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두달] ②유행 길어지며 중요성 커진 ‘심리방역’
확진 발생 뒤 전국 심리상담 5만6천여건
가장 많은 질문 5개의 전문가 조언 보니
확진 발생 뒤 전국 심리상담 5만6천여건
가장 많은 질문 5개의 전문가 조언 보니
서울에 사는 20대 ㄱ씨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평소 즐기던 동호회, 모임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운영 중이던 가게 매출마저 줄어들자 스트레스가 심해져 숨가쁨, 어지러움, 두근거림 등과 함께 극심한 불안에 휩싸이는 공황발작 증상이 나타났다. ㄱ씨를 진료한 살림의원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불안이 크면 몸에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고, 이런 변화가 다시 불안을 증폭시켜 공황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약 처방과 더불어 일상에서 몸을 이완시킬 수 있는 심호흡과 스트레칭, 가게에만 있기보단 산책 활동을 권유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불안과 답답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20일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1월29일부터 이달 18일 오전 9시까지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이 전국에서 진행한 심리상담은 5만6869건에 이른다. 확진자와 가족 8183건, 격리자나 시민 상담이 4만8686건이다. 감염에 대한 공포, 건강과 대인관계 악화, 경제적인 어려움 등 복합적인 문제가 닥치는 재난 상황인 만큼 마음의 고통을 최소화할 ‘심리 방역’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상담 요청이 가장 많았던 고민 다섯가지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정리했다.
■ ‘내가 옮겼을까’ 죄책감
확진자들은 병을 옮겼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①나 때문에 가족이 격리되고 직장에도 피해를 주었다’는 자책에,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토닥였다. “나쁜 마음을 먹고 의도적으로 병에 걸린 사람은 없지 않나. 병에 걸린 사람은 누구나 다 피해자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다 보니 무언가를 믿거나 확신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②완치됐다고 하지만 자신이 없다. 재발 사례도 있다는데 나도 모르게 옮기면 어떡하나’ 같은 불안이 큰 까닭이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재발 사례는 환자 면역력이 매우 약해 바이러스가 다시 증식된 예외적인 경우”라며 “공신력 있는 기관이 확인한 사실을 믿어야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다”고 조언했다.
병으로 인해 고립되거나 낙인이 찍힌 경우엔 마음의 고통이 더욱 깊다. ‘③직장과 동네에 소문이 파다하다. 사람들이 내가 병을 퍼뜨렸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다’는 호소에 심민영 부장은 “우선 건강 회복에만 집중하자”고 다독인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인가. 이번 기회에 누가 좋은 사람인지, 친하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기도 한다.”
■ ‘도대체 언제까지?’ 답답함
혹시나 감염된 건 아닌지, 잔기침에도 신경이 곤두서거나 초조함에 짓눌리는 사람들이 많다. ‘④열감이 느껴지고 목이 따끔거린다. 불안을 떨칠 수 없어 온종일 코로나19 뉴스만 찾아보게 된다’는 고민이 대표적이다. 정신적 불안이 너무 심하면 되레 몸이 아플 수도 있다. 계속 정보를 찾기보단, 숨을 크게 내쉬거나 복식호흡을 하는 것이 진정에 도움이 된다.
‘⑤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너무 답답하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한탄도 나온다. 심민영 부장은 “이제 이러한 상황을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집에 있는 김에 손 닿지 않은 구석구석을 청소한다거나, 소원했던 지인에게 안부 묻기, 계단 오르내리기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소희 과장은 “사람에겐 위기 극복을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타주의”라며 “다른 사람을 돕는 과정에서 우울함이 치유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앞날을 알 수 없는’ 막막함
최근 직장인 ㄴ씨는 경기도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상담을 요청했다. 이직을 희망한 회사가 코로나19 여파로 채용을 중단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진 탓이다. 앞날에 대한 ‘막막함’은 심리지원을 받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장은 감염병 재난으로 인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취약층에 대한 촘촘한 심리방역망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난 초기엔 갑자기 닥친 위기를 함께 이겨내자는 사회적 결속력이 강해지지만 시간이 흘러 스트레스가 쌓이고 현실이 변하지 않으면 절망이 커질 수 있다”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어디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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