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노숙인 시설 국가인권위 진정 및 긴급구제 요청 기자회견 모습. 배지현 기자
경기도 수원의 한 노숙인자활시설에서 생활하던 ㄱ씨는 지난달 24일 시설로부터 “외출을 금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시설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비정규직 택배 일을 시작한 ㄱ씨에게 “(수원)시청이 (코로나19 예방조처로) 외출 자체를 금지했으니 일을 계속 다니려면 시설에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일을 그만둘 수 없던 ㄱ씨는 시설에서 쫓기듯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갑자기 코로나19 때문에 나가라고 하는데 이게 맞는 건지, 아무 대책이 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ㄱ씨는 9일 해당 시설의 인권침해 행위를 중지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냈다. 이 노숙인자활시설은 지난달 24일 다른 입소자들에게도 “내일부터 출근할 분들은 출근불가 가능한지 여부를 상의한 뒤 출근해야 하는 경우 별도의 연락이 있을 때까지 시설 출입은 불가능하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출입구에는 “‘코로나19에 대한 비상공지’라며 정부의 공식 입장이 있을 때까지 직장생활인의 시설 출입을 금지한다”고 써서 붙여놨다. 결국 ㄱ씨처럼 일을 한다는 이유로 시설 출입이 금지된 입소자 2명은 물류센터 일을 하며 인근 여인숙에 거주하고 있다.
지난 24일 경기도 수원의 한 노숙인자활시설에 붙은 ‘코로나19 비상공지’. ㄱ씨 제공.
진정을 추진한 홈리스행동 등은 이날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예방을 빌미로 입소인의 주거와 노동권리를 침해하는 반인권적인 조처”라며 “시설에 남아있는 10여명의 다른 입소인들에게도 선택을 강제하는 폭력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이런 방침은 철회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5일 기준으로 시설에 남아있는 입소자는 13명으로 대다수가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이다. 노숙인자활시설은 노숙인의 자립을 위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노숙인복지법 21조에 따라 노숙인을 정당한 사유 없이 시설에서 퇴소시킬 수 없다.
진정서를 제출한 장서연 변호사는 “ㄱ씨가 주거비를 스스로 부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설 쪽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홈리스들이) 코로나 대응이라는 명분 하에 주거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인권을 침해당해 더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강조했다. 홈리스행동 등은 “수원시와 보건복지부는 코로나를 명분으로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홈리스들에게 적절한 주거지원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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