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5일 저녁 ‘추적단 불꽃’이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왼쪽). ‘추적단 불꽃’ 유튜브 영상. 유튜브 갈무리
지난해 7월 대학생 두 명이 디지털성범죄 취재를 시작했다. 탐사보도 공모전(이하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서다. 성착취 영상물 사이트 리스트를 살펴보던 중 ‘n번방’ 운영자인 와치맨(38살 회사원 전아무개·구속)이 운영하는 ‘AV스눕’을 알게 됐다. 지금은 폐쇄된 이 구글 블로그에서 텔레그램 대화방 주소 링크가 눈에 띄었다. 무심코 따라 들어간 그곳에 ‘고담방’이라는 대화방이 있었다.
“애벌레 영상, 알려진 것과 달리 성인물”
고담방에는 성착취 영상물 공유 채널인 n번방에 대한 홍보글이 수시로 올라왔다. 1번방·2번방…n번방, 방별 성착취 피해자의 신상과 신체 특징 등을 정리해놓은 리스트가 주였다. “1번방 애는 어린데 왜 젖꼭지가 까마냐” 같은 기가 찬 품평회가 이어졌다.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진 안 믿겼다.”(ㄱ씨) 차마 믿기지 않았지만 “직접 봐야겠다”(ㄴ씨) 싶었다. n번방 잠입을 시도했다. 두 사람은 이름과 전화번호를 바꾸고, 성착취 채팅방에서 통용되는 ‘일베 말투’를 따라 하고, 올라오는 영상물에 환호하는 척하며 잠입에 성공했다. 고담방을 네댓 시간씩 지켜보고 있으면, 불특정 시간에 불쑥 “링크를 공유하겠다”는 인물이 등장하곤 했다. 개인 텔레그램으로 성인콘텐츠를 보내라거나 프로필 사진을 애니메이션 등으로 바꾸라는 요구에 응하면, n번방 링크를 보내주는 식이다. 공유된 영상물에 대한 ‘반응’이 조금만 뜨뜻미지근하면 어느 순간 강제탈퇴를 당해 있었다. 굴하지 않고 “여러 방을 파도타기 하듯 타고 다니며”(ㄴ씨) 다시 링크를 찾아 잠입하고 또 잠입했다.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성착취 영상을 추적했지만 괴로웠다. 취재라곤 하나 ㄱ씨와 ㄴ씨는 끔찍한 사건의 ‘목격자’이기도 했다. ㄱ씨는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여름방학 계절학기 수업을 들었는데,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 이걸(텔레그램 성착취)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신경이 예민했다”며 “남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있거나 큰소리를 내거나 함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 괜히 의심하게 되고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럽게 잔상이 남아 있는 영상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언급된 ‘가학적 애벌레 영상’이다.
ㄱ씨는 “그게(애벌레) 뭔지도 모르고 쳐다보다가 뭔지 깨달은 순간 바로 휴대전화를 집어던졌지만, 이미 내 눈으로 봤고 잔상이 남았고 꿈속에도 나타났다”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다만 “국민청원에선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성착취 영상으로 언급됐지만, 청원 내용과 달리 일본 성인물이었다”며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세간에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았다.
자극적 언론 보도의 명암
‘취재’를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피해자가 실존하는 사건임을 인지한 순간부터 추적단에는 ‘신고’가 우선이었다. 그들은 강원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하면서 고통스럽게 모은 채증 자료도 넘겼다. 그렇게 경찰 수사의 물꼬를 텄다. ‘지인능욕방’ 피해자 중 한 명은 범인을 특정하는 데 추적단의 도움을 받았다. 추적단이 피해자에게 지인능욕 사실을 전했을 때, 가해자들은 이미 증거를 삭제하고 채널을 옮긴 상태였다. 추적단이 미리 채증해놓은 자료가 아니었다면 검거가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 신고 이후에도 추적단의 취재와 채증은 계속됐다. 이를 바탕으로 쓴 《“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텔레그램’ 불법 활개》(※추적단은 기사 제목의 ‘음란물’을 ‘불법 성착취 영상’이라고 쓰는 게 맞다고 정정했다)는 지난해 8월 말 언론인과 언론학 전공 학생 등 32팀이 참여한 공모전에서 대상 없는 1등인 우수상을 차지했다. 처음엔 그저 좋았다. 부모님도 대견해하셨다. ‘사회적 반향’이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반응은 예상만큼 빨리 오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이 정도인가’ 반신반의할 무렵, 추적단의 기사를 본 <한겨레> 기자가 자문해왔다. 추적단의 채증 자료에 <한겨레>의 심층취재가 더해졌다. 지난해 11월25일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영상 “알바 모집” 속아 ‘노예’가 되었다’ 등 <한겨레>의 ‘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시리즈가 시작됐다.
