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이동한 사회부장이 찾아와 방상훈 사장을 조사하지 말라면서 ‘이명박 정부가 우리 조선일보하고 한판 붙자는 겁니까’라고 말했다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라는 입장이다.”
“(강희락 경찰청장을 찾아가 면담한 것은) 당시 장자연 사건 수사 결과를 신속히 발표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뿐이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20일 ‘고 장자연씨 사건’ 조사 결과를 내놓은 뒤 <조선일보>가 21일치 지면을 통해 밝힌 해명이다. 방상훈 사장 등 사주 일가 수사를 축소하거나 방해하기 위해 신문사 차원에서 압력을 행사한 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쪽 해명과 달리 2009년 수사 때 조선일보가 수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개입한 흔적은 곳곳에 있다. 심지어 수사 상황이 조선일보 쪽에 흘러간 정황도 있다.
지난 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재판장 정은영) 심리로 열린, 조선일보가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 소송 재판에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2009년 당시 경기경찰청장으로 장씨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조 전 청장은 “2009년 3월 (부산고 후배이자) 고려대 후배로 대학 시절부터 40년 이상 알고 지낸 가까운 사이인 조선일보 이종원 부국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며 “이 부국장이 ‘이 사건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우리 (방상훈) 사장님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조 전 청장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조선일보 애독자였고, 조선일보를 상당히 아끼는 마음도 있었다”며 “수사기밀, 상당히 깊은 이야기까지 제가 파악하고 있는 부분을 부국장에게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조 전 청장의 발언에 재판장은 “지금 말씀하신 부분, 형사처벌 위험 있는 거 아시죠?”라며 “법정에서 이야기해도 형사처벌 받을 위험이 있고, 그런 질문에 대해서는 거부할 권리가 있으니 이 부분 감안하라”고 했다. 이에 잠시 주춤했던 조 전 청장은 “최대한, 정말 꼭 필요한 수사기밀을 빼고는 말할 수 있는 것은 다 알려줬다”고 말했다.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전국언론노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018년 4월5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장자연리스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재판에는 사건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었던 이동한 조선뉴스프레스 대표가 나와 조 전 청장을 상대로 직접 심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내 통화상대는 최원일 형사과장이었다. 증인은 당시 경찰에서 최고 간부인데, 나랑 통화할 이유가 있나?’라고 물었다. 이에 조 전 청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라. 정상적인 것이라면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왜 경기경찰청 형사과장과 전화를 하고 찾아갑니까? 분당에 있는 경기청 출입기자가 하면 되지”라며 “재판장께도 한 말씀 드리겠다.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수원에 있는 경기청 형사과장에게 전화 걸면서 경기청장에게는 전화를 안 걸겠습니까? 신참 기자가 서장 방으로 불쑥 찾아오고 하던 때인데”라며 공박했다.
조선일보가 수사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정황은 더 있다. 하아무개 전 <스포츠조선> 사장이 “수사 상황을 조선일보 법조팀이 다 알고 있었고 진술서를 실시간으로 받아 보더라”고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밝힌 게 대표적이다.
조사단은 또 2009년 당시 수사팀 경찰관으로부터 “장자연 사건 송치 무렵 ‘기록 전체를 9부 복사했다’는 말을 다른 경찰에게서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특히 이 기록 복사는 경찰서가 아닌 외부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건의 수사기록이 복사돼 외부로 유출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언이다. 하지만 검찰과거사위는 20일 조사 결과 발표 때 “수사기록이 조선일보사 쪽에 제공됐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조사단은 협조를 받아 진술을 청취할 수 있을 뿐 강제수사권이 없어 조사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권지담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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