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이 29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범죄 의혹과 과거 검·경 수사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수사단은 ‘윤중천 리스트’라 불러도 무방한 윤중천과의 유착 의심 정황이 다분한 한○○ 전 검찰총장, 윤○○ 전 고검장, 박○○ 전 차장검사 등 전·현직 검찰 고위관계자에 대해 엄중히 수사해 그 진상을 국민께 소상히 설명하고, 위법 또는 부당한 행위가 적발된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위시한 엄정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는 29일 ‘김학의 전 차관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를 발표하며 제2, 제3의 김학의를 구체적으로 거명했다. 보도자료에서는 익명 형식이었지만, 문제가 된 사건 처리 당시 이들의 직책과 역할이 명시돼 있어 사실상 이름을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과거사위가 “윤씨 관련 사건에 개입한 정황 등이 확인되고 있다”며 “수뢰죄 또는 수뢰후 부정처사죄 등을 범한 것이 아닌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이는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윤갑근 전 고검장, 박충근 전 춘천지검 차장 3명이다.
2011~2012년 검찰총장을 지낸 한 전 총장은 윤씨가 개발에 나섰다가 수백명의 피해자를 낸 ‘한방천하 상가’ 사기·횡령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윤씨는 2011년 ‘한방천하’ 사건과 관련해 사기·횡령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돼 수사를 받았는데, 당시 한 전 총장은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윤씨는 그해 7월 수사 강도가 높아지자 한 전 총장 앞으로 진정서를 냈다. “수사관의 수사가 편파적이니 교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윤씨 요구대로 해당 수사관이 교체됐고, 윤씨는 무혐의 처분됐다. 당시 교체됐던 성아무개 수사관은 <한겨레>에 “30년 가까이 수사관 생활을 했지만, 수사 도중 교체된 적은 처음이었다”며 “사기·횡령 혐의로 고발된 윤씨를 수사하는데, 피의자가 편파적이라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수사관을 교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중천씨는 또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조사에서 한 전 총장에게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장은 지난 3월 이런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한겨레>는 한 전 총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윤갑근 전 고검장은 2013~2014년 김 전 차관 사건 1·2차 수사 당시 지휘라인인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고위 간부로 근무하면서 윤씨 관련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과거사위는 “2013년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였던 윤 전 고검장이 윤씨 특수강간 고소사건과 무고 사건 등의 최종 결재자였고, 이듬해 두번째 김 전 차관 사건 수사 당시에는 대검 강력부장으로 수사 담당 부서인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를 지휘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당시 수사 과정에서 주요 증거가 누락되는 등 윤씨에게 유리하게 수사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윤 전 고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윤씨를 전혀 알지 못한다”며 “허위 사실을 공표한 과거사위를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윤 전 고검장 또한 지난 3월 윤씨에게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보도되자,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김학의 춘천지검장을 직속상관으로 모셨던 박 전 차장검사는 직급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윤씨와 가장 유착됐던 검찰 간부로 지목됐다. 과거사위는 “박 전 차장검사가 2010년 변호사 개업 이후 윤씨가 소개한 사건의 수임료 중 일부를 리베이트로 지급하여 변호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정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검팀에서 특검보로 활동하기도 했던 박 전 차장검사는 윤씨의 아내가 2012년 10월 윤씨와 내연관계였던 권아무개씨를 간통 혐의로 고소한 것이 무고라는 사실을 알고도 윤씨 아내의 법률대리를 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한겨레>는 해명을 듣고자 박 전 차장검사에게 여러차례 연락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윤씨의 원주 별장이 김 전 차관만을 위한 접대 장소가 아닌, 검찰 고위간부 등 다수의 법조계 관계자들과 교류하고 이들을 접대한 장소로 확인됐다”며 “이번 사건은 검찰 내 잔존하는 이른바 ‘스폰서 문화’의 전형”이라고 밝혔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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