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낮 김수완씨가 서울 후암동 자신의 쪽방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옥상에 빨래를 널지만 흐린 날에는 방 자체가 빨래건조대가 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은 적게는 40만, 많게는 228만가구로 추정된다. 불이 나서 여러 명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시선에 들어온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지난여름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집 아닌 집’에 사는 203가구를 면접조사했다. <한겨레>는 이 가운데 16명을 추려 심층 인터뷰를 했다. 이들의 삶과 구조적 문제점을 추적해 3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부엌 하나 포함된 8㎡(2.5평) 쪽방. “맨발로 등산하기. 꿈꾸고 변화되라.” 반듯한 필체의 문구가 문패처럼 달린 문을 열면, 방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빨랫줄 위로 옷가지와 수건이 한가득 널려 있다. 의식주가 2.5평에 응축된 쪽방에서는 빨랫줄 위에도 살림을 보관해야 한다. 창은 부엌 쪽에 나 있는데, 한겨울 추위로 부엌문을 닫으면 볕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부엌문을 열어도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빛의 그림자만 들어온다. 그러니 이 방에선 하루의 변화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같은 층에는 방이 일곱개로, 젊은 중국인 노동자나 60살 김수완(가명)과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이 산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인데, 그나마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아 제대로 씻을 수도 없다. ‘동자동 쪽방촌’이라 불리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이 어둡고 좁은 공간이 김수완의 “천국”이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20만원인데, 전기와 수도요금까지 매달 23만원을 주거비로 쓴다.
“천국”이라고? 이 공간을 이렇게 부르는 김수완의 마음을 짐작하려면, 그의 삶을 되짚어 봐야 한다. 김수완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지는 5년이 됐다. 허리가 아파 자활교육을 받는 도중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서 “조금도 일을 할 수 없게 된” 이후다. 주거 급여까지 한 달 70만원을 받는다. “감사하고 감사한” 돈이지만, 빠듯한 건 부정할 수 없다. 월세 내고 식비로 쓰면 곧 바닥을 보인다. 전기를 최소한으로 쓰기 위해 티브이(TV) 시청을 자발적으로 제한한다. “뉴스나 다큐멘터리만 좀 보고 연속극은 아예 끊어 버렸어요.”
김수완의 쪽방에서 유일하게 24시간 돌아가는 가전제품은 미니 냉장고다. 5년 전 중고 시장에서 샀다. 서비스센터에서 부품마저 단종됐다고 말한 이 낡은 냉장고는 2.5평 공간을 열기로 장악한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냉장고는 사실상 온열기였다. 김수완은 여름에 일하다 어깨 힘줄이 끊어졌는데, 그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냉방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완은 30년 전 서울에 올라왔다. 고향인 부산에서의 삶은 불우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뒤에 배다른 누나의 보살핌을 받았어요. 그런데 누나의 남편이 술만 취하면 나를 괴롭히는 거야. 열두살이었는데, 이 집에서는 못 살겠다 싶어서 공장을 떠돌았어요.” 부산의 노트 공장에서 일당 100원을 받고 일하다가 ‘젊은 시절을 이대로 허비할 수 없다’ 싶어 1988년 올림픽이 한창이던 서울로 향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은 일자리가 많은 ‘기회의 땅’이었다.
김수완씨가 18일 낮 서울 후암동 자신의 쪽방 문을 열고 있다. 나무문에는 단열을 위한 에어캡이 붙어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수완의 직장은 ‘잘 곳’이 결정해줬다. 중국집 주방 보조로 일하고, 공장에서 일하고, 이삿짐센터에서 일했다. “방 구할 돈이 없으니까 숙식이 제공되는 일자리면 일단 들어가고 보는 거죠.” 10년쯤 지나 몸이 신호를 보내왔다. ‘몸 쓰는 일’을 하루 하면 허리가 쑤셔 일주일을 누워 있어야 했다. 허리 디스크라는 병명도 나중에 알았다.
조금 더 나은 곳에 살아 보겠다는 꿈은 그렇게 박살 났다. 더는 홑몸의 생계도 감당하지 못하게 된 40대 중반의 김수완이 이르게 된 ‘잘 곳’은 보증금을 낼 필요가 없는 여관이나 여인숙이었다. 3년쯤 지나자 여인숙 월세도 내지 못하게 됐고, 이어서 택한 곳은 하루 7000~8000원씩 내는 사우나와 찜질방이었다. 그리고 거리 노숙으로 나앉았다. 서울에 온 지 20년쯤 흐른 2008년 여름이었다. 종교단체의 쉼터가 없었으면 “거기서 죽었을 것”이라고, 김수완은 말했다.
