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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도로공사가 만든 섬에 갇힌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

등록 2019-10-08 11:04수정 2019-10-08 19:46

[영상+] 해고된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 250명
김천 도로공사 본사 30일째 점거농성
감기약·생리대 차단 등 ‘과도한 통제’
“우리도 국민, 전문 시위꾼 매도 억울”

‘쌍화탕’은 폴리스라인 안에 채 10초도 머물지 못했습니다. 유리병은 ‘위험물질’로 분류돼 반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건물 안에 ‘갇힌’ 해고 노동자 250명 중 230명이 감기에 걸렸지만, 따뜻한 쌍화탕 한 병이라도 먹으려면 폴리스라인 너머로 손을 뻗어야 했습니다.

쌍화탕 반입만 금지된 건 아닙니다. 기자 등 외부인 출입도 철저히 금지돼 있습니다. 도로공사 측에 출입 여부를 문의했지만 “내부 분위기가 격앙될 수 있고 기자의 안전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김천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 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한번 본사 밖을 나서면 폴리스라인에 막혀 들어오지 못합니다. 박순향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을 경찰 방패와 방패 사이에서 인터뷰해야 했던 이유입니다.

지난 8월29일 대법원은 “톨게이트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2013년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직접 고용하라”며 소송을 낸 이후 1심과 2심을 거치며 단 한번도 뒤집어지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9월9일 △직접고용 대상은 대법원 소송에 참여한 499명으로 한정한다 △직접고용하지만 수납 대신 타 직무에서 일해야 한다 △대법원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1047명에 대해선 개별적인 사법부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발표 당일,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도로공사의 결정에 반대하고 새 교섭을 요구하며 김천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했습니다.

“이미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잖아요. 수납원은 직접고용해야 할 대상자다. 아직 판결을 안 받은 나머지 사람이 다른 일을 한 건 아니에요. 이미 1·2심이 진행 중이고 시간이 가면 판결을 받을 겁니다. 다 개개인 소송이라 결과를 봐야 한다? 이건 맞지 않는 거죠.”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도로공사를 점거한 뒤 내륙도시 김천에는 거대한 섬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생리대조차 반입되지 않았을 정도로 물품 반입은 자유롭지 않고 외부인 출입은 철저히 금지됐습니다. 환기 시설 작동을 멈추고 방화커튼을 내려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숨조차 쉬지 못할 지경”이라고 합니다. 전기가 끊겨 콘센트 하나에 문어발처럼 250명의 핸드폰을 충전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이 머무는 2층 로비 천장 전등은 낮밤 없이 켜놓아 숙면을 취하기도 어렵습니다. 평균 연령이 50~55세에 달하고 면역력 약화로 피부병마저 돌고 있어 벌써 20여명이 119를 불러 밖으로 나가야만 할 정도로 내부 생활 환경은 열악합니다.

“법리적으로는 불법 점거라고 말을 하겠죠. 근데 저희 명백히 대법원 판결도 받았잖아요. 저희 직장에 사장님 만나러 왔는데 문을 걸어잠근 건 도로공사에요. 잠궜기 때문에 저희가 밀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요. 그뒤로 수차례 교섭을 요청했지만 도로공사는 응하지 않았어요.”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도로공사라는 ‘사측’만이 아닙니다. 도로공사 노동조합, 일명 ‘정규직 노조’ 또한 이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도로공사 본사 외벽에 커다랗게 걸어놓은 ‘너무 힘들어요! 동료가 될 우리! 농성은 이제 그만!’이라는 표어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정규직 노조는 지난달 23일 “자위권 행사를 ‘구사대’라는 단어로 모욕 말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순향 부지부장의 생각은 다릅니다.

“구사대로 표현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미 구사대 행동을 다 했어요. 도로공사 본사에 들어온 날, 경찰 속에 도로공사 직원들이 있었어요. 저를 잡아다니는 상황에서 옷이 다 찢어졌어요. 제 속옷까지 드러났지만 멈추지 않았어요. 경찰은 그렇게 무력을 안 써요. 저희를 향해 욕하고 폭행까지 저질렀는데 어떻게 구사대라고 표현을 안 합니까.”

일각에선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도로공사 본사를 불법 점거했다며 비판합니다. 도로공사 직원은 물론 주변에 거주하는 시민에게까지 불편을 끼치는 현재의 점거 농성 대신 다른 투쟁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여러 노동 전문가는 불법 점거 이전에 도로공사의 ‘불법파견’ 문제를 먼저 짚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로공사는 2008년 12월부터 수납 업무를 외주화했지만, 외주화된 업체의 수납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도로공사의 지시를 받아 일해야 했습니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외주업체 소속 근무자들이 도로공사 로고가 새겨진 근무복과 명찰을 착용하고, 정직원과 함께 같은 공간인 영업소에서 작업을 수행한 점 등을 보면 외주사업체 근로자들이 도로공사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도로공사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입니다. 수납 노동자들이 8월19일,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을 불법파견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셔였습니다.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이 나기 불과 두달 전, 수납 업무를 전담하는 ‘도로공사서비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합니다. 대법원 판결이 난 뒤에는 ‘수납 업무를 하려면 자회사로 가고 본사 직접고용을 원하면 수납 업무가 아닌 환경정비 등 다른 업무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박순향 부지부장은 이를 ‘꼼수’라고 비판합니다.

“예전에 있던 용역회사 360개 대신 용역회사 한 개가 생긴 거나 다름없어요. 심지어 아직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도 않았어요.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되기도 어렵겠지만, 지정된 뒤에도 찢어내기를 통해 이미 없어진 회사도 많아요. 그런데 자회사 가면 수납업무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을 누가 믿겠어요.”

실제 공공기관 자회사가 민간기업이 된 역사가 있습니다. 고 김용균씨가 있던 한국발전기술도 공기업인 한국남동발전의 자회사에서 민간업체인 태광실업에 매각된 회사입니다. 도로공사처럼 정규직 전환을 위해 새로 만든 자회사의 공공기관 지정을 해제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만든 자회사인 부산항보안공사와 인천항보안공사는 올해 초 공공기관에서 제외됐습니다.

톨게이트 노동자의 직접고용, 혹은 정규직 전환이 ‘공정하지 않은 결과’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입사 시험 통과한 정규직과 시험도 안 치고 정규직이 된 이들이 같은 처우를 받는 건 불공정하다’는 논리가 대표적입니다. 박순향 부지부장은 “저희는 시험보고 들어온 정규직 노조가 하는 업무를 할 수조차 없어요. 그분들의 월급을 요구한 적도 없고 일자리를 뺏을 이유도 없습니다”며 “지금까지 했던 수납 업무와 그 월급이면 돼요. 다른 게 아니라 고용 안정을 요구할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주에 사는 박순향 부지부장에게는 남편과 딸 둘이 있습니다. 고3인 둘째 딸은 남편과 함께 대입 원서를 쓰고 있습니다. 농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통화만 한 게 벌써 두달이 넘었습니다.

“저희도 국민이고 한 가정의 가장들이에요. 이렇게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강래 사장의 강행이, 청와대의 뜻이 아니라면 임기 전에 잘못된 사장을 파면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오죽하면 이렇게 수납원들이 뭉쳐서 싸울 수밖에 없었을까 한번 더 생각해주고 하루 빨리 마무리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영상 인터뷰를 위해 박순향 부지부장은 직접 농성장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촬영해줬습니다. 박순향 부지부장의 ‘돌직구’를 영상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세요!

촬영 전광준, 박윤경 기자

편집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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