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79) 부영그룹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가 ‘준법감시실 설치’를 이 회장의 형량을 정하는 데 반영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형량을 1심 5년에서 2년6개월로 줄였다. 해당 재판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도 맡아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권고하고 양형 사유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22일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횡령) 등으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6개월,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보석을 취소하고 그를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준법감시실을 설치한 사실을 양형에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부영그룹은 최고경영진이 그들의 사적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상대로 횡령·배임을 저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018년 5월 준법감시실을 신설했다”며 “2020년 1월에는 준법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외부인과 위임 계약을 체결하는 등 준법 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범행으로 인한 피해 규모와 범죄 전력 등을 종합했을 때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이 회장의 보석을 취소하고 법정구속했다. 앞서 1심 재판부도 이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지만 “방어권 행사 기회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구속기소된 상태에서 2018년 7월 건강상 이유로 보석으로 풀려난 뒤 불구속 재판을 받았다.
이 회장은 서민 임대아파트 분양 전환 과정에서 분양 전환가를 부풀려 부당이득을 취하는 등 4300억원대의 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이날 1심과 다르게 계열사에 5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고, 아들이 운영하던 영화제작 업체에 회사 자금 45억여원을 빌려준 혐의는 “영화 흥행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 검토 없이 금액을 대여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이번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도 맡고 있어, 이 회장 사례가 이 부회장 사건의 ‘예고편’이 될지 법조계의 관심이 쏠린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에 경영진의 불법행위를 감시할 준법감시위원회 설치 및 실효적 운영을 권고했고, 지난 17일 이를 양형에 고려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43명은 이를 ‘사법거래’ ‘노골적 봐주기 재판’이라고 비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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