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뭐야? #4] 양심편
요즘 뉴스에선 ’대체복무제’에 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잇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만 나오면 늘 따라 붙는 불만이 있습니다.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면, 병역이행은 비양심적인거냐?’는 불만이죠.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이런 불만은 ‘양심’이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사용하는 ‘양심’과 법률에서 사용하는 ’양심’은 그 의미가 다르거든요.
일상 대화에서 ‘양심’이라고 하면 보통 ’착한 일을 하려는 의지’를 뜻하죠. “양심적으로 그런 일은 절대 못하겠다”, “넌 양심도 없냐” 이렇게들 말하죠.
하지만 법률에서 쓰는 ’양심’은 좀 달라요. ’양심’이라는 개념은 헌법에 등장합니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 제19조의 내용인데요. ’모든 국민은 착한 일을 하려는 의지의 자유를 갖는다?’라고 해석하면 좀 이상하잖아요. 일상에서 쓰는 ’양심’과는 개념이 다른거죠.
2004년 헌법재판소가 이 ‘양심’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내놨어요. 좀 어렵지만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즉,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가 양심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신념과 종교, 마음의 목소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양심의 자유라는 거죠. 신념의 자유, 그 신념에 따라 행동할 자유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자, 그럼 양심적 병역거부란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라고 이해하면 되겠죠? 신체 조건에 따른 게 아니라 신념에 따라 군입대를 거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 있잖아요. 미국 영주권자라서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한국에 와서 군대에 가요. 자신의 특별한 신념에 따른 입대잖아요. 이런 이들은 ‘양심적 병역이행자’라고 부를 수 있겠죠. 꼭 이런 거창한 신념이 아니어도 됩니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소신에 따라 입대했다면 ‘양심적 병역이행자’인 셈이죠.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의 어원은 영미권에서 사용 중인 ‘conscientious objection’(칸시언셔스 오브젝션)에서 왔다는 게 정설입니다. 칸시언셔스를 주로 ‘양심’으로 번역하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표현이 탄생한거죠.
이 번역이 정확한 번역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어요. 실제로 국립국어원은 2006년 ‘정확하지 않다’는 입장을 발표했어요. 국어원은 “영어를 직역한 양심적이란 표현은 양심의 일상적인 의미와 잘 맞지 않는다. 병역 의무를 수용하는 것이 비양심적이라 할 수도 없다.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등이 더 정확하다”라고 밝혔죠.
이런 논란 때문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널리 쓰이진 못했습니다.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종교에 따른 병역거부’ 등도 물망에 올랐지만 ’양심’보다 좁은 개념이라 대체해서 쓰기엔 한계가 있었죠.
자 그런데 여기서 이런 의문이 또 듭니다. 용어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이 모든 게 단지 용어의 문제일까요? 예를 들어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라고 바꾸면 해결될까요? ‘너만 신념 있고, 나는 신념이 없냐?’는 식의 공격은 없을까요?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게 어쩌면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합니다. 학교 다닐 때 억지로 반성문을 쓴다든지, 원치 않는 예배에 참석을 강요당한다든지 등은 흔히 겪는 일이죠. 신념처럼 꼭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해도 나의 생각과 다른 행위를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모두에게 있고, 그것이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다, 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면 자연스레 양심적 병역거부 용어를 둘러싼 논란도 가라앉지 않을지 생각해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하세요.
취재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연출 위준영 피디 marco0428@hani.co.kr
헌법상 보호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을 말한다. 즉, ‘양심상의 결정’이란 선과 악의 기준에 따른 모든 진지한 윤리적 결정으로서 구체적인 상황에서 개인이 이러한 결정을 자신을 구속하고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양심상의 심각한 갈등이 없이는 그에 반하여 행동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중략)
‘양심의 자유’가 보장하고자 하는 ‘양심’은 민주적 다수의 사고나 가치관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현상으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양심은 그 대상이나 내용 또는 동기에 의하여 판단될 수 없으며, 특히 양심상의 결정이 이성적·합리적인가, 타당한가 또는 법질서나 사회규범, 도덕률과 일치하는가 하는 관점은 양심의 존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민주적 다수는 법질서와 사회질서를 그의 정치적 의사와 도덕적 기준에 따라 형성하기 때문에, 그들이 국가의 법질서나 사회의 도덕률과 양심상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예외에 속한다. 양심의 자유에서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 다수의 양심이 아니라, 국가의 법질서나 사회의 도덕률에서 벗어나려는 소수의 양심이다. 따라서 양심상의 결정이 어떠한 종교관·세계관 또는 그 외의 가치체계에 기초하고 있는가와 관계없이, 모든 내용의 양심상의 결정이 양심의 자유에 의하여 보장된다.
(중략)
양심의 자유 중 양심형성의 자유는 내심에 머무르는 한,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반면, 양심적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권리인 양심실현의 자유는 법질서에 위배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 할 것이다(헌재 (2004. 8. 26. 2002헌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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