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탐사기획 ‘자영업 약탈자들’ 보도 뒤 창업컨설팅으로 피해를 봤다는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의사 3명이 컨설팅을 끼고 ‘떴다방’처럼 병원을 열었다가 폐업하면서 수십명의 분양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내용부터, 기사 덕분에 계약만 한 상태에서 더 큰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는 사연까지 60여건의 제보가 접수됐다. 더 늦기 전에 관계 당국의 철저한 수사 및 조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개원 7개월 만에 돌연 문을 닫은 경기 화성 향남신도시의 한 신축 병원. 분양 피해 제보자 ㄷ씨 제공
서울에 사는 김아무개(60대)씨는 노후를 위해 퇴직금을 투자할 곳을 찾고 있었다. 분양업체는 병원 입점이 확정된 곳이라서 안정적으로 임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며 경기 화성 향남신도시의 8층짜리 신축 건물을 소개했다. 원장 이름으로 계약한 병원 임대차계약서도 직접 확인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 ㄴ씨가 원장을 맡아, 365일 쉬지 않고 운영하는 큰 규모의 병원을 연다고 소개받았다. 365일 쉬지 않는 병원은 초기에 홍보 효과가 높아 병원이 자리잡는 기간이 줄어든다고 분양업체는 강조했다.
김씨는 병원 자리로 300여㎡를 분양받았다. 병원은 4개 층에 7개 과, 4천여㎡ 규모였다. 김씨와 같이 임대차계약이 완료된 병원 자리를 분양받은 사람은 16명이었다. 컨설팅 업체가 병원과 약국 입점을 먼저 섭외하고 그 뒤에 ‘병원 자리’를 쪼개서 분양하는 방식이었다. 분양받은 사람들은 병원 입점이 확정됐으므로 매달 안정적으로 임대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지난 2월 병원이 7개월 만에 돌연 문을 닫았다. 임대료를 한달치만 낸 뒤 전혀 내지 않아 분양을 받은 16명이 명도소송을 걸자 폐업을 한 것이다. 애초 7개 과를 열기로 했던 병원은 4개 과만 운영했을 뿐이었다. 분양자 16명은 병원 운영 기간 동안 3억원 넘는 임대료를 받지 못했다. 병원 입점과 관련한 분양 금액만 무려 130억원이었다.
1층 약국 자리 분양자의 피해가 가장 컸다. 병원이 문을 닫은 지 채 한달이 안 돼 약국도 운영을 중단했다. 분양대금은 18억원이나 됐다. 병원 7개 과가 입점하는 건물에 ‘독점 약국’이라는 조건이었다.
피해자들은 갑자기 폐업을 선언한 의사가 계획적으로 병원을 개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 취재 결과, ㄴ 원장은 2017년 10월부터 10개월 동안 무려 3곳의 병원을 옮겨 다녔다. 피해자들은 ㄴ 원장이 의도적으로 신도시 병원을 돌며 ‘떴다방’ 영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ㄴ 원장이 근무했던 경기 수원 호매실과 화성 동탄, 화성 향남 병원의 의사가 2명 이상 겹친다. ㄴ 원장을 포함하면 의사 3명이 무리를 지어 여러 신도시를 돌며 병원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ㄴ 원장은 서울에 새로 개원하는 병원에 가기로 이미 계약한 상태다. 김씨는 “퇴직금 전부를 넣고 대출까지 받았는데 임대료는 들어오지도 않고 보증금마저 거의 바닥난 상황”이라며 “처음에는 우리 건물만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넘기려 했는데 같은 의사들이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닌 사실을 뒤늦게 알고 사기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경기 남부권 신도시의 경우 병원 입점을 약속했던 컨설팅 업체도 모두 같았다. 한 분양자는 “의사들이 한 팀으로 떼지어 다니며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며 “병원 입점을 미끼로 분양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분양업체도 시행사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ㄴ 원장은 “병원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았을 뿐 계획적이라는 것은 모함”이라며 “화성 향남의 병원을 제외하고는 봉직의로만 있었을 뿐 직접 개업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자영업 약탈자들’ 3회에서 다룬 세브란스 출신 병원장이 일산과 동탄, 인천의 신도시 상가에서도 병원 임대차계약을 했다는 제보도 잇따랐다. 대부분 아직까지 준공이 안 된 건물이어서 본격적인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동탄신도시에서 약국을 임차 운영하기로 했던 한 약사는 “아직 준공이 안 돼 계약금만 낸 상태에서 기사를 보게 돼 천만다행”이라며 “첫 약국 개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사기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 <한겨레>에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약사들도 대응에 나섰다. 대한약사회는 ‘약국 악성브로커 신고센터’를 설치해 컨설팅 피해와 관련한 신고를 받고 있다. 충북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박아무개(33)씨는 약사들이 컨설팅 업체 없이 약국을 직거래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약사 인증을 거쳐 사이트에 가입한 뒤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박씨는 “기사를 보고 약사들이 더 이상 호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이트를 만들었다”며 “현재 약국 거래 사이트는 컨설팅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일반 음식점이나 프랜차이즈 피해 사례 제보도 잇따랐다. 지난해 11월 창업컨설팅 업체의 소개로 서울의 한 음식점을 인수했다는 이아무개(30대)씨는 “컨설팅 업체가 매출과 매입 단가 등을 속여서 음식점을 판매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8월 경기도에서 카페를 개업했다가 5개월 만에 폐업한 박아무개(45)씨는 “적자만 나는 매장을 수익이 난다고 속여 팔아놓고는 창업컨설팅 업체에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며 “컨설턴트는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아 하소연할 곳도 없어 답답했는데 기사를 보고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