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재판장 정준영)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뒤,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 ‘재판부가 한국 사법체계에 근거가 없는 미국의 양형 요소를 들여오면서, 그나마도 틀리게 들여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 경제개혁연대, 민변, 참여연대 등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 서울변호사회 회관에서 ‘삼성공화국으로의 회귀, 재판부와 검찰인사는 어떻게 이재용을 구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긴급간담회를 열었다. 앞서 지난 17일 열린 이 부회장의 4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점검할 ‘전문심리위원단’을 꾸리는 등, 준법감시위를 양형 사유로 삼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바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한국의 사법체계에는 없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끌어들이는 게 법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적용마저 잘못되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종보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재판부가 참고하라고 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의 제8장은 제목부터가 ‘조직에 대한 선고’”라며 “이 사건의 피고인은 이재용 부회장 개인인데, 회사를 처벌할 때 적용하는 양형기준을 개인에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준법감시위와 같은 ‘내부통제장치’가 기업범죄를 감소시키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재판부의 판단이 통계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는 “1996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대기업에서 발생한 216건의 기업범죄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준법감시위와 같은 내부 감시기구가 적발한 사건 수는 30%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과 같은 범죄에 보통 약물중독과 같은 범죄에 쓰이는 ‘치료적 사법’의 개념을 적용하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종보 변호사는 “치료적 사법은 아동학대, 약물중독, 성범죄 등 범죄자를 치료해 재사회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권력형 범죄자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응징’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전문심리위원’을 법에 규정된 취지와 달리 임의로 활용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박영수 특검팀에서 선임특별수사관으로 참여했던 전종권 변호사는 “전문심리위원은 법원이 건축·의료 등 전문적인 분야의 사건을 심리할 때 전문가를 지정해 소송절차에 참여하게 하는 제도”라며 “재판부가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하려는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도 판사이고, 지금 재판부도 판사인데 왜 전문심리위원이 필요한가. 결국 준법감시위를 양형 사유로 반영하기 위한 요식행위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23일로 예정된 법무부의 검찰 중간간부·평검사 인사를 두고, 기존에 1년 넘게 수사를 진행해온 삼성 수사팀이 해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간담회를 진행한 채이배 의원은 “수사팀이 해체되거나 조정된다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문재인 정부 검찰인사의 최종 수혜자는 이재용 부회장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한겨레> 논설위원은 “삼성이 ‘삼성공화국’이 아닌 ‘정상기업’으로 돌아오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인사가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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