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코로나19 확진자 김숙희(가명·79)씨가 대구시로부터 받은 구호 식량. 김씨는 지난 1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19일 다시 양성판정을 받았다. 김씨 가족 제공.
“이젠 포기 상태입니다. 하늘의 뜻에 맡길 뿐입니다.”
하민구(가명·54)씨의 목소리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씨는 지난 1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어머니 김숙희(가명·79)씨를 23일째 대구에서 혼자 돌보고 있다. 치매까지 앓고 있는 김씨는 입원은커녕 제대로 된 방문진료조차 받지 못한 채 아들에게만 의지하고 있다. 지난 19일 코로나19 재검진을 받았지만 결과는 여전히 양성이다. “지금 이 나라 시스템에 거의 포기 상태입니다. 이젠 병원도 못 믿겠어요.” 하씨는 무거운 한숨을 뱉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치매가 있는 고령의 노인 확진자들은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치매환자라는 이유로 입원이 불가능하고, 관련 지침이 없단 이유로 가족 동반 입원도 거부돼서다. 24일 기준 코로나19로 숨진 환자 124명 중 치매 환자는 34명(27.4%)에 이른다.
김숙희씨 역시 확진 뒤 의료기관에서 단 한 차례도 진료를 받지 못한 채 병세가 악화되고 있다. 장기요양등급 2등급인 그는 혼자선 거동이 어려운 중증 치매환자다. 코로나19 감염 뒤 잦은 기침은 물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고, 설사도 잦아졌다. 입원이 시급하지만 치매 환자라는 이유로 입원은 퇴짜를 맞고 있다. ‘병상이 있다’고 연락해온 국군대구병원은 ‘거동이 불편한 치매 노인은 입원이 안된다’고 했다. 간절한 마음에 하씨가 병원에 함께 있겠다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대구시가 입원 기회를 준 또다른 병원은 대구에서 180㎞ 이상 떨어진 청주의료원이었다. 하씨는 “움직일 수도 없는 어머니를 2시간이나 구급차를 태워 혼자 보낼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대구시 등이 알려온 여섯 차례의 입원 기회는 모두 그렇게 날아갔다.
코로나19와 치매를 동시에 앓고 있는 어머니를 가족들이 집에서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식사부터 대소변 처리까지 어머니 곁에서 떨어질 수 없는 하씨에게 ‘같은 공간 내 2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라’는 코로나19 예방수칙은 무용지물이다. 아들 하씨는 코로나19 확진자의 동거인이어서 자가격리 대상인 데다, 치매가 심한 김씨를 두고 외출을 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일 대구시가 처음 제공한 구호 식량은 군용비상식량 1봉지와 쌀 5㎏, 김 20개, 라면 10개와 참치 3캔, 생수 1.5ℓ가 전부였다. 하씨는 “저희 어머니에겐 저라도 있지만, 치매 노인들이 어떻게 이 식량으로 밥을 해먹으며 버틸 수 있겠냐”고 말했다. 뒤늦게 지난 11일부터 세 끼 밥과 반찬이 제공되고 있지만 전달 시각이 들쭉날쭉해 제때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상태다.
코로나19 확진자 김씨는 중앙방역대책본부 ‘코로나19 대응지침’에 명시된 격리통지서와 손세정제 등 자가격리 키트를 지난 9일이 돼서야 지급받았다. 김씨 가족 제공.
이와 관련해 김신우 대구시 감염병관리지원단장은 <한겨레>에 “보호자나 간병인이 없는 상황에서 간호사가 방호복을 입고 대변을 치워야 하는 상황이다. 가족 동반입원도 지침이 없는 데다 비감염자를 감염자에게 붙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대구·경북 특별관리지역은 요양보호사나 간호조무사를 병원이 원할 경우 환자 수에 맞게 인력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시는 지난 17~21일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69명을 병원에 파견했다.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들에게 가정 내 의료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정진원 중앙대 교수(감염내과)는 “치매 환자들은 증상 호소를 못해서 감염이 심하게 진행된 뒤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통제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엑스레이 검사나 산소 공급 처방 등 최소한의 의료 체계라도 서둘러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치매 환자는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집단이기 때문에 코로나19 발병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치료가 어렵다고 우선순위에서 배제할 것이 아니라 치매 환자에 맞는 돌봄과 치료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권지담 박현정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