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참위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 청문회 2일차
‘엘지 가습기살균제’ 흡입독성 시험 결과 공개
옥시·애경 제품 이어 엘지제품도 독성 드러나
엘지 ‘흡입독성’ 실험 않고 “안전” 주장 논란
옥시는 “부실한 정부 관리로 참사” 책임회피
27일에 이어 2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오전 박동석 옥시 PB대표이사(오른쪽 두번째)가 청문회에 나와 사참위 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흡입독성물질로 인정받지 못했던 엘지(LG)생활건강의 가습기살균제 원료가 흡입했을 때 폐와 기관지 등 호흡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정부 조사결과가 최초 공개됐다. 해당 물질은 염화벤잘코늄(BKC)으로, 엘지생활건강은 1998년부터 해당 물질을 원료로 ‘119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불거지기 전인 2001년 생산을 중단했다. 정부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에 이어 염화벤잘코늄을 흡입독성물질로 인정할 경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27일에 이어 28일 오전 9시30분께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열고 ‘염화벤잘코늄 흡입독성시험 결과’가 담긴 환경부 용역보고서를 최초로 공개했다. 이 조사는 2016년 염화벤잘코늄이 뒤늦게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논란이 되자 2017년 말 환경부가 의뢰한 것으로, 2018년 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이뤄졌다. 해당 조사를 수행한 서동석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산업화학연구실 연구위원은 “동물을 대상으로 흡입독성 물질(염화벤잘코늄)을 최저·중·고농도로 90일 동안 반복 노출을 했을 때, 비강을 포함해서 폐까지 자극성이 관찰되었다”고 밝혔다. 염화벤잘코늄이 호흡기 계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엘지생활건강은 2016년 자사 제품 ‘119 가습기 살균제’가 논란이 되자 ‘독성실험 결과 염화벤잘코늄은 안전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사참위 조사 결과 엘지생활건강은 ‘경구독성’ 실험만 했을 뿐 ‘흡입독성’ 실험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구독성 실험은 입을 통해 소화기관에 들어가는 약물이 신체에 장애를 일으키는지 여부를 보는 것으로, 코·입 등 호흡기를 통해 들어가는 가습기 살균제는 흡입독성 실험을 해야 한다. 사참위가 공개한 1997년 엘지화학 생활과학연구소의 ‘119가습기세균제거 살균력 및 방부력 평가 결과 최종 처방 송부의 건’ 자료를 보면, 살균제의 인체 안전성 관련 자료에서 염화벤잘코늄의 ‘경구독성값’은 있지만 ‘흡입독성값’은 없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119 가습기 살균제’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자, 엘지생활건강은 흡입독성 실험을 하지 않았음에도 ‘염화벤잘코늄의 흡입노출에 대한 전신독성 위해성 없음’이라는 내용을 담은 안정성평가보고서를 펴냈다. 이에 홍성칠 사참위 비상임위원은 “흡입독성테스트도 안 했는데 어떻게 ‘전신독성 위해성 없음’이라고 말하냐”고 질문했고, 박헌영 엘지생활건강 대외협력부문 상무는 “흡입독성 실험을 직접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당연히 해야 했었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고 책임을 인정했다.
엘지생활건강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현재 엘지생활건강 가습기살균제를 단독으로 사용해 관련 질환이 생긴 피해자로 공식 집계된 인원은 2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두 사람 역시 4단계 피해자인 특별구제계정에 해당돼 정부 예산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예용 사참위 부위원장은 “최근 사참위에서 부산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엘지 가습기 살균제를 쓴 사람을 조사했고 20명의 사용자가 나왔다”며 “이 가운데 사망으로 추정되는 사례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에 박 상무는 “일제생활건강의 염화벤잘코늄 살균제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인정된 단계가 아니다”며 “피해가 확정되면 신속하게 사참위에서 원하는 것 이상으로 할 의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서는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옥시레킷벤키저 관계자들의 책임 회피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피해대책을 묻는 사참위원의 질문에 박동석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가 “처음 제품이 출시됐을 때 정부기관에서보다 안전한 기준을 만들고 철저히 관리·감독을 했다면 과연 오늘날과 같은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싶다”며 참사의 책임을 정부로 돌리는 발언을 했고, 피해자들의 반발을 샀다.
락스만 나라시만 레킷벤키저 상임이사와 아타사프달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 등 외국인 대표들이 청문회에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사실도 문제로 지적됐다. 황필규 사참위 비상임위원은 “잘못이 없으면 당당히 한국에 와서 조사받고 무혐의 처분받으면 된다.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서 본사에서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고, 박동석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본사의 결정에 저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오늘 청문회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오후 청문회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군부대 실태 조사 결과도 추가로 공개됐다. 사참위는 “국방부에 가습기 살균제 구매·사용 실태에 대한 자료를 요청해 지난 28일부터 현재까지 ‘55개 부대·기관에서 가습기살균제 2474개를 구매·사용했다’는 내요을 확인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사참위가 발표한 ‘12개 군부대 800여개 살균제’보다 늘어난 수치다. 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은 “현역 군인 뿐 아니라 간부와 예비역에 대해서도 피해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석웅 국군의무사령관도 “가습기살균제 군 피해 신고·지원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덧붙였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 | 이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