3~4년 노숙과 쉼터를 오가던 김수완이 쪽방촌으로 오게 된 건 7년 전이다. 노숙인 쉼터에 살면서 점심·저녁으로 하는 급식 봉사로 끼니를 해결하러 갔다가 지원단체 활동가에게 쪽방촌을 안내받았다. 그나마 쪽방도 두 차례 옮겨야 했다. 무보증금 월세 20만원짜리 쪽방 주인은 2년이 채 안 돼 그곳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든다고 나가라고 했고, 다음 쪽방 주인은 갑자기 ‘집수리를 한다’며 나가 달라 했다. 김수완은 말 없이 나왔다. 육십 평생 정주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온 김수완에게 어차피 오래 머물 곳은 없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자는 곳에서 스스로 주인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볕조차 들지 않는 2.5평 쪽방을 “천국”이라고 했다. 왜?
“제가 길거리 생활까지 해봤잖아요? 사람이 몸 누일 곳이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해요. 쉼터에 있을 때는 매일 잠자리 번호표를 받으려고 몇 시간씩 기다리곤 했어요. 쪽방이라도 집은 내게 ‘천국’이예요.”
김수완씨가 18일 낮 서울 후암동 자신의 쪽방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무문에는 단열을 위한 에어캡이 붙어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상에 스민 ‘비주택’, 비숙박 다중이용업소 거주자
김수완이 예순살 삶을 통해 거친 주거지는 여관과 여인숙, 찜질방과 사우나다. ‘다행’히도 지금은 쪽방에 정착했다. 비록 그 모든 곳이 ‘비주택 주거지’이고, 쪽방촌 정착도 온전한 정주가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김수완처럼 대부분의 주거 빈민들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한국도시연구소가 펴낸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비주택 거주자 203가구 가운데 현재 거처에서 ‘5년 이상’ 머문 경우는 37%에 불과했다.
거주지를 자주 옮기다 보니 피시(PC)방과 찜질방, 만화방 같은 다중이용업소가 모두 잠재적인 ‘집’이 된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발표한 ‘주택 이외의 거처 가구 수’를 보면,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업소’에 거주하는 비주택 가구 수는 14만4130 가구에 이른다. 공장이나 식당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동자들도 있지만, 사우나와 찜질방을 집으로 써야 했던 김수완처럼 다중이 이용하는 상업 공간을 집 삼아 살고 있는 이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일단 ‘비숙박 다중이용업소 거주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는 별도의 용어와 분류 없이, 고시원과 함께 찜질방과 피시방, 만화방 등의 ‘기타’ 거처에 살고 있는 이들로 포함돼 있다. 이 ‘기타’는 2005년 2만2913가구에서 2015년 32만2591가구로 10년 만에 14배 늘었다. 이들은 ‘노숙’으로 가기 직전 단계에 걸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최저보다 살짝 위에 있는 이들일수록 그들의 취약한 삶은 통계에도 잘 잡히지 않고, 제도적 지원에서 비켜날 가능성이 크다.
서울의 한 만화방 노숙자 쉼터. 류우종 기자 ylpak@hani.co.kr
■ ‘만화방’을 집 삼았던 62살 김철웅
62살 김철웅(가명)은 만화방을 집 삼아 산 적이 있다. 오전 2000원, 오후도 2000원, 밤을 새우는 데는 4000원이 든다. 김수완이 찜질방에 낸 8000원과 같은 가격이면 하루를 꼬박 만화방에 머물 수 있다. 끼니는 주로 라면으로 때웠다. 1년을 그렇게 지냈다. 김철웅과 같은 만화방을 집 삼아 지내는 이들이 15명 정도 있었다. 7년 전 서울역 인근에는 이렇게 노숙과 만화방의 경계를 오가는 이들이 머물 수 있는 만화방이 2~3곳 있었다고 한다. “만화방에 사실상 사는 사람들을 위해 샤워실과 세탁실까지 있어요. 만화방에 있으면 그래도 사람 꼴은 하고 다닐 수 있었던 거죠.”
애초 사람이 잘 수 있는 공간이 아닌데 불편함이 없었을까. 김철웅은 “의자에서 자는 것”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의자 서너개 펴놓고 거기 누워서 자는데 허리가 배겨서 좀 불편했죠. 그런데 습관이 되면 잘만 해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저는 김철웅은 평생 ‘월급’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다. 대신 노점 판매를 닥치는 대로 했다. 옷도 팔았고, 신발도 팔았고, 우산도 팔았다. “평생 나름 분투했어요. 그래도 나는 하루 벌이였죠. 따박따박 월급 받는 걸 해본 적이 없네요.”
