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활동가들이 2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씨 사건 등 권력층에 의한 반 인륜적 범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저는 2008년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습니다. 피해를 당하고도, 엄청난 권력을 가진 그들을 고소하는 것은 ‘바위에 계란 치기’인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해 숨죽여 지냈습니다. 김학의와 윤중천에 대해 무혐의 불기소 처분이 난 지 5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사죄해야 할 김학의는 저를 무고죄로 고소하면서 끔찍했던 과거를 들춰냈습니다. 권력 앞에 진실이 묻히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력 피해 당사자 ㄱ씨)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의 ‘고 장자연 사건’ 심의 결과에 대해 여성·시민단체가 “부실수사”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1043개 시민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 등 권력층에 의한 반인륜적인 범죄, 은폐·조작 자행한 검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사위의 ‘배우 장자연씨 성접대 리스트 사건’ 조사 결과 등에 대해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과거사위의 수사 결과가 부실함을 넘어 위법했다고 주장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과거사위가 ‘장자연 리스트 사건’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사 권고를 한 것은 단 1건이다. 과거사위는 13개월 동안 84명을 조사했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심의한 결과가 부실하지만 수사권이 없다며 수사 권고를 단 한건만 했다. 증거 누락, 수사 결과가 왜 미진했는지, 압수수색이 왜 부실했는지 수사하라고 권고해야 했다”고 말했다. 차혜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20일 과거사위 보도자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수사 미진’ ‘수사 부실’ ‘과오’ ‘업무 소홀’이었다. 하나의 사건에서 이렇게 많은 ‘수사 미진’이 발생했다면 수사가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042개 여성.인권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활동가들이 2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씨 사건 등 권력층에 의한 반 인륜적 범죄의 은폐·조작 자행한 검찰 규탄 기자회견'에 김 전 차관 사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모자 쓴 이)이 참석해 증언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김정효 기자
부실수사의 이유를 밝혀내지 못한 과거사위는 ‘공범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검찰은 가해자로서, 또 다른 가해자를 봐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검찰은 공범이냐, 공권력이냐”라며 “검찰은 언제나 윤중천보다 앞에 나선 적이 없다. 윤중천이 입을 다물면 무혐의, 애매하게 말하면 갸우뚱했다”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이어 “부실 수사한 검사들을 징계하라”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거듭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김학의 전 차관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라고 밝힌 ㄴ씨는 “윤중천이 저질러 놓은 악행은 항상 힘없고 권력 없는 여자를 짓밟는 데서 시작됐다. 지금도 윤중천은 공권력과 국민을 우습게 알고 거짓과 발뺌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윤중천의 악행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공권력으로 벌을 받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피해자 ㄷ씨는 “과거 검찰에서 1차 조사를 받을 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고 탄원서를 보냈지만 2차 조사 때 검사는 동영상 속 행위를 지시했다”며 “당시 검찰은 김학의와 윤중천이 날 모른다는 이유로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것이 최선을 다한 조사냐”라고 지적했다.
참가자들은 부실수사에 대한 검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승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등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과거사위는 5월 말 활동 종료를 앞두고 사건을 ‘정치적 쟁점’으로 취급하고, 침해된 여성 인권 문제는 외면한 채 형식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공소시효’ ‘증거 부족’ 모두 과거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서 기인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유로 사건 해결의 책임을 면하려 하고 있다”며 “의혹투성이인 당시 검찰 수사에 대해 끝까지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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