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정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4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세번째 수사에서 검찰이 사건 책임자 34명을 재판에 넘겼다. 2016년 22명이 기소됐던 2차 수사를 피했던 이들이다. 사건 발생으로부터는 8년여 만이다. 피해자 단체인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늦어도 너무 늦은 수사 결과 발표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며 아쉬워했다. 정부에 등록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지난 19일 기준)는 6476명으로, 이 가운데 1421명이 사망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권순정)는 23일 홍지호 전 에스케이(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책임자 등 8명을 구속 기소하고, 정부 내부 정보를 유출한 환경부 서기관 최아무개(44)씨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에스케이케미칼과 애경, 이마트, 지에스(GS)리테일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업체 임직원들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시엠아이티)·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엠아이티)을 원료로 한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제조·유통해 인명 피해를 낸 혐의(업무상 과실 치사상)를 받는다. 두 원료는 2016년 수사 때 유해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 대상에서 빠졌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최초 개발 단계부터 부실하게 개발됐고, 업체와 정부기관 간에 조직적인 유착이 있었다는 점 등을 새로 밝혀냈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을 처음 개발한 유공(현 에스케이케미칼)은 1994년 개발 당시 ‘유해성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을 어긴 채 제품을 시중에 유통시켰다. 환경부 서기관 최씨는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뒤 국정감사 등 내부자료를 제공했고,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양아무개씨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조사를 무마해달라는 부탁으로 수천만원을 수수했다.
이번 수사에서 정부의 과실을 제대로 묻지 못한 점 등은 한계로 지적됐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과실 책임과 다른 원료를 쓴 가습기 살균제 업체 수사, 옥시 영국 본사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죽음의 원인이 드러난 2011년 곧바로 검찰이 이번만큼 수사했다면 과정과 결과 모두 달랐을 것”이라며 “사법부는 이 사건을 일반 형사사건을 다루는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 4~5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출산 전후 산모 8명이 폐가 굳는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입원한 뒤 4명이 숨지면서 알려졌다. 유족들은 2012년 8월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 10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일반 형사사건으로 보고 검사 1명에게 수사를 맡겼고, 이듬해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시한부 기소중지했다.
수사가 본격화한 것은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2016년 1월부터다. 검찰은 그해 11월까지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세퓨 등 업체 대표와 임직원 등 21명을 업무상 과실 치사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세번째 수사는 시엠아이티·엠아이티 원료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 역학조사 자료가 쌓이고,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관련 연구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신지민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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