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벽 타이로 출국하려다 법무부의 ‘긴급출국금지’ 조처로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현재 인천국제공항을 떠난 사실만 확인될 뿐 행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시 김 전 차관은 타이행 비행기표를 들고 출국심사를 ‘무사히’ 통과한 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111번 탑승게이트 앞까지 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비행기 탑승 직전 법무부의 발빠른 조처로 출국이 좌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김 전 차관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규정하고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긴급출국금지 조처를 했다고 한다. 22일 밤 <한겨레> 단독보도로 알려진 김 전 차관 ‘긴급출국금지’ 과정의 전말을 짚어봤다.
23일 출입국당국과 <한겨레> 취재 내용 등을 종합하면, 김학의 전 차관의 긴급출국금지 조처는 불과 수시간 사이 급박하게 이뤄졌다. 김 전 차관이 처음 인천국제공항 티켓 카운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2일 밤 11시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차관은 티켓 카운터에서 23일 0시20분에 출발하는 타이 방콕행 타이에어아시아엑스 703편 티켓을 구매했다.
이후 김 전 차관은 출국심사를 통과해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탑승 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조사권이 없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김 전 차관을 출국금지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의 타이행은 출국 직전 탑승게이트 앞에서 좌절됐다. 출입국당국은 방콕행 비행기 탑승자 명단에 김 전 차관 이름이 올라간 사실을 파악했고, 김 전 차관의 ‘출국 동향’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까지 보고됐다. 그사이 출입국관리 공무원들은 탑승게이트 근처에서 탑승 대기 중이던 김 전 차관의 출국을 제지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김 전 차관이 탑승 제지에 불응하는 등의 소동은 없었다고 한다.
이후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파견 검사는 김 전 차관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보고 출입국관리 공무원에게 긴급출국금지를 요청했다. 긴급출국금지 요청은 급박한 상황 탓에 ‘서면’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김 전 차관은 이후 인천공항에서 대기하다 긴급출국금지 처분을 확인한 뒤 새벽녘 공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차관은 앞으로 출국금지 조처가 풀릴 때까지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조사 대상이긴 하지만 현재 수사기관의 ‘피의자’는 아닌 김 전 차관이 긴급출국금지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두고는 논란이 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범죄 피의자로서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긴급한 필요가 있는 때’에는 출입국관리공무원에게 ‘긴급출국금지’ 요청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김 전 차관을 ‘내사사건’의 대상자로 보면 긴급출국금지 조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피의자’는 형사입건된 피의자뿐 아니라 내사사건의 ‘피의자’도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조처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고검장 출신으로 수사와 출국금지 규정을 잘 아는 그가 법의 빈틈을 노리다가 오히려 허를 찔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사를 앞두고 도주하려 했다는 부정적 기류를 검찰과 법원 쪽에 심어줬다는 것이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을 떠난 김 전 차관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김 전 차관이 사전에 예매하지 않고 심야에 인천국제공항에서 직접 새벽 비행기 티켓을 구매한 것으로 보아 계획에 없던 급박한 출국 시도로 보인다. 검찰 안팎에서는 오는 25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 김 전 차관을 우선 수사의뢰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 갑작스러운 출국 시도 배경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김 전 차관은 서울 강남구 본인 집이 아닌 강원도의 한 사찰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출국금지만 된 상황이고 수사기관에 입건된 피의자는 아니기 때문에 소재지를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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