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탑골공원 인근.
경남의 한 요양병원에 80대 할머니를 둔 ㅇ(37)씨는 지난 3일 요양병원이 면회객 출입을 전면 통제한 뒤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조처였다. 할머니에게서 “배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도, ㅇ씨의 가족은 간호사실에 “잘 부탁한다”고 당부하는 선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 ㅇ씨는 24일 <한겨레>에 “병원에 찾아갈 수 없어서 속상하다. 이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온 터에, 가리개도 없이 좁은 병실에 8명이 모여 있는 상황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의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모신 ㄱ씨도 비슷한 처지다. ㄱ씨는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된 뒤 아버지가 ‘간병인들이 기저귀를 못 갈아준다며 아랫도리에 비닐을 채웠다. 빨리 와달라’고 연락해 왔지만 병원에선 지금 간병인을 구하기 힘드니 클레임(불편 신고)을 걸지 말라고 하더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당장 건강이 안 좋은 고령의 부모를 ‘코로나19 대란’ 속에 집으로 모셔와 간병하는 것도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ㅇ씨나 ㄱ씨나 속수무책이다.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일부 지역에선 재가요양보호사를 부르기도 쉽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된데다 최근 급격히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이처럼 노인, 장애인, 빈곤계층 등 가장 취약한 이들의 안전망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봉사나 무료급식 등 지원의 손길이 끊긴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들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고립되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쪽방촌상담소 5곳은 샤워실 등 편의시설은 계속해서 제공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다수가 모이는 한방 의료봉사, 무료진료 등을 지난달부터 취소했다. 매달 요양원 등 5군데에 미용봉사를 다녔다는 한 봉사자는 “1월에 이어 이번달도 취소 문자를 받았다”며 “외출이 힘든 요양원이나 병원은 (환자들이) 날씨가 추워 가뜩이나 씻기 힘들 텐데 어떻게 견딜지 걱정된다”고 했다.
24일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에서 200인분의 주먹밥을 나눠주고 남은 밥통.
이날 정오께 <한겨레>가 서울 종로구 낙원동 탑골공원을 찾았을 때 인근에선 노인 30여명이 마스크를 쓴 채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는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급식은 중단했지만 200인분의 주먹밥과 계란을 나눠주고 있다. 다른 민간 급식소들이 여럿 문을 닫은 탓에 많은 이들이 원각사 급식소를 찾아 주먹밥마저 금세 동이 났다. 겹겹이 옷을 껴입고 캐리어를 손에 쥔 ㅈ씨는 주먹밥을 받지 못해 10여분 동안 거리를 서성이다 결국 발길을 돌리며 말했다. “게으르면 밥도 못 얻어먹어.” 또 다른 노인도 “코로나인지 뭔지 때문에 이게 뭐냐”고 푸념하다 발길을 돌렸다.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도 곤란을 겪고 있다. 당뇨를 앓고 있다는 한 누리꾼(@jy2777)은 “약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니던 병원이 폐쇄조치됐다. 전에 받은 처방전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정부가 전화 상담 및 처방, 대리 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했지만 대한의사협회는 반대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발달장애 등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장애를 가진 이들도 치료가 중단돼 발을 구르고 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이는 카페에는 “코로나로 그룹 수업이 종결됐는데 치료 시기를 놓칠까 봐 겁이 난다” “한달 다니고 라포르(신뢰)가 형성되려고 하는데 치료 프로그램이 중단됐다”는 한숨 섞인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글·사진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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