충격적인 성착취 실태가 세상에 알려지자, MBC와 <국민일보> 등 언론의 취재 협조 요청이 잇따랐다. 뒤늦게 여러 미디어에서 앞다퉈 n번방·박사방·딥페이크방(합성영상) 실태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면서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 2차 피해 우려가 컸지만, 국민적 관심과 분노가 촉발되는 계기가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3월17일 ‘박사’ 조주빈이 검거되고, 이른바 ‘n번방’ 사건에 대한 역대 최대 규모(총 5건, 600여만 명)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어디선가 기사를 보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줄 수 있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전혀 없는 선정적 보도는 제발 멈춰주길” 당부했다. ㄴ씨는 “아예 취재조차 안 하고 (남의 기사를 베껴)쓰는 기사는 딱 보면 안다”며 “특히 정부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다든가, 피해자를 돕는다든가 하는 메시지도 전혀 없이 오직 자극적인 피해 사례를 나열해 ‘클릭’만 유도하는 기사는 피해자에게 허탈감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ㄱ씨는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기자의 직무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됐다”며 에둘러 언론을 비판했다. “기자는 사건을 최초로 목격하고 가해자를 감시하고 해결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알려진 사실만 확인해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며 “기자들이 (성범죄 문화를) 너무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정부와 개개인의 인식은 물론 언론도 바뀌어야 하고 이번 사건이 그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창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인 ㄴ씨는 “뭐가 중헌디 싶다”고 탄식했다. “언론사 논술 시험에서는 기자 지망생들에게 차별화된 문제의식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능력을 요구하는데, 정작 언론에서는 그런 보도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답답함의 표현이다.
‘신상’ 털릴까… 익명으로 활동
수상과 업적의 기쁨은 잠시, 두 사람은 지금 책임감과 두려움이 더 크다. 사회가 디지털성범죄와 자신들의 목소리에 주목할 때 ‘성범죄 문화 해체’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목소리를 더 크게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앞선다. 지금껏 디지털성범죄 실태를 알고도 모른 척했던 언론과 한국 사회가 언제 다시 관심을 거둬들일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추적단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진 뒤 추적단 유튜브 계정을 통해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기자 지망생이기에 “언론에 계속 제보했는데 기사가 안 나오더라”며 추적단으로 넘어온 제보가 더욱 씁쓸하다.
추적단이 한두 군데 주요 매체가 아닌 되도록 많은 언론과 인터뷰하려는 이유도 명확하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언론사나 프로그램이 다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언론과 인터뷰”한다.
인터뷰 횟수가 늘고 추적단 이름이 알려질수록 개인적으론 두려움은 커진다. 디지털성범죄자들로부터 언제 어떻게 ‘신상’이 털리고 협박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을 알린 주역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려 자랑하고 싶을 테지만, 이름도 얼굴도 꼭꼭 숨기는 중이다. ㄱ씨는 “진짜 나대는 성격”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웃었다. 그는 “언론고시생 오픈 채팅방에 이번 사건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올라오는데, ‘내가 추적단 불꽃인데 그게 아니다’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기사에서 읽었는데 사실관계는 이거랍니다’ 정정하고 있다”며 답답하지만 재미있는 일상을 전했다. 반대로 ㄴ씨는 “남 앞에 나서는 걸 조금 부끄러워하는 편”이라며 “학교에 우리를 아는 남학생들이 있어 신상이 공개될까봐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부모님 역시 잠깐만 연락이 닿지 않아도 “왜 통화가 안 되느냐” “전화번호 바꿔라” “프로필 사진 내려라” “아무 기자나 만나지 말라”고 노심초사다.
