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리본총여학생회 선거운동본부 유튜브 화면 갈무리
대학 총여학생회(총여)가 사라지고 있다. 총여는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한때 30여개가 넘는 대학에서 총여가 만들어졌지만, 2018년에는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올해 연세대는 총여를 재개편해야 한다는 투표가 이뤄져 가결됐고, 성균관대에서는 투표를 거쳐 총여가 폐지됐다.
최근에는 동국대 총여학생회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동국대 학내 언론 <동대신문>은 22일 오전 “19일부터 21일까지 총학생회 투표와 함께 진행된 총여학생회 폐지 찬반 투표 결과, 총 유권자 1만2755명 중 찬성 5343(75.94%)표, 반대 1574(22.37%)표, 무효 119(1.69%)표로 총여학생회 폐지안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국대 총여 쪽은 “총여 폐지 투표가 절차를 어기고 졸속으로 강행됐다”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해당 투표의 무효화를 요구하는 이의제기 서명을 받았다. 동국대 선거시행세칙은 투표 결과가 공표된 이후 24시간 안에 300인 이상이 모이면 투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국대 총여는 “22일 오후부터 348명에게서 투표 이의제기 서명을 받았고 23일 오후 2시50분 총여학생회 폐지 투표를 주최한 총대의원회 쪽에 ‘총투표를 전면 무효화 하라’는 입장문과 함께 서명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의제기를 접수한 동국대 총대의원회 쪽은 “총여의 이의제기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논의를 할 예정이고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국대 총여의 존폐 여부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총여가 위기에 놓여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동국대를 제외하고 서울 시내 대학 중 총여가 존재하는 곳은 경희대, 광운대, 연세대, 한양대 등 모두 4곳이다. 하지만 광운대에서는 26~27일 총여 폐지 투표가 이뤄질 예정이고, 경희대와 한양대는 올해 총여가 구성되지 않았다. 사실상 제대로 활동하는 총여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동국대 총여 페지 투표를 계기로 여러 대학생들과 여성, 교육 전문가들에게 총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총여가 그동안 학생들에게 존재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학 내 여성운동의 필요성이 큰 만큼 변화한 시대에 맞춰 새로운 형태의 대학 내 여성운동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여학생 복지사업에 반감
한양대에서는 지난해 총여 선거 당시 학내에서 큰 논란이 있었다. 박지혜 한양대 반성폭력 반성차별 모임 ‘월담’ 대표는 “지난해 총여 투표 당시 남학생들을 중심으로 총여를 반대하는 단체가 만들어졌고, 이들은 총여를 없애야 하는 이유를 설파하고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총여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된 주장은 ‘학내 성차별이 심하지 않은데 총여가 나온다는 것은 역차별’이라거나 ‘투표권이 여학생한테만 있는데, 학생회비는 같이 내서 쓰는 게 문제다’와 같은 것이었다”고 전했다.
대학에서 총여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겨레>와 인터뷰한 대학생들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째, 여학생 휴게실 설치나 생리대 배부 등 총여가 진행하는 여학생 복지사업에 대한 반감이 컸다. 동국대 재학생 김아무개(26)씨는 “에브리타임 등 대학생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를 보면, 총여에 대한 제일 큰 불만은 여학생들에게 따로 걷은 돈이 아닌 전체 학생이 낸 돈으로 복지사업을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재학생 김아무개(24)씨도 “모든 학생이 내는 학생회비도 그렇고 등록금도 다 같이 내는데 왜 여학생들을 위해 쓰여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반면 여학생 복지와 관련된 반감은 ‘대학 사회가 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낮아서 생기는 문제’라는 목소리도 함께 있었다. 경희대 학생 김씨는 “노인수당이나 아동수당 등 세금으로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듯 자치회비도 세금처럼 똑같이 약자를 위해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대학 사회가 여전히 여성이 소수자라는 생각을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균관대의 황아무개(24)씨도 “학생회비는 모든 학생이 내는 돈이기 때문에 이것이 여학생 복지에 쓰인다는 점은 논쟁적”이라며 “토론이 필요한 부분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총여에게 문제가 있으니, 총여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점이 유감스럽다”고 했다.
성균관대 총여학생회 재건에 나선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지난 10월11일 총학생회의 총여 폐지 투표에 거부해 투표 보이콧 운동을 진행했다. 성성어디가 제공
■ 백래시의 불똥이 총여로 튀었다
둘째, 겉으로 보기에 대학은 성평등하기 때문에 총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경희대 학생 김씨는 “교수님과 회식, 강의실 내 성희롱, 새터나 과방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처럼 대학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여성 차별적이지만, 대학마다 성평등상담소 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성평등하다”며 “이 때문에 ‘총여가 꼭 필요한가’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기계적 평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커진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남녀가 평등한데 왜 총여가 필요하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권리는 동등할지라도 권리가 실제로 정의롭게 보장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기계적 평등을 넘어서는 개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셋째, 최근 페미니즘 논의가 사회 전반에서 활발해지면서 이에 따른 백래시(반격)도 함께 따라오고 있는데 최근에 총여가 폐지되는 모습도 이와 관련된 흐름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동국대 학생 김씨는 “이번 총여 폐지 투표를 보면, 최근 혜화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진행되면서 이슈가 되다 보니 여성주의에 대해 별 생각이 없던 사람들이 여성주의에 대해 부정적 시선 갖게 됐고 그 불똥이 총여로 튄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총여가 폐지된 성균관대의 황씨 역시 “총여 폐지 흐름이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심판처럼 느껴졌다”며 “페미니즘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여전히 소수자”라고 말했다.
■ 총여는 사라져도 페미니스트는 존재한다
대학 내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작 총여는 폐지되는 상황. 그렇다면 대학 내 여성주의 운동은 수명을 다한 것일까? 고려대 학생 박아무개(24)씨의 답은 “아니다”였다. 그는 “동국대 총여 폐지 투표 과정은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 “총여 폐지안이 가결되는 것이 학생 운동이 무너지는 지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면, 총여 폐지를 계기로 ‘여학생 총회’가 성사되었다는 사실은 거꾸로 학생 운동이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박씨는 “동국대에서 그 두 가지를 다 볼 수 있었던 전환적인 국면이 펼쳐졌다”며 “남성으로서 총여 폐지에 대해 어떻게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총여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고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균관대 학생 황씨는 “성대같은 경우에는 한 10년 동안 총여가 없다가 후보가 입후보를 문의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던 건데, 그렇다면 학내 구성원들이 사실상 총여가 학내에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여가 폐지됐다”며 “총여가 무슨 기구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폐지를 할 수 있다는 건 총여에 대한 오해를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인숙 건국대 교수(여성학)도 “총여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그동안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총여가 총학만큼의 결정권이나 권한이 있거나 실질적 힘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면 보다 분명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총여는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연대방식을 모색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대학 내에 여전히 있기 때문에 학내 여성주의 운동은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숙명여대에서 탈 코르셋 선언이 나오면 다른 학교 학생들도 공유하면서 연대를 하는 등 페미니스트 학생들의 활동은 여전히 활발하다”며 “무너져서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연대방식을 모색하고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가 학내에 있는 것이다. 총여가 사라진다고 해서 페미니스트 아젠다가 죽은 게 아니라 다변화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영 김민제 이주빈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