을)로 이사 왔어. 이 비닐하우스를 700만원에 샀어. 먼저 두 사람이 살다 나가고 내가 세번째 사람이래. 와서 보니까 집이 말도 못해. 사람 사는 집이 아녀. 대추나무, 감나무가 집 안에 있었는데, 뭐.” 24년 전 700만원은 배광자에게 큰돈이었다. 그러나 1년에 한번 ‘도지세’(땅을 빌리는 대가로 땅 주인에게 주는 돈)를 내면 내 집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20년 전 20만원이었던 도지세는 현재 50만원까지 올랐다.

자녀를 결혼시키고 난 뒤 배광자는 1998년부터 몸이 아픈 남동생을 데리고 비닐하우스에서 20년 동안 병수발을 하며 살았다. 배광자도 허리가 아픈 탓에 지난 9월 남동생을 요양병원으로 보내고 혼자 지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배광자가 한달에 받는 돈은 기초연금을 포함해 35만원 남짓. 땅 주인은 비닐하우스 철거를 위해 배광자에게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35만원을 생활비로 쓰기에도 벅차 이주는 꿈도 꾸지 못한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 파출부부터 시작해서 급식소에서도 일하고 밭매러 다니고 험난하게 살았는데, 20년을 넘게 이 집(비닐하우스)에 살았어도 집같이 느껴지지가 않어. 겨울에는 물(지하수)이 얼어서 나오지도 않고 보일러도 고장 났고. 왜 (시청에서) 수도도 안 놔주는지 몰라. 우리가 사람 같지 않나봐. 빈해도 사니께.” 배광자가 비닐하우스 모양대로 둥글게 내려앉은 집 천장을 보며 말했다.

배광자씨가 과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촌의 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과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배광자씨가 과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촌의 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과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밀려난 사람들이 모인 경마공원대로 90-13

배광자가 거주하는 과천 꿀벌마을, 경마공원대로 90-13번지는 ‘주거용 비닐하우스’ 밀집 지역이다. 비주택 유형을 ‘고시원·쪽방·판잣집/비닐하우스’ 등으로 나눠 조사하기 시작한 2005년부터의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판잣집/비닐하우스는 2005년 2만1630곳에서 2010년 1만6475곳, 2015년 1만1409곳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주거용 비닐하우스촌은 정부의 주거정책과 주거시장 변화에 맞물려 형성됐다.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1981년, 서울시는 불량주택정비사업을 시작했다. 봉천동, 상계동, 미아동, 정릉, 금호동 등 판잣집이 밀집한 달동네들은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됐다. 정비사업은 달동네 빈곤층에 대한 주거대책 없이 진행됐다. 동시에 서울의 집값은 뛰기 시작했다. 당시 주택은행 통계를 보면, 1986년부터 1994년까지 8년 사이 서울의 주택가격은 54% 상승했으나, 전세 가격은 두배가 넘는 118%의 상승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다.(서울시 사회구조와 사회정책 수요―서울시 비닐하우스촌 주민의 삶과 사회정책, 한국도시연구소, 2002)

달동네가 사라지고 임대료가 폭증하면서 자기 집을 소유할 수 없는 저소득층은 무허가 지하 셋방, 옥탑방, 비닐하우스촌 등으로 밀려났다. 연구자들은 이 시기를 1세대 비닐하우스촌 형성기로 본다. 꿀벌마을이 자리한 경마공원대로 90-13 지역은 당시에도 그린벨트로 묶인 농지여서 다른 용도로 개발할 수 없는 땅이었다. 서울에서 밀려나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며 1년에 20만~50만원씩 도지세를 치르겠다는 사람들을 땅 주인들이 기꺼이 받아들인 까닭이었다.

“달동네에 살다가 개발이 이뤄지면 당장 갈 곳이 없잖아요. 집값이 올라 도저히 계속 살지 못하니까.” 1990년 꿀벌마을에 정착한 71살 윤동남도 당시 서울의 높은 임대료 때문에 비닐하우스로 옮겨왔다고 했다. 고향이 전남 신안군인 윤동남은 1982년 직업을 구하기 위해 상경했고, 1990년까지 약 10년 동안 서울 봉천동 판자촌에서 살았다. “살면서 집값(월세)이 점점 오르더라고요. 돈도 부족했지만 집주인이 더 이상 세를 주려고도 안 해서 이사를 가야 했어요.”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렸던 윤동남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부모님까지 열 식구였는데 집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죠. 어떻게든 부모님과 함께 살 곳을 구하려다가 지인이 소개해줘서 비닐하우스 한 동을 샀어요.” 정착 초반 윤동남이 치른 도지세는 1년 10만원이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거의 황무지라고 할 정도로 나무만 있었던’(윤동남) 꿀벌마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건 1997년 이후였다. 외환위기(IMF) 여파로 저소득층이 된 서울 거주민들이 이곳으로 밀려났다. 이전까지 서초동에 거주했던 68살 홍승순도 외환위기로 살림이 어려워진 뒤 이듬해인 1998년 꿀벌마을에 정착했다. “1990년대 남편이 창고업, 건설업을 했는데 아이엠에프 때문에 경제 상황이 어려워졌어요. 서울에서는 셋방조차 부담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요.” 홍승순도 지인의 소개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 한 동을 1300만원 주고 샀다. “아무래도 불법 주거지라 철거 위협 때문에 불안한 건 있지만, 당시 적은 돈으로 우리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한집에 살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했어요.”

