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첩보’ 제공자로 지목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 연합뉴스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의 결론은 어떻게 될까. 송병기 울산 경제부시장이 2017년 10월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제보하고, 울산지방경찰청이 경찰청을 거쳐 이 첩보를 받아 수사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를 ‘하명인지 아닌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두 가지 결론을 모두 암시하는 단서들은 곳곳에 존재 한다. 이와 별개로 ‘고래고기 사건’으로 촉발된 검경갈등은 ‘하명수사 의혹’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짙어지게 만드는 요소
송병기, 청와대 제보 때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 선거 도와
청와대가 송 부시장으로부터 제보를 받을 2017년 10월께 송 부시장이 이미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철호 울산시장 쪽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알고 있었는지가 하명수사 여부를 가르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송 부시장이 선거를 위해 송 시장의 경쟁자인 김 전 시장에게 불리한 제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청와대가 경찰에 첩보를 이첩해 수사에 착수했다면, 청와대 역시 경찰 수사의 의도와 목적을 송 부시장과 함께 공유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김 전 시장 쪽은 2015년 7월 울산시 교통건설국장을 퇴직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울산발전연구원 공공투자센터장으로 발령이 났을 때부터 송 부시장이 송 시장 쪽과 가까웠다고 주장한다. 울산지역 자유한국당 고위 관계자는 “송 부시장은 송 시장 선거 캠프의 최고 기여자”라고 주장하며 “김 전 시장과는 울산발전연구원 발령 이후 이미 가깝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말했다.
송병기, 청와대 요청으로 첩보 제공했나
김 전 시장과 측근 비리에 대해 알고 있었던 송 부시장에게 청와대 쪽에서 정보를 알려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송 부시장은 제보자로 지목된 지난 4일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2017년 9~10월께 청와대 문아무개 전 행정관이 전화를 해 답을 해줬다”라며 청와대가 먼저 자신에게 울산 지역의 정보를 요청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5일 기자회견에서는 “문 전 행정관과 통화를 하다가 언론과 시중에 떠도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말을 흐렸다.
송 부시장이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이 특정 레미콘 업체에 물량을 부당하게 챙겨줬다는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1월과 3월 경찰 조사를 받았을 때 “누구에게 들었다”며 ‘전언’ 위주의 진술을 한 정황도 청와대의 역할을 크게 볼 수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송 부시장은 당시 경찰조사에서 가명을 사용했고 소극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부시장이 청와대에 제보를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면 수사가 빠르게 진척되도록 비위 혐의에 대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진술했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선거 전 청와대 행정관 만난 송병기
송 부시장이 제보한 뒤 약 3개월 뒤에 청와대 관계자를 만난 점도 의혹을 키우는 단서다. 그는 송철호 현 울산시장 등과 함께 지난해 1월 청와대 앞 식당에서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현 자치발전비서관실) 행정관을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공공병원 사업'에 관해 논의했다. 이후 송 시장의 선거캠프에선 '울산 공공병원 건립' 공약이 만들어졌다. 올해 1월 울산시는 공공병원을 유치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를 두고 청와대의 ‘울산 선거 지원’ 논란이 제기됐다.
청와대는 “자치발전비서관실 행정관이 대통령의 지역 공약사항을 설명하는 일은 본연의 업무”라며 “울산 공공병원 건립 추진은 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고, 지역에서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안”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송 부시장 쪽 변호인은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옅어지게 만드는 요소
사전에 제기됐던 민원과 제보
‘하명수사 의혹’에서 등장한 김기현 전 시장 관련 내용 일부는 이미 민원·제보·진정·고발 형태로 제기되던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송 부시장이 정리한 ‘첩보’가 의미가 컸는지 의문이 나온다. 김 전 시장 동생에게 이권을 부탁하고 ‘30억원의 용역계약서’ 약정을 맺었다고 주장하는 김아무개 ㅅ건설사 대표는 실제로 민원을 해마다 꾸준히 제기해왔다. 그는 ‘용역계약서’ 사건에 대해 “2016년 검찰에도 진정했다”고 말했다.
