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아킬레스건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 수사가 변곡점을 맞았다. 이 사건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인 ‘콜옵션’ 약정에 대해, 삼성바이오 회계에 관여한 외부 회계사들이 금융당국과 법원에서 했던 진술을 검찰에서 뒤집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지난해 12월 삼정·안진·삼일·한영 등 국내 회계법인 4곳과 삼성바이오, 삼성물산 등을 일단 압수수색했다.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마친 검찰은 지난달부터 관련자 소환 등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특히 지난해 <한겨레> 보도 등으로 알려진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의 폭발력에 주목해 회계법인 수사에 주력해왔다. 검찰 관계자는 24일 “회계법인 수사를 계속해서 진행해왔다. 비슷한 시기의 여러 사람들(의 진술)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했다.
2012년 삼성바이오는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를 미국 업체 바이오젠과 합작해 세우면서, 바이오젠에 삼성에피스 지분을 ‘50%-1주’까지 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을 부여했다. 삼성에피스 지분의 절반이 언제든 바이오젠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삼성바이오는 이를 투자자 등 시장에 알리지 않았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콜옵션 공시를 누락한 것이 2015년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고의적인 공시 누락으로, 합병 과정에서 삼성에피스의 가치가 고스란히 삼성바이오 몫으로 돌아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삼성바이오의 모회사인 제일모직, 나아가 제일모직 지분을 23% 보유하고 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유리한 결과로 작용했다.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부풀리는 분식회계가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와 직결되는 셈이다.
특히 콜옵션 공시 누락은 회계사기 혐의의 ‘몸통’으로 지목된 삼성에피스에 대한 회계기준 변경으로도 이어졌다. 2015년 9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회계법인 쪽은 삼성바이오에 이를 ‘부채’로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이 경우 삼성바이오는 자산보다 부채가 큰 자본잠식 상황을 맞게 된다. 이 부회장이 지분을 많이 보유한 제일모직에 유리하도록 삼성에피스의 가치를 부풀려놓은 탓에, 미국 합작사가 가진 콜옵션의 가치도 덩달아 커졌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는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삼성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바꾼다. 증선위는 이를 근거로 지난해 11월 삼성바이오가 고의적으로 분식회계를 했다고 결론 냈다.
삼성바이오는 콜옵션과 관련해 정반대 주장을 펴왔다. 2012~13년에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낮아 공시하지 않았고, 2015년 바이오시밀러 허가 등으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진 뒤에야 이를 장부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는 “삼정케이피엠지(KPMG), 딜로이트안진 등 국내 3대 회계법인으로부터 회계기준에 부합한다는 일치된 의견을 받았다”고 밝히는 등 회계법인을 통해 이런 회계처리 방식의 정당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삼정과 안진 소속 회계사가 검찰 조사에서 “콜옵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실토하면서 삼성바이오 쪽 주장은 크게 흔들리게 됐다.
기업 회계 수사에 밝은 법조계 인사들은 회계사들이 분식회계의 출발점이자 회계기준 변경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콜옵션 부분 진술을 바꿨다는 점에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분식회계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이들이 태도를 바꿨다는 점에서 상당한 진전을 예상한다. 회계사들은 검찰 조사에서 삼성바이오 쪽 주장과 배치되는 여러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는 올해 초 “소속 회계사들의 검찰 진술로 우리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것”이라며 입단속을 하려 했지만, 회계사들이 검찰 수사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회계사들의 진술 변경으로,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이 뒤바뀔지도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유진현)는 콜옵션 공시 누락과 관련해 증권선물위원회가 부과한 제재처분 집행을 중지해달라는 삼성바이오 쪽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당시 재판부는 “증선위가 제출한 소명자료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삼성바이오의 손을 들어줬다. 증선위는 이에 항고했다.
최현준 임재우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