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2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브리핑실에서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 활동과 조사 결과, 성과와 한계 등에 관한 견해를 밝힌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발표만 할 뿐 기자들과 일문일답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이에 출입기자 대부분은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았다. 예정됐던 생중계도 취소됐다. 과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2일 오후 2시30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 브리핑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단상에 서서 10분가량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 활동 종료 관련 법무부 입장’을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박 장관 맞은편 브리핑석은 두 세자리만 빼고 텅 비어 있었다. ‘낭독’을 마친 박 장관은 비어 있는 브리핑석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한 뒤 브리핑실을 나갔다.
‘브리핑 대상이 없는 브리핑’이 이뤄진 이유는 박 장관이 입장 발표만 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고 장자연씨 사건 등 검찰과거사위가 조사 결과를 내놓은 사건들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이 일었다. 부실·봐주기 수사 논란이 일고, 당사자들이 적극 반박에 나서고, 외부에서는 특검 도입 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안이 중한데도 박 장관이 일방적 발표만 고집하자 기자들이 브리핑 참석을 거부했고, 박 장관은 박 장관대로 ‘나 홀로’ 브리핑을 강행했다.
법무부 업무와 관련해 박 장관이 책임이나 소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검찰과거사위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갈등을 일으켰을 때도 침묵했고, 자신이 설치를 주도한 검찰과거사위가 최근 한상대 전 검찰총장 등을 ‘김학의 리스트’로 발표하며 수사를 촉구했을 때도 이를 대검에 송부할 뿐 아무런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침묵 속에 이도 저도 아닌 태도가 계속되자 검찰과거사위원들 사이에서는 “장관 생각을 모르겠다. 자기 생각이 없이 저쪽(청와대) 눈치만 살핀다”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국회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반발하자, 한참 뒤에야 검사장들에게 메일을 보내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미 논란은 커질대로 커진 뒤였다.
연세대 교수 출신인 박 장관은 2017년 6월 인사청문 과정에서 안경환 후보자(서울대 명예교수)가 낙마하면서 대타로 법무부 장관에 취임했다. 변호사가 아닌 교수 출신으로는 드문 법무부 장관 발탁이었다. 외부에서는 시민단체 대표를 맡기도 했던 그에게 외부와의 소통과 법무부 개혁에 관한 기대가 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도 박 장관을 두고 이렇다 할 과오도 없지만, 뚜렷한 성과도 없다는 평가가 많다. 법무부 안팎에서는 7월 검찰총장 교체 뒤 새 장관 임명을 예상하는 분위기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독립적으로 운영된 검찰과거사위 활동에 대해 장관이 구체적으로 답변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발표로 갈음했다. 이런 배경을 설명하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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