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규 전 환경부 장관(왼쪽 셋째)이 지난 8월28일 오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청문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400여명의 사망자를 낸 가습기살균제 참사 책임자들의 형사재판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변경됐다. 재판부가 스스로 변경을 요청했는데, ‘불공정 재판이 우려된다’는 피고인들의 잇단 기피신청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2일 서울중앙지법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형사27부(재판장 정계선)에서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로 바뀐다고 밝혔다. 재판부 변경은 정계선 부장판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를 보면, 배당된 사건을 처리하기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어 재판장이 재배당을 요구할 경우 사건배당 주관자인 법원장이 사무분담을 변경할 수 있다. 정 부장판사가 재판부 재배당을 요청한 것은 피고인들이 연달아 기피 신청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 부장판사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비상임위원인 황필규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와 부부 사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 피고인들의 기피 신청이 잇따랐다.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와 홍지호 전 에스케이(SK)케미칼 대표는 이달 1일과 10일 ‘재판부가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으니 재판부를 바꿔달라’며 기피 신청을 법원에 냈다. 관련 피고인 13명 중 7명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참위는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된 국가기구다. 사참위는 지난 8월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재판부가 바뀌면서 재판 지연도 불가피해 보인다. 홍지호 전 대표와 안용찬 전 대표 등 가습기살균제 사태 책임자 34명은 지난 7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에스케이케미칼과 애경, 이마트, 지에스(GS)리테일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업체 임직원들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원료로 만든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제조·유통해 인명 피해를 낸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를 받고 있다. 두 원료는 유해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16년 가습기살균제 수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