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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병원 돌고 도는 ‘회전문 입원’…차별과 폭력도 ‘회전’

등록 2020-03-25 05:01수정 2020-03-25 07:18

[차별금지법은 함께살기법] ③정신장애인 차별
인권위 정신장애인 결정문 분석
2015~19년 229건 분석해보니
88%가 정신병동의 차별·폭력
유형별로 입·퇴원이 가장 많아
CCTV 화장실까지 설치하고
진정서는 사전 검열해 차단
마찰 빚으면 신체 묶고 가둬
정신병동 인권 침해 일상적
한 종합병원의 정신과 병동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한 종합병원의 정신과 병동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정신장애를 가진 ㄱ씨는 2008년 정신병동에 갇혔다. 그는 정신병동에 자의로 입원하지 않았지만 6년 동안 정신병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신보건법에선 환자가 스스로 입원을 원하지 않을 경우 퇴원에 보호의무자의 동의와 전문의 소견이 필요하며 입원기간을 6개월 이내로 제한한다. 입원이 추가로 필요할 경우엔 계속입원 심사를 받아야 한다. 불필요한 장기입원을 막고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조처다. 그런데도 병원은 ㄱ씨의 퇴원 기한이 다가오면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다시 받는 ‘회전문 입원’을 진행했다. 그럴 때마다 ㄱ씨는 병원으로부터 통보받은 것이 없었고, 보호자도 동행하지 않았다. 병원의 목적은 환자 유지였고, 치료는 뒷전이었다. ㄱ씨가 입원한 병원은 2011년부터 5년간 모두 19명의 환자를 회전문 입원을 통해 장기입원시켰다. 이들의 신체의 자유는 편법으로 돌아가는 회전문 안에 장기 감금됐다.

사회에서 격리된 정신장애인들을 보호해야 할 병원은 되레 정신장애인에 대한 폭력과 차별의 ‘주범’이었다. <한겨레>가 2015~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린 정신장애인 관련 결정문 229건을 분석해보니, 이 가운데 202건(88.2%)은 정신병동에서 발생한 차별이나 폭력과 관련이 있었다. 유형별로 보면 부당한 입원·퇴원 관련 결정이 95건으로 가장 많았다.

정신장애를 지닌 ㄴ씨도 퇴원을 바랐지만 폐쇄병동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낸 ㄴ씨는 2009년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 세차례의 계속입원 치료심사에서 “사회의 생활인으로서 (설 수 있도록) 하루빨리 퇴원 수속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가족과의 연락이 끊겨 스스로 병원에 남았지만 그 후에도 4년 동안 그는 “홀로서기”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병원은 “퇴원 이후의 생활 기반이 부족해 노숙생활을 하는 등 상황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며 그의 외침에 응답하지 않았다. 가족이란 울타리 없이 사회에서 기피하는 정신장애인을 내몰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자의로 입원한 환자가 퇴원을 원할 경우 지체 없이 퇴원시켜야 한다는 정신보건법도 ‘정신장애인은 스스로 일어설 수 없다’는 편견 아래선 무기력했다.

정신병동 내에선 지나친 행동 제한으로 장애인들의 일상이 쪼그라들었다. 인권위 진정 가운데 49건은 ‘생활 제약’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행동을 제약하는 정신병동의 방침들은 단순히 치료적 목적이 아니라, 인권을 제한하고 차별을 일상화했다. 진정인 ㄷ씨는 병실과 화장실에 설치된 시시티브이(CCTV) 때문에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수치심을 견뎌야 했다. 진정인 ㄹ씨는 병원 관계자에게 본인이 작성한 인권위 진정서를 사전검열당하고 제출하지 못했다. 진정인 ㅁ씨는 보호관찰 대상자라는 이유로 입원한 1년 반 동안 단 한번도 병동 밖에서 햇빛을 쬐거나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없었다. 사생활의 자유는 사라졌고 진정권은 침해당했으며 행복추구권 실현은 요원했다. 이외에도 부당한 사물함 검사, 변호인의 접견 제한, 과도한 휴대전화 사용 제한 등 일상을 제한하는 차별적인 요소들이 곳곳에서 작동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폭행이나 과도한 가두기, 묶어두기 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인권위에는 이와 관련한 진정이 33건 접수됐다. 호소할 곳 없는 폐쇄병동에서 정신장애인들은 쉽게 신체의 자유마저 빼앗겼다. 진정인 ㅂ씨는 병원과의 마찰로 2018년 1월 엿새 동안 안정실에 격리됐다. 외출허가를 받은 뒤 본인의 통장과 카드를 내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에서였다. 격리된 뒤 항의 차원에서 식사를 거부하자 병원은 4차례에 걸쳐 20시간 동안 ㅂ씨의 양팔을 묶어뒀다. ‘고문’에 가까운 병원의 조처 끝에 ㅂ씨는 스스로 숟가락을 들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정신건강사업 안내’에서 “치료진이나 병동의 편의 또는 처벌을 목적으로 격리나 강박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폐쇄병동 안에서 7만명에 가까운 정신장애인들은 여전히 법도 규칙도 없이 인권을 침범당하고 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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