홍승순의 사례처럼 비닐하우스는 쪽방이나 고시원 등 다른 비주택에 견줘 비교적 주거공간이 넓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가구가 많다. 비닐하우스촌이 ‘빈곤가족의 마지막 잠자리’로도 불리는 이유다.(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한국도시연구소, 2018) 같은 ‘비주택’ 주거 난민이지만 홀로 살아야 하는 이는 고시원이나 여관, 어떻게든 가족이 함께 살고자 하는 이는 비닐하우스촌을 찾는다.

■ 주거 열악함은 삶으로 번졌다

“어디 외출했다가 집에 올 때면 과천 하늘부터 봐요. 연기가 나나 안 나나.”

홍승순이 말하는 연기는 ‘화재 연기’다. 항상 마을에 불이 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늘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1년에 한두번 정도는 항상 마을에 화재가 나니까 정신적으로 힘들어요.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옆집에서 (화재) 사고가 나면 같이 피해를 보잖아요.” 윤동남도 말을 보탰다. “집들이 모여 있으니까 한번 화재가 나면 큰일이에요. 가스 쓰다가 불이 나거나 전기 누전으로도 쉽게 불이 나고요.”

과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촌에 있는 배광자씨의 집 두꺼비집이 뚜껑도 덮이지 않은 채 전선들에 싸여 있다. 비닐하우스 거주지는 비닐, 판자 등 불에 타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진 탓에 화재 위험이 높다. 과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과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촌에 있는 배광자씨의 집 두꺼비집이 뚜껑도 덮이지 않은 채 전선들에 싸여 있다. 비닐하우스 거주지는 비닐, 판자 등 불에 타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진 탓에 화재 위험이 높다. 과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비닐하우스 재질 자체가 인화성이 높다. 대부분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한번 불이 나면 대형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서울 강남소방서가 작성한 ‘주거용 비닐하우스 소방안전대책’을 보면, 비닐하우스 화재 때 문제점으로 ‘비닐, 부직포 등 가연성 건축자재를 사용해 화재에 취약’ ‘상수도 시설 미설치로 화재 발생 시 초기 소화 곤란, 대형 재난 발생 우려’ ‘소방차 접근이 곤란한 지역에 위치해 초동조치 곤란’ 등을 꼽고 있다.

거주민들의 화재 불안은 지표로도 나타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펴낸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보고서’에서 판잣집·비닐하우스 거주 388가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거처에 대한 물리적 상태를 평가한 부분(5점 척도, 점수가 낮을수록 상태가 열악) 가운데 ‘화재 대비’는 2.52점으로 채광(3.01점)·방음(3.35점) 등 10개 항목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보였다. 화재를 가장 큰 불안 요소로 꼽는다는 의미다.

비닐하우스촌은 전기·상수도 등 생활 필수시설도 부족하다. 꿀벌마을에도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거주자 대부분은 전기 모터를 이용해 지하수를 퍼 올려 쓰고 있다. “물을 깊은 곳에서 퍼 올리는 게 아니라서 여름에 땅이 가물면 고갈이 돼서 잘 나오지도 않아요. 물이 부족해 세탁기도 쓰기 어렵고요.” 1995년 꿀벌마을에 정착한 58살 김금순이 말했다. 꿀벌마을은 지난해 시청에 상하수도 설치를 신청했지만 1년째 진행이 더디다. “시청에서 마을에 상하수도를 설치하려면 토지 소유자의 사용승낙서가 필요하대요. 대부분의 토지 소유자가 거주민들에게 나가라고 퇴거 요구를 하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렵죠. 마을에 건강이 좋지 않은 어르신이 많은데 오염된 물을 먹어서 그런 게 아닌가 걱정이에요.”