’하명수사’라기에는 경찰 수사 흐름 의문
‘청와대 하명수사’라고 보기에는 경찰의 수사 흐름에도 의문부호가 달린다. 김 전 시장 비위가 담긴 첩보를 청와대로부터 이첩 받은 경찰청이 울산경찰청에 이를 내려 보내기까지 한달의 시간이 걸린다. 청와대에서 경찰청으로 문건이 전달된 시기는 2017년 11월이고, 울산경찰청에 이첩된 것은 그해 12월29일이다.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의 하명'이었다면 속도가 더 빨랐을 것”이라고 했다.
또 애초 경찰이 ‘청와대 최초 제보자’를 알고 수사를 진행했다는 언론 보도와 의혹제기도 경찰 수사 흐름상 의문이 나온다. 통상 첩보 사건의 경우 제보자를 가장 먼저 불러 사건의 얼개를 파악한다. 하지만 울산 경찰은 송 부시장 조사 전인 지난해 1월께 건설사 현장소장, 레미콘업체 관계자들을 먼저 불러 조사했다. 경찰은 그 이후 시점에 송 부시장을 불러 울산시 고위 공무원이 레미콘 업체 특혜에 관여했는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송 부시장은 당시만 해도 의미있는 인물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에서 이첩된 제보 문건은 김 전 시장에 대한 여러가지 비위 문제가 담겼다. 이 중 한 건만 수사된 점도 ‘하명 수사’ 논리의 구멍이다. 또 경찰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지난해 6월 지방선거 국면에서 소환조사 하지 않았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하명 수사 의혹’에 반대되는 정황이다.
검경 주장 엇갈리는 ‘가명조서‘ 시각차
검경은 송 부시장의 ‘가명조서’를 두고는 팽팽한 주장을 하고 있다. 송 부시장은 ‘레미콘 특혜’ 관련 지난해 3월 가명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를 두고 검찰은 “경찰이 청와대 제보자 송 부시장 이름을 조서에서 감췄다”고 의심한다. 검찰 관계자는 “‘가명조서’ 속 인물을 송치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며 ‘가명조서’가 ‘레미콘 특혜’ 사건 압수수색 영장 신청에 활용된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다르다. 경찰은 1월에는 송 부시장의 이름을 수사보고서에 기재했고, 3월 송 부시장 진술조서에 대해서는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며 ‘신원관리카드’를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카드에는 송 부시장의 실명이 담겼다. 수사실무에서 검경이 어차피 가명조서 속 인물을 공유하기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경찰이 송치 전에 ’송병기 가명조서’를 근거로 추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 검찰이 조서 속 실명을 모른 채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고 맞선다.
‘하명 수사’ 논란 전반을 지배한 고래고기 검경 갈등
‘고래고기 사건’은 얼핏 ‘하명수사 의혹’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이로 인해 촉발된 검경갈등은 ‘하명 수사 의혹’ 국면의 전반을 지배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래고기 사건은 2016년 4월 울산경찰이 불법포획 증거물로 압수한 고래고기 상당량(27톤 중 21톤)을 울산지검이 피의자에게 되돌려준 일이다. 경찰이 이듬해 9월 담당 검사와 유통업자를 변론한 검찰 출신 변호사 등을 수사하며 검경 갈등으로 비화했다. 지역에서 근무했던 검찰과 경찰 관계자는 “고래고기 사건으로 경찰이 검찰에 대해 수사를 벌이면서 검경갈등이 커졌다”면서 “하명수사’논란도 분명 검경갈등과 관련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기현 측근 레미콘 특혜’ 사건에서도 검경갈등 구도는 드러난다. 울산경찰은 레미콘업체 대표와 비서실장, 울산시 국장 등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올해 “범죄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며 불기소했다.
울산/박준용,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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