만화방에서 나와 여인숙에서 산 적도 있었다. 보증금 없이 월세 24만원이었다. 15명이 샤워실과 세탁실을 같이 썼던 만화방과 달리 “층마다 샤워실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 공간이었지만, 서울역 인근 여인숙은 숙박 시설이라고 할 수 없었다. 노숙인들이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잠시라도 몸을 씻고 ‘품위’를 되찾기 위해 여인숙을 찾는다. 올 1월 방화 사건으로 서울 나들이 온 세 모녀를 포함해 6명이 사망한 종로구 종로5가의 서울장여관도 이름만 여관일 뿐 일용직 노동자나 장기 투숙객들이 머무는 사실상의 ‘쪽방’이었다.
이들은 왜 숙박 시설과 같은 비주택 주거로 몰렸을까. 그 이유를 모두 알 순 없지만, 경제적 이유가 아닐까 유추해볼 수는 있다. 인권위 용역 보고서에서 비주택 거주자 203가구 가운데 숙박업소 객실에 거주하는 이들은 72가구(35.5%)였다. 이 가운데 1997년 구제금융 위기 이후에 이곳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답한 이들이 최소 55.5%에서 최대 83.3%에 이르렀다. 1995년부터 2004년 사이에 ‘숙박업소의 객실’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답한 이들이 27.8%, 2005년~2014년은 34.7%, 2014년 이후는 20.8%였다.
서울의 한 만화방 노숙자 쉼터. 류우종 기자 ylpak@hani.co.kr
김철웅에게도 짧게나마 ‘비주택’으로 분류되지 않는 공간에 산 경험이 있다. 만화방에 살기 전 서울 성동구 옥수동 다세대 주택 반지하방에 월세를 살았다. 김철웅에겐 화장실을 공동으로 쓰는 옥수동 반지하방이 자신만의 ‘아파트’였다. 그런 반지하방에서 서울역 인근 만화방으로 내몰렸다가, 여인숙을 거쳐 “운이 좋게”도 지금은 후암동 ‘저렴 쪽방’에 월세 18만원을 내고 살고 있다. 저렴 쪽방은 서울시가 건물주로부터 쪽방을 임대해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곳이다. 김철웅은 쪽방 다음 살 곳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꿈꾸고 있지만, 장애 정도와 거주 이력 점수가 모자랐는지 2번 신청에서 다 탈락했다.
김철웅은 어쩌다 반지하방에서 만화방으로 내몰린 걸까. 김철웅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 건지 기억하려 하지 않는 건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답을 들어보니 ‘자발적 망각’에 가까웠다. “과거는 잘 기억하지 않아요. 현재가 중요하죠. 여기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과거는 알려고 하지 않아요. 안 그래도 벌집 같은 곳에 사생활이라고는 없이 사는데, 과거 이야기하면 싸움만 나요. 알아서들 쉬쉬하는 거지. 서로들 어쩌다 여기까지 왔으려나, 생각만 할 뿐이죠.”
■ ‘찜질방’이 집이었던 34살 이현규
34살 청년 이현규(가명)도 10여명의 ‘동료 거주자’들과 함께 한동안 찜질방에 살았다. 2009년 고향인 강원도를 떠나 인천의 한 직업전문학교에 진학한 이현규에게 보증금이 필요한 원룸이나 고시원은 사치였다. 하루 7000~8000원이면 숙박을 해결하고 몸도 씻을 수 있으니 찜질방이면 1~2주 정도 머물만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석 달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샤워 시설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관리비를 낼 필요도 없었던 반면 습하고, 코 고는 사람들 때문에 소음에 시달렸으며, 개인 공간은 없었다. 짐은 라커에 따로 보관하거나 카운터에 맡겼다.
‘동료 거주자’들과는 서로 말을 걸거나 친분을 쌓지는 않았지만, 서로 잠시 거쳐 가는 찜질방 이용자인지 ‘거주자’인지 단박에 알아챘다. “주로 나이 많은 노숙자나 막노동하는 분들이었어요. 저들도 나처럼 여기서 먹고 자는구나, 했죠.”
