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드루킹 사건’ 1심 선고일이었던 지난해 1월30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댓글조작 사건을 심리하는 항소심 재판부가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 프로그램’ 시연회에 김 지사가 참석한 사실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앞으로 둘 사이의 ‘공모 관계’를 확인하는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과 공동정범으로 묶일 수 있는지에 따라 항소심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애초 이날 선고 공판을 열기로 했으나 전날 이를 취소하고 재판을 재개했다.
21일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차문호)는 재판부 직권으로 김 지사의 항소심 공판 변론 기일을 다시 열어 특검과 변호인 쪽에 추가 심리 계획을 밝혔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댓글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했다는 특검 쪽 주장을 ‘잠정’ 인정하면서 “기록에 나타난 증거와 특검 및 김 지사의 주장으로는 김 지사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 유죄로 인정될 경우 관여 정도, 불법성 및 책임의 정도, 공직선거법위반죄 성립 여부 등의 최종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부인했던 킹크랩 시연 여부 심리에 집중해 추가 쟁점을 판단할 수 없었다며 양쪽에 8가지 사안에 대한 증거 및 의견을 요청했다.
선고 기일을 정한 뒤에도 변론을 재개하는 경우는 많지만 재판부가 핵심 혐의에 대한 심증을 일부 드러내면서 추가 심리 계획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김 지사의 킹크랩 시연회 참여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김씨와의 공모관계가 분명히 입증되는지에 따라 유·무죄 및 양형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날 김 지사와 김씨의 공모 관계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춰 특검과 김 지사 쪽에 입증을 요구했다. △김 지사의 킹크랩 활용 동의 여부 △김 지사와 김씨의 관계 △김 지사의 댓글작업 관여 정도 등이다. 재판부는 “킹크랩 시연회 참여는 더이상 주요 심리대상이 아니다. 킹크랩 시연 후 김 지사의 태도와 대선 과정에서 김 지사의 역할에 대해 신경써서 입증해 달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경선과 19대 대선 과정에서 맡은 역할 및 온라인 여론 형성과의 관련성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자의 여론형성을 위한 온라인 조직 등이 무엇인지에 관한 설명도 요청했다. 댓글조작을 통해 대선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김 지사가 맡은 역할의 성격을 밝혀야 한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더불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업체들이 비정상적 이용을 차단하기 위해 투입한 노력과 비용이 얼마인지도 물었다.
재판부 결정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재판부가 김 지사의 ‘유죄’를 염두에 두고 그 근거를 보강하기 위해 변론을 재개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김 지사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 근거였던 킹크랩 시연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인정한 이상, 보다 확실히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근거를 수집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부가 유죄 심증을 가졌음에도 추가 심리를 통해 변호인에게 소명 기회를 주기 위한 변론 재개로 보인다”고도 했다.
반면 재판부가 킹크랩 시연은 제쳐놓고 드루킹과의 공모관계 성립 여부에 대한 추가 입증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김 지사 쪽에 유리한 상황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드루킹의 불법행위에 대한 김 지사의 ‘승인’이 있었는지 특검이 밝혀야 유죄 입증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앞서 1심은 2016년 11월9일 김 지사가 킹크랩 프로그램 시연을 봤고, 김씨가 보낸 보고용 메시지를 되묻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김 지사와 김씨의 공모관계를 인정했다. 또 김 지사와 김씨가 단순히 정치인과 지지세력의 관계를 넘어, 더불어민주당 정권 창출 및 유지를 목적으로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특별한 협력관계'라고 판단했다.
김 지사 쪽 변호인은 “의외의 변론 재개 사유에 당혹스럽다”며 “킹크랩 시연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관해 진전된 자료나 의견으로 재판부에 설명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3월10일 다시 변론 기일을 열기로 했다. 특검과 변호인의 증거 제출 및 공방을 고려하면 선고는 4·15총선 이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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