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도망 우려가 있다.”
법원이 지난 16일 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언론 공개용으로 밝힌 사유다. 애초 법조계에서는 김 전 차관의 뇌물 혐의 입증 정도 등에 비춰볼 때 구속영장이 기각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주요 사건 영장재판에서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던 법원은, 그러나 비교적 이른 밤 11시께 간명한 이유로 구속영장을 내줬다.
김 전 차관이 성접대 의혹이 불거진 지 6년여 만에 구속된 데는 ‘심야 출국 시도’와 ‘전면적인 모르쇠’ 전략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단 도주하고, 잡히면 부인하라’는 법조계 은어인 ‘일도이부’ 공식을 따르다 제 발등을 찍었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은 검찰수사단이 꾸려지기 전인 3월22일 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타이로 출국을 시도하다 제지당했다. 비행기 탑승 직전까지 갔지만 뒤늦게 이를 안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검사에 의해 긴급 출국금지됐다. 김 전 차관은 “태국 방콕의 지인 집에 가려했다. 왕복표를 끊었다”며 도피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밤 중에 깊게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래스까지 한 채 공항에서 발견된 그의 모습은 좁혀오는 수사망을 피해 도망가는 이의 모습과 흡사했다.
김 전 차관이 이 사건 핵심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줄곧 모른다고 주장한 것도 구속영장이 발부되는데 중요한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차관은 지난 9일과 12일 두 차례 소환조사에서 “윤중천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대질신문을 거부했다고 한다. 반면 윤씨는 김 전 차관을 잘 아는 것은 물론, 돈봉투까지 챙겨줬다고 진술했다. 김 전 차관은 구속 갈림길인 영장판사 앞에 선 뒤에야 “윤씨를 알기는 한다”고 뒤늦게 인정했지만, 판사는 오히려 이런 말 바꾸기를 곱지 않게 봤다. 한 법조인은 “6년이나 지났고, 여러 차례 수사를 받은 사건이다. 그런데도 굳이 도망가려 하거나 기본적인 사실 관계까지 부인하는 태도가 본인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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