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일상이 된 코로나19, 슬기로운 ‘뉴노멀’ 생활은 가능할까

등록 2020-04-11 09:14수정 2020-04-12 14:38

[토요판] 이런 홀로
팬데믹 라이프

글쓰기 모임 비대면 대체하자
8명 저마다 반응 제각각
위험에 대한 민감도 다 달라

익명의 군중에게도 에너지 얻어
사람 안 만나니 곧 배터리 방전돼
대재난의 기억 어떻게 남을까
나는 인생에 유례없는 전염병 시기를 지나며 다른 인간과 대면 접촉을 하는 것이 내 작은 일상에 상당한 에너지를 제공해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하고 듣고, 표정을 읽고 읽히고, 뉘앙스를 이해하고, 분위기를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인생에 유례없는 전염병 시기를 지나며 다른 인간과 대면 접촉을 하는 것이 내 작은 일상에 상당한 에너지를 제공해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하고 듣고, 표정을 읽고 읽히고, 뉘앙스를 이해하고, 분위기를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 게티이미지뱅크

글 쓰는 합평 모임을 하고 있다. 지난번 모임은 비대면 단체 카카오톡이었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총무가 이번주 합평은 어떻게 할까요, 물었는데 8명의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나오기 전이었다. 누군가는 어차피 출퇴근도 하는 마당에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고 했고, 누군가는 야외 모임이 어떻겠냐고 농담을 했으며, 몇몇은 외출을 꺼리거나 아이 때문에 외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긴긴 이유를 들며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야 할 때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물론 대세에 따르겠다는 사람이 좀 더 많았다. 한명이라도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대면 모임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다수였고 결국 비대면 단톡 모임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니까 인류가 전부 다 멸종하지 않고 생존해왔나 봐. 숱한 재난과 위험 속에서도 말이야.”

겨우 8명밖에 안 되는 이들이 위험에 대한 민감도가 제각각 달라 신기했다는 나의 말에 ㄱ은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숱한 전염병과 전쟁, 재난 속에서도 인류가 전멸하지 않은 것은, 위험에 대한 대응 방식이 다양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누구는 예민하게 대응해 생존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호들갑을 떨던 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다가 위험에 더 노출되고, 그저 편안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삶을 이어나가던 이가 위험을 피했을 수도 있다. 혹은 대재난 속에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인류를 지켜왔을 수도 있다.

“넌 주변 사람을 ‘인류’로만 인식하는 버릇을 좀 버려야 해. 인간을 좀 봐라.”

나는 자체 격리 생활 중 하도 봐서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넷플릭스 첫 화면을 멍하니 노려보다가 ㄱ에게 말했다. 그런데 사실 지금은 내가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요즘은 나도 자꾸만 주변 사람들을 ‘인류’로 인식하게 되는 시기인 듯했다.

겨우 석달, 일상은 거의 무너졌다

낯선 단톡 모임에서 사람들의 말은 한박자씩 늦고 겹치고 겸연쩍게 사라졌다. 모임이 끝나고 각자 맥주 캔을 따며 사이버 뒤풀이 운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번 모임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비대면 온라인 화상회의로 바뀌었다. 사람들의 집이 일부일지라도 강제 공개되었고, 녹화가 가능하며 발자국을 남기면 절대 지우기 힘든 온라인 공간에서 카메라를 켜고 얼굴을 내놓는 것은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일이었으며,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50대 분은 접속하는 데만 해도 몇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대화는 생각만큼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시간을 참여하는 것인데도 이상하게 대면 모임보다 훨씬 더 피곤했고, 그에 반해 말들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고 허공을 떠다녔다.

전염병 시기는 길어질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제는 재난이 일상이 된 ‘뉴노멀’에 적응해야 한다고 티브이에 나오는 전문가들은 말한다. 생각해보면 겨우 석달이다. 그런데 일상은 거의 무너졌다. 어차피 평소에도 홀로 자체 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던가 보다.