“박사방에서 ‘신’이었던 박사, 지금은 ‘찌질이’”
추적단이 텔레그램 성착취 실태를 고발했지만, 텔레그램에는 여전히 수백~수천 명이 모인 성착취방이 존재한다. 두 사람은 3월25일 아침에도 6천명방, 3천명방, 몇백명방을 확인했다. ㄴ씨는 “가해자들도 경찰과 기자들이 지켜본다는 걸 알지만, ‘바보냐, 여기 텔레그램이다, 박사처럼 영상을 만든 것도 아니고 돈을 낸 것도 아니니 추적당할 위험도 없다’는 분위기가 여전하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박사’가 검거된 뒤 텔레그램 성착취 관련 대화방에도 일부 변화가 있었다. 특히 박사에 대한 평판이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검거 전 박사는 그들에게 추앙받는 ‘신’이었지만, 검거 소식이 전해진 뒤 ‘너 때문에 우리까지 잡힐 수 있다’며 박사를 ‘찌질이’ 취급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추적단이 박사방에서 장시간 지켜봐온 조주빈은 자신을 ‘코리아 조커’ 등 그럴듯한 이미지로 프레임화하는 데 탁월하고 자기애가 강한 인물이다. ㄴ씨는 박사가 썼거나 박사의 지시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를 예로 들었다. 박사가 운영하던 채널이나 채팅방에 올라 있던 이 글에선 박사를 ‘춘추전국시대 같은 텔레방’을 평정한 난세의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박사는 검거 전 박사방에 유서를 올리기도 했다. ㄴ씨는 “쇼하는 줄 알고 있었고, 가소로웠다”고 일축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가혹(일탈계는 왜 하냐)하고, 가해자에게 관대(어려서 힘든 일을 겪어 그렇다)하다”며 “박사는 피해자에게 절대로 사죄할 인물이 아니고, ‘한국형 조커’ 등으로 미화돼선 안 되는 인물”이라고 일갈했다.
추적단은 일관되게 n번방·박사방 등을 넘어 “성범죄 문화 해체”와 “피해자 보호”를 주장한다. 여당이 ‘n번방 재발방지 3법’ 처리를 선언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본다. △성적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하는 행위를 형법상 특수협박죄로 처벌 △불법 촬영물·복제물을 스마트폰·컴퓨터 등에 내려받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며 촬영·반포·영리적 이용에 대한 처벌 강화 △불법 촬영물에 대해 즉각 조처하지 않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를 처벌하는 ‘3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ㄴ씨는 “정부 조처는 가해자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디지털성범죄는 가해자 한 명을 잡는다고 멈추지 않는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n번방·박사방 성착취 영상이 다른 대화방에서 여전히 공유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착취 영상은 올리고 내려받기가 너무 쉽고, 성착취 영상을 공유하는 소수의 네트워크로 알려진 ‘다크웹’조차 범죄자들에게는 상용화돼 있다. 반면 피해자들은 어떻게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지, 피해를 봤을 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더욱이 가해자는 불법 영상물 사이트와 채팅방에서 뭉치지만 피해자는 숨어버리기 때문에 연대할 수도 없다. 우리 사회가 단순히 가해자 처벌을 넘어, 어떤 식으로든 잠재적 가해자를 사회화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성교육·뉴미디어 교육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음 기사 주제, 포털 성착취”
추적단 불꽃은 인터뷰로 바쁜 와중에도 3월 말 마감하는 두 번째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 추적 보도 2탄이 될 예정이다. ㄱ씨는 “취재는 거의 끝났고, 기사 작성 단계”라고 했다. ㄴ씨는 “아직 구체적인 주제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텔레그램 밖 포털 사이트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일”을 다룰 계획이라고 넌지시 힌트를 줬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