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을 제조한 에스케이(SK)케미칼이 ‘핵심 증거’로 꼽히는 유해성 관련 연구자료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27일 <한겨레> 취재 결과, 최근 검찰 수사에서 유해성 연구자료 일부를 제출한 에스케이케미칼이 불과 1년 전 이뤄진 환경부 조사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이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압수수색 등으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연구보고서는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팀이 1994년 10월 석 달 간 진행한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독성에 관한 연구’다. 당시 유공(현 SK케미칼)의 용역으로 연구를 진행한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인해 백혈구 수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유해성 여부를 검증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유공은 실험이 진행 중이던 1994년 11월18일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취지의 신문광고를 냈다. 검찰은 이를 에스케이케미칼이 유해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가습기 살균제를 시중에 유통하려 했다는 핵심적인 정황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에스케이케미칼이 이 보고서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에스케이케미칼은 2016년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당시 ‘회사에 보고서가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최근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보고서 일부를 검찰에 임의제출한 바 있다. 반면 에스케이케미칼 쪽은 일부러 숨긴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보고서의 사본으로 추정되는 자료 일부를 담당 팀장이 갖고 있었고 이를 이미 검찰에 임의제출했다”며 “연구진의 이름이나 데이터 등이 누락된 보고서의 일부분만 갖고 있어 국정조사 당시에는 ‘없다’고 발언한 게 아닌가 싶다. 회사가 일부러 관련 정보를 숨긴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겨레> 취재 결과, 1년 전 환경부에서 현장조사를 진행했을 때도 에스케이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 관련 정보가 없다’며 관련 내용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입수한 환경부의 ‘정보제공 및 열람명령 결정 유보’ 통보서(2018년 2월7일 작성)를 보면, 환경부는 “피청구인(SK케미칼, SK이노베이션)에 대한 현장조사 결과 가습기 메이트와 관련된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환경부는 전산 전문가를 대동해 에스케이케미칼 가습기 살균제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는 방식으로 중앙서버를 조사했으나 관련 내용을 찾지 못했다. 에스케이케미칼 또한 환경부에 ‘관련 자료는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환경부 조사에서는 ‘없다’던 가습기 살균제 관련 보고서가 불과 1년이 지난 후 검찰에 임의제출된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에스케이케미칼 쪽에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자료가 있는지 확인하고 따로 조사도 했으나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관련 규정에 따라 처벌할 수 있을지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법원은 지난 15일 증거인멸 혐의를 받는 에스케이케미칼의 박철 부사장에 대해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26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권순정)는 경기도 성남시 에스케이케미칼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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