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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위력에 의한 간음’ 인정한 안희정 상고심…“피해자다움 강요 안돼” 못박아

등록 2019-09-09 21:25수정 2019-09-09 22:40

피해자 진술 사소한 부분 틀려도
구체적일 땐 ‘신빙성 있다’ 판단

안 전 지사 ‘무형적 위력’ 행사
“피해자 자유의사 제압하기 충분”

여성계 “조직내 권력관계 살핀 판결”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 상고심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안희정은 유죄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하늘을 향해 던지며 환호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 상고심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안희정은 유죄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하늘을 향해 던지며 환호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여성계 등이 숨죽이며 기다렸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가 9일 안 전 도지사의 ‘사회·경제·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위력으로 인정해 그의 유죄를 확정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성인지 감수성’을 근거로 들어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도 못박았다. 사소한 부분이 틀리더라도 주요 부분이 일관적이고 구체적이라면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 “조직 내 권력관계 살핀 판결”

대법원은 안 전 지사가 가졌던 위력을 넉넉하게 인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성폭력에 이르게 됐다고 판단했다. 이는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가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분해 “위력은 존재했지만 행사하지 않았다”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다. 대법원은 대신 안 전 지사에게 수행비서였던 피해자 김지은씨 임명·면직 권한이라는 무형적 위력이 있었고, 그 위력을 행사했다는 피해자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조직 안에서 권력관계가 어떻게 성폭력에 이르게 되는지를 잘 살핀 판결”이라며 “조직 내 성차별적 문제,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가 작동되어 발생하는 성범죄가 많은데 같은 피해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용기를 줬다”고 평가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나 추행은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인 만큼 신고 건수가 적어, 판례도 적었다. 특히 폭행, 협박이 아닌 위력에 대해서는 인정해주지 않았다”며 “이번 판결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인정해 관련 판례를 재확립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피해자 진술 함부로 배척 말라”

“피해자 진술은 주요 부분이 일관되며, 진술 자체로 모순이 없고, 허위 진술할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기존 진전된 판례를 이번 사건에 그대로 적용했다. 피해자의 기억이 다소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도 사건 당시의 상황, 안 전 지사가 한 구체적 행동이나 말, 당시 피해자가 느낀 감정 등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면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지난 2월 2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가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며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장윤미 변호사는 “대법원이 피해자의 관점과 맥락에서 사건을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근 하급심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하며 피해자 중심으로 심리해 판결하는 추세인데 대법원이 이를 환기했다”고 평가했다.

■ “피해자다움 강요하지 말라”

이번 대법원 선고는 피해자에게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요구해선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씨가 성폭행 피해를 당한 다음날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을 알아보거나, 안 전 지사 등과 함께 와인바에 갔는데, 이를 “성범죄 피해자라면 보일 수 없는 행동으로 보기도 어렵다”며 “그런 사정을 들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 것이다.

위은진 변호사(법무법인 민)는 “피해자의 행동 중 일부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 있더라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당시 상황 등을 보고 개별적,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판례가 쌓이면 피해자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이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우리 장예지 고한솔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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