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30일 선거제도 개혁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오른 직후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장 밖에 드러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법원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으로 약식기소된 자유한국당 의원 10명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1명 등 국회의원 11명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검찰이 이 사건에 가담한 정도가 약하다고 판단한 의원들에 대해 법원이 법정에서 제대로 책임 관계를 따져보겠다고 나선 셈이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14일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곽상도·김선동·장제원·이장우 등 자유한국당 의원 10명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공동폭행 등 혐의를 받는 박주민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명을 정식 공판에 회부했다고 16일 밝혔다. 서울남부지법 관계자는 “약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상당하지 않다고 판단해 재판장이 공판으로 회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식기소는 법원이 서류만 검토해 벌금을 물리거나 과태료 등을 부과하지만, 정식재판은 재판부가 정해진 범위에서 자유롭게 형량을 정한다.
이로써 자유한국당 의원 10명은 앞서 국회법 위반 혐의 등으로 이미 정식재판에 회부된 같은 당 이은재·정갑윤·이만희 의원 등과 함께 형사11부(재판장 이환승)의 재판을 받게 됐고, 박주민 의원 또한 자유한국당 당직자 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범계·표창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4명과 함께 형사12부(재판장 신혁재)의 재판을 받게 됐다.
보통 법원이 약식기소 사건을 정식재판으로 넘기는 이유는 △피고인이 법원에 요청하거나 △무죄 가능성이 큰 경우 △약식에서 나올 벌금형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할 때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번 사건은 법원이 약식기소된 의원들도 불구속 기소된 의원들과 똑같이 정식재판에 세워 유무죄를 가리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이 패스트트랙 사건을 약식기소와 정식기소로 나눴지만, 법원은 같은 사건의 당사자들로 보고 함께 법정에 세워 책임 관계를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라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이런 사례들이 있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그렇게 간단히 볼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검찰의 수사 결과만 보고 도장을 찍는 게 아니라 법정에서 얘기를 듣고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지난 2일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과 홍철호 의원에게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 형(국회선진화법 위반)을 구형하고, 나머지 의원 8명에게도 벌금 100만∼300만원을 각각 구형하면서도 정작 약식기소를 선택했을 때부터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은 이들의 행위가 불구속 기소된 의원들에 견줘 “유형력(물리적인 힘) 정도가 중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실상 당선무효형인데 약식기소한 것, 그게 검찰의 힘”이라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검찰이 가담의 정도가 다르다는 논리로 약식기소를 할 수는 있지만, 당선무효형을 약식기소한 건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법원의 이번 결정이 약식기소됐던 의원들에게 유리한 상황만은 아니게 됐다. 검찰은 이에 대해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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