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지난해 진행한 현장조사에서 ‘가습기살균제’ 유해성 연구보고서를 숨긴 에스케이(SK)케미칼을 검찰에 고발했다. 환경부가 에스케이케미칼을 검찰에 직접 고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환경부의 고발 건을 ‘가습기 살균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권순정)에 배당하고 수사에 나섰다.
환경부는 지난 12일 에스케이케미칼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법인과 직원들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특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18일 밝혔다. 특별법을 보면 환경부 장관의 지시로 진행된 환경부 조사에서 거짓된 자료·물건을 제출하거나 허위진술을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번 고발은 2017년 특별법이 시행된 뒤, 이 조항이 적용된 첫 사례다.
에스케이케미칼이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의 유해성 관련 연구자료를 지난해 환경부 현장조사에 숨긴 정황은 지난달 27일 <한겨레> 보도(
SK케미칼 1년 전 환경부엔 ‘가습기 살균제 자료 없다’더니…)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입수한 환경부의 ‘정보제공 및 열람명령 결정 유보’ 통보서(2018년 2월7일 작성)를 보면, 환경부는 “피청구인(SK케미칼, SK이노베이션)에 대한 현장조사 결과 가습기 메이트와 관련된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환경부는 전산 전문가를 데려가 중앙서버를 조사했으나 관련 자료를 찾지 못했다. 에스케이케미칼 또한 환경부에 ‘관련 자료는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년 뒤 진행된 검찰 수사에서 에스케이케미칼 쪽은 ‘보관하고 있지 않다’던 유해성 연구보고서를 검찰에 임의제출했다. 검찰이 전직 회사 관계자 등으로부터 연구보고서를 먼저 입수하자, 이후 동일한 연구보고서를 뒤늦게 검찰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보고서의 사본으로 추정되는 자료 일부가 뒤늦게 확인돼 제출한 것”이라고 했지만, 검찰은 연구보고서를 은폐하려던 에스케이케미칼이 뒤늦게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에스케이케미칼이 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 해당 연구보고서는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팀이 1994년 10월 진행한 ‘가습기살균제의 흡입 독성에 관한 연구’다. 당시 유공(현 에스케이케미칼)이 용역을 줘 연구를 진행한 연구팀은 ‘가습기살균제 성분으로 인해 백혈구 수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해, 유해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를 에스케이케미칼이 가습기살균제의 무해성을 검증하지 않은 채 시중에 유통한 ‘핵심물증’으로 보고 있다.
이날 서울대 연구보고서를 은폐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철 에스케이케미칼 부사장의 첫 공판이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안재천 판사) 심리로 열렸다. 검찰은 “박철 부사장 등이 2013년 ‘가습기살균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서울대 실험보고서를 한 직원에게 은닉하게 한 후, 원래 회사에서 보관하던 보고서를 조직적으로 폐기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전날 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홍지호 전 에스케이케미칼 대표에 대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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