두달째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매일 저녁 가(려고 애쓰)던 운동도 가지 않고, 저녁에 동네 술집에 나가 맥주 한잔을 하지도, 친구를 만나지도 않는다. 가끔 사람 없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하지만 결코 예전 같지는 않다. 매일 아침 긴급재난문자의 긴급한 사이렌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고, 침대에서 허리가 아플 때까지 뉴스와 에스엔에스를 돌려 보다가, 겨우 일어나 몽롱한 정신으로 일을 조금 하고, 더러운 집을 청소할까 말까 멍하니 집 안을 서성이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진다. 국내 각종 티브이 프로그램 다시보기, 넷플릭스, 왓챠플레이까지 대부분의 티브이 쇼는 다 섭렵해서 더 이상 볼 것도 없고, 더 이상 들을 팟캐스트도 없으며, 모바일 게임도 지긋지긋하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암울한 뉴스는 우울감을 더 증폭시킨다. 일상이란 본래 이렇게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나? 매일 이어지던 나의 일상은 그저 운이 좋아서 가까스로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코로나19로 우리는 모두 얼마간은 인류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모두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를 서로 옮기고 옮는 같은 인류라는 것, 누구든 걸리면 죽음의 위협에 처할 수 있으며 죽지 않기 위해 평소엔 생각지도 않는 갖은 노력을 하는, 생존이 본능인 취약한 존재인 인류라는 점을 말이다. 단단한 줄 알았던 세계의 경제, 정치, 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 쉽사리 부서지는 무력한 울타리였다.

인간 대면 접촉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동시에 인류라는 같은 종족으로서 우리가 인간성이라는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인생에 유례없는 전염병 시기를 지나며 다른 인간과 대면 접촉을 하는 것이 내 작은 일상에 상당한 에너지를 제공해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가족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친구들과 단체 페이스타임으로 안부를 물으면서 평소에는 자주 보지도 않는 이들이 이상하게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글쓰기 모임뿐 아니라, 일 때문에 화상회의를 하면서도 매번 뭔가 허탈하고 겉도는 기분에 빠졌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하고 듣고, 표정을 읽고 읽히고, 뉘앙스를 이해하고, 분위기를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

사람과 대면 접촉 하는 것에서 생기는 알 수 없는 에너지는, 익명의 사람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나는 점차 방전되어가는 배터리가 된 기분이었는데 원래도 보유 에너지 총량이 평균 이하인 나의 에너지는 이제 바닥까지 긁어도 잘 끌어올려지지가 않았다. 내부에서 나오는 에너지로는 더 이상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는 것 자체가 힘겨웠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내가 길 위에서, 카페에서, 술집에서 익명의 군중에게 얻는 에너지가 생각보다 컸음을 깨달았다. 지금껏 그저 통과하고 소비하고 서로를 소외시킨다고 믿었던 익명의 분주한 장소에서 나는 일상을 지탱할 상당한 에너지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봄은 착실히 와 있다. 매일매일 하늘이 맑다. 날씨가 안 좋기로 악명 높은 봄인데도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는 깨끗한 하늘의 연속이다. 세계적으로 인간의 이동량이 적어지니 탄소배출량이 줄고 동물들이 도시에 출몰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ㄱ은 또 말했다. “과연 인류가 활동하지 않아야 지구에 도움이 되는군.”

코로나19는 언제 지나갈까? 과연 지나가기는 할까? 인류의 60%가 면역이 되면, 치료제가 개발되면 얼마나 오래 걸리든 일상은 어느 정도 회복될 것이다. 그때도 나는 과연 지금의 인간 대면 접촉에 대한 그리움을, 인류라는 공통의 인식을, 대재난의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까?

다이나믹 닌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봄 맞아 물오른 버드나무 40그루 벤 뒤…5만평 모래톱 쑥대밭으로 1.

봄 맞아 물오른 버드나무 40그루 벤 뒤…5만평 모래톱 쑥대밭으로

의대 정원 1000~1700명 줄 듯…결국 물러선 윤 정부 2.

의대 정원 1000~1700명 줄 듯…결국 물러선 윤 정부

김건희 여사에 명품백 건넨 목사, 스토킹 혐의로 입건 3.

김건희 여사에 명품백 건넨 목사, 스토킹 혐의로 입건

“누구든 선한 길로 돌아올 것”…자유인 홍세화의 믿음 4.

“누구든 선한 길로 돌아올 것”…자유인 홍세화의 믿음

대마도 인근 규모 3.9 지진…영남권서 진동 감지 5.

대마도 인근 규모 3.9 지진…영남권서 진동 감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