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관악구 인헌고 앞에서 열린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의 기자회견에서 대변인 최아무개(18·마이크 든 이)군이 발언하고 있다.
23일 오후 4시30분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정문 앞. 이 학교 3학년 최아무개(18)군과 김아무개(18)군이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학수연)이라는 단체 이름을 내걸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인헌고에서 현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며 “학생들은 정치적 노리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부 교사들의 ‘사상 독재’ 사례를 공개했다.
최군은 지난 17일 열린 교내 마라톤 행사에서 “일부 교사가 1주일 전부터 학생들에게 반일 문구가 적힌 선언문을 적으라고 지시했다. 마라톤 행사 때는 ‘일본 경제침략 반대한다. 자민당 아베 망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도록 시켰다”며 “정치적 선언문을 몸에 붙이지 않은 사람은 결승선에 못 들어오게 했다”고 주장했다. 최군은 이어 “한 교사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를 두고 ‘검찰이 악의적으로 조 전 장관을 사퇴시켰다’는 뉘앙스로 얘기했다”며 “다른 의견을 제시한 학생에게 가짜뉴스 믿으면 ‘개돼지’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학생에게 “일베 아니냐”고 말한 교사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한겨레>가 현장에서 만난 인헌고 학생들 다수는 최군과 김군의 주장이 다소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의견을 물은 16명 가운데 15명이 학수연의 주장에 고개를 저었다. 실제 학생 10여명은 최군의 기자회견 발언 중간중간 “엥? 아닌데?”, “거짓말로 사례 모은 거잖아”, “허언증이다”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자 ‘좌파교육 철폐하라. 전교조를 해체하라’는 손팻말을 든 보수단체 회원 50여명이 이 학생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너희가 세뇌됐다. 정신 차려라”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 학교 2학년 정아무개(17)군은 “교내 마라톤 때 정치적 선언문을 몸에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승점 통과를 불허한 사실도, 감점되는 일도 없었다. 교사가 특정 선언문을 몸에 붙이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3학년 이아무개(18)군은 “사상 독재 이런 건 없다. 선생님이 양쪽으로 나눠서 의견을 듣는다”며 “오늘도 학수연 활동하는 학생이 대들어서 선생님이 울기도 했다. 실제로 학수연 활동하는 학생은 10명 정도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2학년 학생은 “조 전 장관 관련 발언은 미디어비평 수업 때 선생님이 했던 말씀인데, 최군이 주장하듯 말한 게 아니라 조 전 장관 사퇴와 관련한 뉴스 영상을 틀고 언론에서 하는 말을 비평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한 교사가 학생에게 “일베 아니냐”고 발언한 건 사실이었다고 한다. 해당 발언을 한 교사와 학생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수업시간에 맨날 잠을 자는 학생에게 교사가 “왜 맨날 자느냐”고 묻자 이 학생이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주말에 알바한다”고 답했다. 이에 교사가 “알바하면 피곤하지. 그런데 형편 어려우면 장학금도 있으니 알아보면 좋겠다”고 말하자 학생은 “알바만 해서 피곤한 게 아니라 학원 가서 피곤하다”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교사가 “너 거짓말이지?”라고 말하니 학생은 “제가 왜 거짓말을 해요. 조국이 거짓말쟁이지”라고 해서 교사가 “너 일베니?”라고 말했다. 또 다른 2학년 학생은 “수업시간에 교사가 학생한테 ‘일베’ 발언한 게 적절하지는 않다. 하지만 일부 선생님 문제를 왜 학교 전체 문제로 확대하는지 모르겠다”며 “애초 최군의 생각에 동조했던 이들이 100명가량 됐는데, 자꾸 사실을 왜곡하니 이제는 정말 소수만 남았다. 비율만 따지면 1:9 정도”라고 말했다. ‘일베’ 발언을 한 교사는 “이후에 해당 학생이 최군과 함께 교무실에 찾아와 항의를 해서 ‘용서를 빈다’고 사과하고 그 다음 날 교실에 가서도 전체 학생들에게 사과했다”고 말했다.
최군 등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인헌고 앞에서 ‘전교조 해체’ 등의 내용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최군 등이 학교 쪽에 문제를 제기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군 등은 지난 3월 페미니즘 운동에 이견을 내는 ‘인헌고 성평화 자율동아리 왈리(WALIH)’를 만들었다. 하지만 복수의 교사들 설명을 종합하면, 왈리는 ‘가부장제가 맞다’, ‘페미니즘은 틀리다’ 등과 같은 주장을 폈고, 동성애자 등 소수자나 난민에 대해 혐오적인 관점을 주장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동아리 담당 교사는 최군 등이 주장하는 ‘성평화’가 ‘성평등’과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로 담당 교사직을 그만뒀다. 이후 학교 쪽은 담당 교사 없이 동아리를 운영할 수 없도록 한 교육부 지침 등을 근거로 동아리 폐쇄를 통보했다. 그러자 최군은 페이스북을 통해 “페미니스트 선생님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양성평등의 가치를 훼손하고 성차별적인 집단’으로 낙인 찍히며 동아리 강제 폐쇄 통보”를 당했다며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성담론은 학생들이 다룰 수 없게 사상 독재를 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한 3학년 학생은 “최군은 여성혐오적 발언이 강한 사람이고, 2학년 때 성매매 여성에 대해 혐오 발언을 하고 특정 행동을 하며 여성 선생님과 학생들을 조롱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군은 기자회견 마지막 즈음에 “저희에게 정치적 색깔을 입히는 행위는 지양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과 동작관악교육지원청은 이날 인헌고를 상대로 특별장학에 나서 전체 학생들을 상대로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시교육청은 특별장학 결과를 토대로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경우 감사로 전환할 계획이다.
글·사진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