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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019년 마음 한 장] 나와 매미소리

등록 2019-12-28 09:00수정 2019-12-29 19:44

⑦ 김봉규 선임기자가 꼽은 2019년 마음 한 장

2019년, 여러분이 웃고 울었던 현장에 <한겨레> 사진기자들도 있었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맨 마지막날까지 그 마음에 남은 사진 한 장들을 모았습니다. 새해에도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을 잇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다짐하며 `2019년 마음 한 장'을 9회에 걸쳐 소개합니다.일곱째는 김봉규 선임기자가 꼽은 사진입니다.

여름을 둘러메고 떠난 매미여! 길길이 바쁜가보다. 비 내리던 이른 아침에도 매미는 세차가 울었다. 갈 길이 멀어서 시간이 촉박한 매미 였을 것이다. 출근길 아파트 길가에 한여름 밤의 향연을 끝내고 짝직기에 기운이 쇄해 나무에서 떨어진 모든 매미들은 하늘로 향해 땅바닥에 누어서 소리도 내지도 못하고 손발만 겨우 미동했다. 가던 길을 돌아서서 안경지갑에 휴지를 깔고 매미 두 마리를 수습해, 바지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우에 올려놓으니 장례를 치루는 기분이 든다. 매미소리 사라지면 귀뚜라미 울음소리 둘리겠구나. 잘가라 매미야! 안녕. 김봉규 선임기자
여름을 둘러메고 떠난 매미여! 길길이 바쁜가보다. 비 내리던 이른 아침에도 매미는 세차가 울었다. 갈 길이 멀어서 시간이 촉박한 매미 였을 것이다. 출근길 아파트 길가에 한여름 밤의 향연을 끝내고 짝직기에 기운이 쇄해 나무에서 떨어진 모든 매미들은 하늘로 향해 땅바닥에 누어서 소리도 내지도 못하고 손발만 겨우 미동했다. 가던 길을 돌아서서 안경지갑에 휴지를 깔고 매미 두 마리를 수습해, 바지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우에 올려놓으니 장례를 치루는 기분이 든다. 매미소리 사라지면 귀뚜라미 울음소리 둘리겠구나. 잘가라 매미야! 안녕. 김봉규 선임기자

학창시절 공부나 해보려고 대전 계룡산의 한 사찰에 머물던 적이 있었다. 사흘이나 지났을까, 동틀 무렵부터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신경이 곤두서서 도저히 책장을 넘길 수 가 없었다. 나흘째 주지스님께 “매미소리에 공부를 할 수 가없어서 하산해야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스님은 “며칠 더 지내면 매미소리가 귀전에 들리지 않을 터이니 좀 더 있어보라”고 하셨다. 그럴 리가 없지만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나흘 더 지냈는데 내 귓가에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그냥 책만 보고 있으면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들리지 않구나 하고 생각하면 곧바로 “맴맴”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의 소리 생활 속의 지속되는 소리는 어느정도 지나면 일상생활에 익숙해지는 현상인 것 같다. 스님 말씀데로 익숙해진 매미소리는 더 이상 책장을 넘기는데 방해 요소가 되지 안했다.

그 뒤 군대에서 소총을 많이 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군에서 사격선수를 선발하는데 선수로 중대·대대·사단·군단 대회를 거쳐서 태능국제사격장에서 전군사격대회까지 출전하게 되었다. 2년 동안 매일 총을 쏘는 일과로 군 생활을 했다. 어떤 날에는 하루 500발 이상을 쏠 때도 있었다. 그 결과로 내 귀에 이명이 생겼다. 꼭 학창시절 암자에서 아침부터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똑같았다. 군 병원을 찾아도, 제대 뒤 일반 병원을 찾아도 고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매미소리는 지금까지도 여름철 매미소리도 아니고, 소총의 총탄소리도 아닌데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여름 비가 내리던 이른 아침 출근길에도 평소처럼 매미가 세차게 울었다. 매미소리와 귀전에 ‘이명’으로 인한 매미소리와 비슷한 헤르츠의 소리가 중첩되고 증폭되어서 머릿속은 현기증까지 느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는 갈 길이 멀어서 시간이 촉박한 매미들의 가엾은 울부짖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출근길 아파트 길가에 한여름 밤의 향연을 끝내고 짝짓기에 기운이 쇠해 나무에서 떨어진 매미들은 하늘을 향한 채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소리는 내지도 못하고 손발만 겨우 미동했다.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 숨 죽어가는 생명을 보면서 출근 시간은 촉박했고, 매미소리에 신경은 날카로웠지만 지나칠 수 가 없었다. 돋보기 안경집에 휴지를 깔고 매미 두 마리를 수습해 바지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 위에 올려놓으니 한 때 정열적으로 가열차게 살았던 한 생명의 초라하지만 소박한 장례를 치르는 기분이 들었다.

매미 소리 사라지면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리겠구나. `잘 가라 매미야! 안녕'하면서, 한 프레임에 담아, 지난 8월 13일자 <포토에세이>에 게재했다.

지금도 매미소리는 내 귓전에 올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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