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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경찰 수사 좁혀오자 n번방 운영자들 “검거 돕겠다” 변신

등록 2020-03-29 14:23수정 2020-03-30 02:42

엔번방서 권력다툼하던 ‘주홍글씨방’, 가해자 고발 ‘텔레그램 자경단’으로 활동
신상박제하며 서로 공격하던 방…본격 수사 이후 돌연 “3대 강력범죄 강력 규탄”
텔레그램 성착취
텔레그램 성착취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성착취한 엔(n)번방 운영자들끼리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신상공개를 하며 서로 공격하던 곳으로 쓰이던 방이 최근 경찰 수사가 좁혀오자 돌연 방의 성격을 바꿔 “경찰의 텔레그램 범죄자 검거를 돕겠다”며 ‘텔레그램 자경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한겨레> 취재 결과, 자신들을 ‘텔레그램 자경단’이라고 칭한 엔번방 회원들이 운영하고 있는 텔레그램 비밀방의 이름은 ‘주홍글씨’방이다. 이 방은 한동안 운영하지 않다가 ‘박사’ 조주빈(24)씨 등 텔레그램 성착취 피의자들이 잇따라 검거된 직후인 지난 22일 다시 활동을 재개했고, 이날 현재 1만여명이 가입되어 있다. 이 방은 공지사항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범죄와의 전쟁’ 신문 기사 사진과 함께 ‘우리는 텔레그램 자경단 ‘주홍글씨’다. 주홍글씨는 텔레그램 강력범죄에 대한 신상공개 및 범죄자의 경찰 검거를 돕기 위해 텔레그램 및 온라인상 어디에서든 활동하고 있다. 특히 텔레그램 3대 강력범죄를 강력히 규탄하며, 범죄자들의 인권 또한 따지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텔레그램 강력범죄자들에 대해 언제든 제보를 받고 있으며 20여명의 자경단원과 그외의 교육대원들이 범죄자들을 항상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방 회원들은 엔번방을 통해 성착취물을 구매하려 했던 회원들의 신상 정보를 이 방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회원들의 성착취 범행을 고발하고 있다. 아동 성착취물을 거래한 이들에게 망신을 주고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으로 벌을 준 뒤 이 장면을 찍은 인증샷도 함께 올리고 있다.

텔레그램 ‘주홍글씨방’ 갈무리.
텔레그램 ‘주홍글씨방’ 갈무리.

문제는 이 방이 애초부터 이런 의도로 만들어진 방이 아니라는 점이다.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방이 수백개였던 지난해 11월에도 주홍글씨방이 존재했다. 복수의 제보자들은 <한겨레>에 주홍글씨방과 조씨가 운영한 ‘박사방’, 각종 불법촬영물이 올라온 ‘다락방’을 당시 가장 활동이 활발한 3개의 엔번방으로 꼽았다. 당시 <한겨레>가 잠입 취재를 통해 살펴본 주홍글씨방은 ‘신상박제 놀이터’였다. 이들은 누군가 성착취물을 판다고 해놓고 돈만 받아 챙기거나 방 회원수와 운영 방식을 두고 서로 다투다가 밉보이면 곧바로 상대방의 신상을 털어 공개하는 ‘신상박제’ 공격을 일삼았다. 텔레그램 성착취 세계에선 누군가의 신상을 누구보다 더 빠르고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능력’이 권력을 인정받는 척도였다. 엔번방 운영자들끼리만 따로 모여 수사를 회피하는 방법 등을 조직적으로 모의한 ‘전국 텔레그램 네임드방’(네임드방)의 운영자 중 일부가 이 방을 운영했고, ‘박사’ 조씨도 이 방에 가입돼 있었다.
(▶관련기사: [단독] n번방 운영자들, 연합방 만들어 수사회피 모의) 결국 성착취 가해자들끼리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방이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 이후 갑자기 ‘정의’를 말하며 범죄에 맞서는 방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방에 대한 경찰의 우선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주홍글씨방에는 가해자들의 범죄 행위를 밝히면서 성착취 피해자들이나 가해자의 가족 혹은 여자친구의 신상정보나 사진도 함께 노출되고 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현재 주홍글씨방에 애초 그 방을 이용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자료들이 올라오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해 11월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며 “이 방에서 성인 여성 성착취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기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만 엄단하자는 취지로 얘기하고 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상한 선 긋기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이수연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제 와서 문제가 된 성착취 가해자들의 신상을 올리는 거로 면죄부가 될 수 없고 이들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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