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3회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를 이 부회장 양형에 고려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현직 판사가 법원 내부망에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에 우려를 표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7일 재판 때 “불공평한 재판”이라고 반발한 국정농단 특별검사팀과 검찰이 재판부에 대한 기피 신청을 낼 가능성도 점쳐진다.
20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설민수(51)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는 이 부회장의 네번째 공판이 열린 지난 17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정준영 부장판사님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언론이 보도하는 삼성 준법감시위가 미국의 연방양형기준에 나오는 컴플라이언스 제도와는 거리가 있고, 굳이 찾자면 “미국의 독립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와 기능상으로 제일 가까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세가지 이유를 들어 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설 부장판사는 “준법감시위가 내부 정보에 관해 어느 정도의 접근성을 가질지, 회사에 대한 비밀 유지 등에 관해 얼마나 자유로울지 등에 관해 정해진 것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면면이라도 실제 효과는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대표 기업사기 사건인 엔론사를 예로 들며 “(엔론사의 이사진 또한) 사회적 다양성, 지명도 등에서 최강의 인물로 구성돼 있었다. 그래도 대규모 회계부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내부고발자가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설 부장판사는 “규모가 크고 잘나가는 회사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외이사가 이를 반대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례는 미국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배주주는 원숭이 무리 속에 있는 800파운드짜리 거대 고릴라”라며 “그의 모든 행동을 의심해서 볼 수밖에 없고 지배구조에 관한 독립이사나 어떤 보호 장치로도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지적했다. 삼성의 지배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의 존재가 워낙 막강해 어떤 장치로도 견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설 부장판사는 “제가 아는 정준영 부장판사님은 외국 제도를 한국의 척박한 현실에 적용해 제도화하려고 노력하셨다. 준법감시위도 재판과 관련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설 부장판사는 1999년 대전지법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해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을 거쳐 현재 서울남부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실효성과 별개로 준법감시위를 양형 기준으로 고려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어 “우리 법원이 인정하고 있지 않은 양형 사유를 미국 사례에서 찾아 들이미는 재판부의 주장은 상식 밖”이라며 “재판부가 인용한 미국 연방법원의 ‘내부 통제시스템 구축 조항’은 이 부회장처럼 개인 범죄자가 아닌 주식회사와 같은 법인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공소 유지를 맡는 국정농단 특검과 검찰이 재판부에 대한 기피 신청을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형사소송법(18조)상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거나 피고인 또는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때 검사는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 해당 재판부에 기피 신청을 내면, 같은 법원 다른 재판부가 기피 신청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기각이나 인용 결정을 내리게 된다.
앞서, 특검과 검찰은 지난 17일 공판에서 준법감시위를 점검할 전문심리위원단 구성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당시 특검은 “(재판부가) 승계 작업 개별 현안은 양형 사유가 아니라고 보면서, 준법감시위는 양형 사유로 보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재판이 불공평하게 진행되는 것 아닌가에 대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고한솔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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