찜질방에선 빨래가 금지돼 있었는데, 이현규를 포함한 10여명의 ‘거주자’에겐 허용됐다. 여러 명이 동시에 빨래를 해서 건식 사우나에 빨래를 너는 날이면, 찜질방 이용자들이 이상한 눈길로 빨래들을 쳐다봤다. 찜질방 주인은 ‘거주자’들이 몇 명인지 알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의를 베푼 걸까. 아니었다. 되레 그들을 이용해 벌이를 궁리했다. ‘거주자’들에게 월세 18만원을 받고, 이들에게 일용직을 소개해주면서 ‘직업소개비’도 받았다. 찜질방이 인력사무소 역할을 한 셈이다. 이현규도 찜질방 주인이 소개해 준 식당 주방에서 서빙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점심도 일하는 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이 나중에 고시원 보증금으로 쓰였다.
이현규는 지난 9년 동안 화장품 매장 직원, 주유소와 편의점 아르바이트, 대형마트 식품구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돈이 조금 모일 때는 고시원, 돈이 떨어지면 찜질방을 오갔다. 지금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고시원 옥탑방에 보증금 500만원, 월세 28만원을 내면서 살고 있다. 찜질방에서 살아 본 이현규에게 지금의 옥탑방은 김수완의 쪽방처럼 “천국”이다. 김수완과 다소 다른 게 있다면, 고시원 옥탑방을 “천국”이라고 느끼는 것이 어쩌면 34살 이현규의 체념에서 기인한 것일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집에 얽매이는 데 이제 진저리가 나서 주거 고민은 더는 하지 않아요. 주거는 자고 누울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내가 버는 한에서 여기가 내 최선이에요. 불평을 가지면 살 곳도 못 살죠. 한평에서도 백평짜리 행복을 느끼는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가사도 있잖아요?”
물론 그도 고시원 옥탑방 탈출을 꿈꾸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엘에이치(LH) 공공임대주택 신청을 했다가 탈락했어요. 보증금 300만~400만원을 내야 했는데, 그 돈이 없었거든요.” 좌절된 꿈이 앞서 표현된 체념을 낳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18일 오전 서울 후암동 쪽방촌 한 건물 문 앞에 `빈 방 있음'이 붙어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비숙박 다중이용업소 거주자들 실태조사부터 해야
찜질방, 만화방, 피시방 등에 머무는 비숙박 다중이용업소 거주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된 자료도, 통계도 없다. 정진선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비주택 거주자들은 노숙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지만, 도처가 거주지인 셈이라 집계가 쉽지 않다. 노숙을 하다가도 7000~8000원이 생기면 다중이용업소를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피시방 등에 거주하는 비주택 거주자들을 ‘넷카페 난민’이라 부른다. 한국의 피시방과 같은 넷카페에서 아예 숙식을 해결한다. 지난 2월 일본의 도쿄도는 도쿄에 사는 ‘넷카페 난민’의 규모를 4000여명으로 추산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11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넷카페 등 502개 점포 이용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당시 도쿄도는 30대와 50대 계층에서 넷카페 난민이 많다고 발표하면서 “30대는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이며, 50대는 직장을 그만둔 뒤 재취업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에서는 도쿄도 수준의 조사마저 이뤄진 적이 없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도시연구소에 의뢰해 발표한 ‘비주택 거주민 인권상황 실태조사’가 다중이용업소 거주자를 다룬 몇 안 되는 자료 중 하나다. 이 자료에는 비숙박 다중이용업소 거주자 2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가 있는데, 당시 응답자들의 평균 연령은 41.4살로 전체 비주택 거주민의 평균 52.1살보다 11살 적었다. 응답자의 74%(19명)는 ‘6개월 이하’로 거주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가운데 6명은 무직자였고, 무직자를 제외한 이들의 75%는 2008년 월평균 소득이 ‘50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이들은 여건에 따라 피시방과 사우나·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숙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숙으로 탈락하기 직전에 선택하는 ‘주거 빈곤’의 끝자락에 있는 이들이지만, 비숙박 다중이용업소 거주자들에게는 아직 법적인 ‘이름’이 없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비숙박 다중이용업소에서 사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 존재하지만 부르는 이름조차 없는 ‘지워진 존재’들”이라며 “이름이 없다보니, 추산도 잘 되지 않고, 추산되지 않다 보니 정책적 고려 대상도 아니다. 주거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진선 연구원은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추산하기는 까다롭지만 일시에 다중이용업소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규모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현 활동가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과 비정형주거(주택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것)를 하는 이들을 포괄하는 ‘홈리스’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원 대상을 ‘노숙인 등’으로 못 박은 협소한 현행 노숙인법을 개정해야 한다. 적용 대상을 ‘홈리스’나 ‘주거 취약계층’ 등으로 바꿔 이들을 ‘주거권’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우 황금비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