비닐하우스 거주의 불편함은 열악한 환경에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들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사람들이 이런 곳에 산다는 것을 다들 부끄러워해서 이웃집 사람을 알려 하지도 않았어요. 다 고개 숙이고 다니고.”(윤동남) “딸은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밤늦게 친구가 집까지 바래다준다 하면 집에 못 와요. 경마공원역에서 내리면 혹시라도 어디에 사는지 알까봐 꼭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오기도 하고요.”(김금순)

사회적 인정조차 이들에겐 사치다. 200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비닐하우스촌을 불법 주거지로 간주했기에 꿀벌마을 거주민들은 제대로 된 주소지조차 없었다. “주소지가 없어서 우편물은 남의 집에서 받았어요. 제일 문제였던 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집 주소지가 없잖아요.” 김금순은 자신이 일했던 방배동 중국집의 종업원에게 부탁해 그곳을 주소지로 하고 두 자녀를 겨우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가진 자들은 학군을 위해 위장전입을 하지만 없는 자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위장전입을 한다.

아이들은 주소지를 자주 바꾼 탓에 전학을 많이 해야 했다. “어느 날은 딸아이가 다니던 중학교에 불려갔어요. 학교에서는 아이가 문제아여서 전학을 많이 다닌 게 아니냐고 의심하더라고요. 결국 그 자리에서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 학교가 임의로 전학을 시켜도 된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썼어요.” 김금순의 말이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고 서명하는데 눈물이 엄청 났어요. 집 없는 설움이 이런 건가 싶었어요.”

꿀벌마을은 2009년 마을 주민들이 과천동 동장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승리하고 나서야 주민등록이 가능해졌다. 지자체는 비닐하우스 주거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주민등록 등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지자체가 투기나 이주대책 요구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주민등록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 등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주민들은 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집에서 우편물을 받을 수 있었고 기초생활수급 신청도 할 수 있었다. 유령처럼 그늘에서 살던 이들이 공식 문서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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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딱지 뒤엔 정책의 실패가 있다

‘과천 복합문화관광단지 조성 탄력받는다’, ‘과천동 문화관광단지 개발 햇살’(2018년 8월9일).

국토교통부가 ‘개발제한구역의 조정을 위한 도시관리계획 변경안 수립 지침 일부개정안’을 확정 고시한 날, 이런 제목의 기사가 등장했다. 과천시는 2008년부터 경마공원역 일대 그린벨트 지역 18만5천㎡에 복합문화관광단지 조성 사업을 추진해왔다. 국토교통부의 개정안이 확정되면서 10년 만에 본격적으로 사업 추진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과천시가 관광단지를 조성할 후보지는 삼각형의 꿀벌마을 거주 지역과 정확히 일치한다. 과천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그린벨트 해제 요건만 마련된 것이고, 앞으로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업승인까지 나려면 최소 1년은 걸릴 것”이라며 “그 이후에 거주민들에 대한 보상이나 이주 계획이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2008년 과천시가 복합문화관광단지 조성 사업을 발표하고 2009년 대법원의 꿀벌마을 주소지 인정 판결이 나면서, 마을 주민들은 투기를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도 동시에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관광단지로 개발될 경우 상가 분양권이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투기세력의 광고가 등장했다. 이를 믿은 외부인들이 기존 비닐하우스 한 동을 매입한 뒤 8개의 원룸으로 다시 쪼개 주소지를 여러 개 등록하는 식이었다. 당시 과천시는 “그린벨트 지역이라 조합원 분양권은 있을 수도 없고, 정식 인허가를 거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사기”라며 경찰에 허위광고 수사 의뢰를 요청했다. 김금순은 “과천시 개발계획이 나온 뒤 꿀벌마을에 사람들이 밀려들어온 것은 실제 거주 목적이 아닌 투기꾼과 연관된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투기꾼들은 보상금을 원하지만 오래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임대아파트에라도 이주해 살고 싶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배광자씨가 과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촌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과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배광자씨가 과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촌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과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비닐하우스촌의 형성, 그린벨트 개발 계획, 외부인들의 투기 유입… 꿀벌마을이 마주한 상황은 개발과 투기 중심인 부동산 정책으로부터 저소득층 주거정책이 배제됐던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설령 불법 거주지라고 하더라도 실패한 정책으로 인해 열악한 주거에 내몰린 빈곤층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결국 정부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개발정책에서 밀려난 빈곤계층이 수도권 외곽의 체비지, 공원 녹지 혹은 그린벨트로 묶인 개인 사유지로 밀려났고, 비닐하우스는 이들을 위한 하나의 생존 공간으로 기능해왔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오랫동안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한 저소득층과 투기세력을 구분해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행정기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했다.

[긴급 점검 -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 ①] ‘비주택 대물림 모녀 이야기’
▶바로 가기 : 고시원서 자란 딸…“악취나는 방 알고봤더니” 털썩(https://goo.gl/hSjwTF)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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